해방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민주주의라는 말만큼 매력적인 낱말도 없었을 것이다. 이에 버금할 단어는 돈과 통일 외에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한국인의 머리에 가장 깊숙이 박힌 낱말은 뭐니뭐니 해도 돈이었다. 교육, 취업, 장사, 사업, 농사 하나같이 돈과 관련되었다. 누구누구가 잘 산다는 말은 부러움과 질시, 희망과 용기의 원천이었다. 조선시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때는 양반이 되는 게 꿈에도 소원이었고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평생의 희망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분 상승과 정치적 권력 장악이 최고의 목표였다.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불가능했던 백성의 양반되기,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웠던 양반의 벼슬하기. 그것은 만사형통의 지름길이었다. 그 길로 모든 것이 절로 굴러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해방 이후 양반이 없어지면서 누구나 평등해진데다 벼슬자리가 극소수의 양반이 차지할 만큼 적당히 적은 게 아니라 전국민이 꿈꾸기에는 턱없이 적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각자가 먹고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있는 것을 갈라먹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 결과 그 당시 유일한 생산수단이었던 농지를 골고루 나눠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3천만 인구에게 입에 풀칠할 거리밖에 안 되었다. 마침내 상업과 공업을 국가 차원에서 장려하면서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별의별 돈 벌 자리가 천문학적인 숫자로 늘어나게 되었다. 공부하면 더 좋은 직장을 구해 돈을 더 많이 벌어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두 눈에 빤히 보이자 최소한의 조건만 되면 공부하려고 눈에 불을 켰다. 돈, 돈, 돈의 유인책은 상상을 초월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이젠 그걸 어떻게든 돈과 관련짓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은 기회의 나라에서 노력의 결정체였고 평등한 사회에서 자유의 날개였다.
북한은 전혀 사정이 달랐다. 거기는 돈은 아주 부차적인 것이었다. 돈이 있어 봐야 쓰일 데도 별로 없었다. 살래야 살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곳은 당원증이 최고였다. 그것은 평등을 지상목표로 한다면서 도리어 극심한 불평등 사회가 된 나라에서 새로운 양반임을 공인해 주는 신분증이었다. 작은 가죽주머니에 넣어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이 당원증이야말로 인민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2천3백만 인구 중에 해방 이후 50년이 되도록 겨우 4백만 개만 발급한 당원증, 그것은 북한 사회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신분증 바로 신판 양반증이었다. 조선시대와 근본적으로 똑같았다.
다만 양반의 후손이 아니었던 노동자와 농민이 당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차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이내 새로운 성분이 되어 신분이 고착되기는 조선시대와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에 양반이라도 조상이 시원찮거나 과거에 줄줄이 낙방만 한 가문은 잔반이라고 대추 먹고 이나 쑤시는 한심한 신세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도 설령 공산당원이 되어도 한 자리 얻지 못하면, 당일꾼 곧 당의 나으리가 되지 못하면 자존심만 가슴에 시퍼렇게 날이 서 있을 뿐이었다. 출세해도 불안했다. 언제 숙청될지 몰랐으니까.
북한에서는 모름지기 조선시대처럼 벼슬을 해야 했다. 이 벼슬 잘하려면 충성과 효도밖에 없었다. 그 충효는 과거의 조선과는 달리 현재의 조선에서는 대상이 달랐다. 그것은 아버지 김일성(김정일)과 어머니 공산당에 충과 효를 다하는 것이었다. 충과 효는 요모조모 생각하면 안 된다. 무조건 달달 외고 무조건 예, 예, 라고 얼굴을 밝고 맑게 갖고 손발이 닳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외우는 것은 물론 가르쳐 주는 대로 외워야만 했다. 일제의 간악한 지배로부터 조국을 해방시킨 구세주는 수령님이시다, 미제와 그 주구인 남조선 친일 후손이 북침을 하였다, 이를 수령님이 격퇴시켰다, 조선은 누구나 평등한 낙원이다, 우리는 행복해요, 굶어 죽는 사람은 가물과 큰물 그리고 미제의 간악한 경제봉쇄작전 때문이다, 불쌍한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하루빨리 통일시키자, 인류역사상 최고의 위인이셨던 수령님의 아드님도 또 다른 불세출의 영웅이라 높이 받들어 모셔야 한다, 등등을 무조건 달달 외우고 우렁차게 복창해야지만 양반의 양반이 되었다.
한국에선 민주가 통일이란 말을 앞질렀고 북한에선 통일이 민주를 압도했다. 그럼 한국에서는 누가 민주란 말에 목숨을 걸었고 북한에서는 누가 통일에 신명을 바쳤을까. 한국에선 배운 자가 민주란 말에 정신이 몽롱해졌고 북한에서는 노동당원들이 통일이란 말에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한국에선 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의 제전에 피를 뿌리며 돈을 경멸했고 북한에선 당원을 중심으로 통일의 제전에 향을 피우며 자유를 경멸했다.
