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은 오랜 세월동안 절대적 가치였다. 우리는 외부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민족적 경험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경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맹목적인 애국심은 오히려 건강하지 못하고 인류 사회에 독이 된다는 생각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맹목적인 애국심은 좋지 않다. 그러나 합리적인 애국심과 맹목적인 애국심은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히틀러를 찬양하며 열렬한 연설을 하던 괴벨스의 애국심이나 자폭 전 한잔 술을 받아마시며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가미가제 특공대의 애국심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에 목숨까지 바치는 그들의 모습에 일말의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지는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난해 마지않는 것이 그들의 애국심이다. 
이러한 맹목적 애국심의 특징은 매우 비합리적이며 감성적이며 집단적 광기가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선전 선동이나 천황에 대한 충성 맹세를 기록한 영상을 보면 매우 종교적인 느낌을 주며, 감정을 자극하며, 그것으로 대중에 대한 집단 최면을 거는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런 애국심이 가져오는 결과는 처참하다. 
나치는 600만 명이나 되는 유태인들을 죄의식도 없이 학살했으며 일본은 주변국에 큰 피해를 주고 사상 첫 핵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맹목적 애국심은 비무장한 사람에 대한 비겁한 테러 공격을 정당화 시키며 인종 청소를 거리낌 없이 행하게 만든다.
감성적이고 맹렬하며 비합리적인 애국심의 말로는 모든 국가에 패망을 가져왔다. 
이러한 광기어린 애국심을 보여주는 집단은 21세기에도 존재한다. 
바로 북한, 그리고 남한 내 종북세력이다.  
북한 특권층은 3대 세습과 온갖 테러를 자행하면서도 이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맹목적 애국심을 활용하고 있다. 
그들의 맹목적 애국심은 또한 매우 민족주의적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조선에 대한 충성이다. 
남한 내 종북세력들의 애국심은 매우 모순에 싸여있으며 그들 스스로도 상당한 혼란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한민국이 주는 모든 행정적인 혜택을 받아 누리면서도 그들의 의식속의 조국은 조선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이며 북조선은 조선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위대한 조국인 것이다. ( 사실 북한도 완벽한 친일청산을 하지는 못했으며, 북한 내 수많은 고위층들이 친일파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정신 상태는 매우 시대착오적인 형태로 표출되는데 극단적인 종북인사들은 현대식 복장을 거부하고 한복만 입고 다니거나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등 매우 사회 부적응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종북세력들의 맹목적 애국심은 지난 여러 사건들을 통해 대한민국을 혼란케 해왔다.  
미군이 관련된 사건 사고나 여러 가지 국책 사업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버팀목인 대기업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마다 폭력적이고 선동적인 대중집회를 열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경제를 파탄케 했다. 
이와 같이 맹목적 애국심은 인류 보편의 양심적 가치를 파괴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해악을 끼친다. 
반면 합리적 애국심은 국가를 살리고 국민에게 행복을 주며 인류 전체의 보편적 양심에도 잘 부합한다. 
합리적 애국심을 잘 보여준 인물은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들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위해 평생을 충성하고 헌신했지만 언제나 바른 말을 하는 그의 성정 탓에 결국 많은 적을 가지게 되었고 국가가 섬기는 신을 섬기지 않고 젊은이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예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기적을 베풀었지만, 당시 기득권자들인 고위층 유태인들에게 신성모독과 내란 선동으로 기소 당해 로마의 재판을 받았다. 
이 말도 안 되는 고발에 대한 이 둘의 태도는 너무나도 똑같다. 
소크라테스는 그동안 자신을 보호해주고 키워준 아테네의 법을 어길 수는 없다며 자신을 피신시켜 주겠다는 친구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독배를 기꺼이 마셨다.
예수 역시 자신은 얼마든지 십자가형을 피할 수 있었지만 끝까지 자신이 속한 로마의 법을 준수하고 그 재판 결과에 승복했다. (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라는 그의 설교 또한 국가와 권위를 존중하는 그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절대적 윤리의 관점으로 볼때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키워준 국가의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들의 국가관이며 애국심이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또한 인류 보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국가에 대해 비폭력적인 불순종을 하였다. 
그들은 단 한 번도 폭력적 선동을 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세력화 하여 나라를 무너뜨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진리와 정의를 끝까지 외쳤고 국가의 판결에 승복하고 사형을 달게 받았다. ( 후에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의 철학은 기독교를 변증하는데 사용된다. ) 
이런 합리적 애국심의 전형은 이승만과 박정희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이승만은 너무나도 많은 공을 세웠지만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겸허히 수용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한국 쪽 바다를 바라보며 슬퍼하였다 ) 
박정희는 재임 중 단 한건의 정치적 암살도 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정치적 암살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들의 합리적 애국심은 대한민국을 살렸고 우리 민족을 살렸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합리적 애국심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주는 것이다. 
반면 감성에 휩싸인 선동적 애국심은 국가를 망하게 하며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고 독재자의 정치 수단이 된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합리적 애국심을 가르쳐야 한다.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 > 라고 유행어처럼 떠들어 대는 이들에게 우리는 합리적 애국심을 말해줘야 한다.
나를 보호해주는 국가의 법체계와 행정 질서에 순종하는 것..... 이것은 받은 것을 그대로 갚아주는 것이며 우리의 양심이 가르쳐주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