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략의 단순성(simplicity)


朴正熙의 근대화 혁명 사상의 핵심은 돈이 인간과 국가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단순명쾌한 확신이었다. 그는 富者가 되어야 부패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조선조 선비사회의 淸貧사상을 부정하고 프로테스탄트의 자본주의 윤리인 淸富사상을 자신의 실천윤리로 받아들였다. 이 점이 박정희의 근대성이다.

그는 부패, 국방, 복지의 문제를 경제발전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1967년7월1일 제6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나의 소원은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통일조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의 민주사회'입니다. 우리의 적은 빈곤, 부정부패, 공산주의입니다. 나는 정의의 복지사회가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공업입국의 大道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경제건설 없이는 빈곤의 추방, 부정부패의 추방,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朴대통령은 1970년1월9일 연두기자회견에선 '국방이 곧 경제건설이며 경제건설이 곧 국방이다'고 역설했다.

'국방을 잘해야 경제건설이 되고 경제건설을 빨리 해야 국방의 바탕이 튼튼해진다'

그의 근대화 전략은 이처럼 단순하고 일관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전략은 수정되지 않을 때 힘이 생긴다. 그의 근대화 전략은 自助-自立-自主의 3단계로 발전되었다. 自助는 개인적인 각성단계로서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를 강조했다. 自立은 국민들의 自助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경제를 외국의 원조 없이 꾸려나갈 수 있는 단계를 뜻했다. 自主는 自立경제에 기초하여 국방을 자신의 실력과 의지력으로 해낼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그는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이 전략을 피력한 이후 죽을 때까지 그대로 밀고나갔다.

이런 경제중심의 국가발전 전략은 7세기의 중국 정치가 管仲에서 시작된 동양적 실용주의 사상의 맥을 잇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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