왜 한국에선 대학생과 고등실업자가 민주란 말만 들어도 황홀해 했을까.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가 바로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당선되면 국회의원이 되고, 시장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법을 무시할 수 있고 대통령이 되면 조석으로 법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한 것이다. 법을 무시하고 법을 조석으로 만들면 어마어마하게 커진 이권에 무시로 개입할 수 있다고 확신했음이 민주 제전의 두 횃불 YS, DJ와 DJ의 후계자 노빠가 대통령이 되면서 탄로나 버렸다. 전화 한 통화 골프 회동 한 번 저녁 식사 한 번 하면 입법, 사법, 행정이 그 날로 ‘형님, 아우님, 영식님, 동지님’ 하면서 골고루 이권을 나눠가졌다. 그게 바로 각종 게이트이다.
무슨 말인가. 그들은 펄쩍 뛰겠지만 실은 민주주의가 뭔지를 몰랐다. 민주주의의 첫째는 차가운 법치(法治)인데, 그들은 철저히 인간과 인간에 의한 따뜻한 인치(人治)를 신봉했던 것이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오직 하나, 선거에 자유롭게 참여해서 지엄한 벼슬자리에 하루아침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 신성한 자유에 족쇄를 걸면 거기에 맨손으로 맨주먹으로 맨몸으로, 기껏 돌멩이나 화염병을 들고 용감무쌍하게 달려갔던 것이다. 국회의 본령인 입법에는 안중에도 없고 몇 개 지역의 보선에 지나지 않는 선거에 수 개월 동안 총재 이하 여야 전당원이 총력체제로 돌입하여 목숨을 걸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쟁을 치르는 것을 보면,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게 무언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민주주의일 뿐이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는 국회가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으로 의결한 것도 부정하고 국회를 점거하여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도 인정하지 않는다. 유리하면 받아들이고 불리하면 갖은 협박을 가하면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을 '웃찾사'의 개그맨 쇼로 만들어 버린다. 3권 분립의 두 다리를 분질러 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정부의 공식 기구도 다 헝클어 놓았다. 일개 자문기관이 국방, 외교, 통일 세 정부 부서를 수하로 거느리고, 각종 친정부 시민단체가 '참여'란 이름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한다. 법은 멀고 독선은 가깝다.
무엇보다 북한의 60년 독재를 기기묘묘한 궤변으로 옹호하고 대변한다. 세계가 3년 연속해서 치를 떠는 북한인권 문제를 2차 대전 중의 독일인들이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못 본 척했듯이 한사코 외면한다. 민주주의 ‘민’자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권력을 사랑할 뿐이고 젊은 시절에 잘못 입력된 시대착오적인 사상도 아닌 사상을 맹신할 따름이다.
민주주의의 둘째는 의사결정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인데, 그들은 대학생 때부터 활발한 토론은 하되 언제나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부정이었다. 이승만․박정희 증오였다. 전두환․노태우 타도였다. 마르크스․레닌 학습이었다. 모택동․김일성 연구였다. 대한민국의 권위와 성취를 깡그리 부정하고 투쟁에 투쟁을 거듭하는 것이었다. 일치단결! 총학생회장님께는 무조건 충성! 국회에서는 총재님 받들어총! 거기에는 어떤 토론도 필요 없었다. 오직 총재님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함지르고 욕하고 멱살 잡고 난장판을 만드는 일밖에 할 일이 없었다. 의사결정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그 황금 열쇠를 YS와 DJ와 노빠에게 맡긴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였다.
그들의 눈에는 법치가 독재이고 의사결정의 문을 열어 둔 것이 독재였다. 그들이 독재라고 이를 가는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얼마나 많은 법을 만들었으며 그 법을 얼마나 지켰는지, 두루두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는지 그들은 전혀 알아 보지 않았다. 왜? 독재자니까. 왜 독재자일까? 총칼을 들고 일어나 민주 인사들에게 피선거권을 자유롭게 보장하지 않았으니까. 그 다음은 '보나마나'였다. 감옥에 갇힐 짓밖에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마침내 북의 통일 염불이 남으로 내려왔다. 민주주의에 뒤이어 통일이 젊은이의 피를 들끓게 만들었다. 통일이 안 되는 것은 통일이란 말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밤낮으로 노동당원 4백만을 비롯하여 전 인민이 통일을 입에 달고 다니는 북으로 선구자적 사명감을 안고 젊은 임수경이 가고 늙은 문익환이 갔다. 격렬한 논쟁을 잠재우고, 아니 7천만의 우렁찬 박수를 받으며 마침내 ‘민주의 화신’ 김대중 대통령이 ‘식견 있는 천출 장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뜨겁게 포옹했다. 손에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메어 불렀다. 민주와 통일이 굳게 손을 잡는 순간이었다. 민주와 친북이 대명천지에 야합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연평해전의 패배를 앙갚음한 서해교전. 북한 주민에게 1달러도 돌아가지 않는 금강산 관광.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지 아무도 모르는 식량과 비료 지원. 흩어진 가족 상봉, 5년 동안 만 명에 겨우 한 명 꼴인 가족상봉. 김정일 장군 선전장에서 생중계된 눈물의 상봉. 하나 더, 주변 4강으로부터의 따돌림. 세계 4강의 냉랭한 시선. -- 옛 친구들은 슬슬 피하고 새 친구들은 슬슬 협박한다.
민주주의? 통일? 그 얼마나 달콤한 말이더냐! 그러나 그 얼마나 속기 쉬운 말이더냐!
(2004.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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