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지식인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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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 대통령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日帝에 저항했던 연장선상에서 자신들이 선출한 정부를 상대로 거의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근대화와 국민국가 건설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여야 할터인데 代案 없는 비판을 하고 있다고 화 난 목소리를 많이 낸 사람이 朴正熙였다. 1965년5월2일 진해 제4비료공장 기공식 치사에서도 朴대통령은 이렇게 토로했다.

'과거 일제시대에 우리가 日帝와 싸우던 것과 마찬가지인 정신자세, 즉 倭賊이 와서 우리를 점령하고 우리를 식민지화하고 우리가 남의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가 일제에 대항하던 이러한 정신자세는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지식인 가운데, 인텔리 가운데는,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해야만, 그 사람이 아주 인텔리이고 지식인이고 애국자연합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그네가 아무리 생각해도 옳다고 여럿이 있는 앞에서 이야기하였다가는 '저 사람은 정부에 아부하는 사람이며 소위 요즘 말하는 사꾸라요, 저 사람은 무슨 정부의 앞잡이다'하는 이런 우리 한국의 인텔리들의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지기 전에는 한국의 근대화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朴대통령은 다수 지식인들의 명분론과 위선적 행태를 한국 근대화의 가장 큰 저해요인으로, 즉 극복해야 할 前근대적 봉건잔재로 보았다. 朴대통령은 이들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들고 나오지만 그것은 위장이고 본질적 정체는 守舊세력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가 말한 지식인의 범주에는 주로 비판적인 야당 정치인, 언론인, 교수들, 학생들이 들어 있었다.

그는 덕담을 해야 할 신문의 날 행사를 빌어 언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예컨대 1966년4월6일 제10회 신문의 날 치사에서 朴대통령은 언론을 과거의 부정적 생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守舊라고 거의 단정했다.

'지금 우리는 조국의 근대화와 국토통일이라는 국가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이끌어주어야 할 중대한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국민과 호흡을 같이 하고, 국민의 앞장에 서야 할 언론이 과거의 전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생리적인 반대와 부정과 懷疑(회의)만을 능사로 삼는다면, 그로 인해 덕을 보는 자가 과연 누구이겠으며, 그로 인해 무엇이 이룩될 수 있겠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듬해 신문의 날 치사에서도 朴대통령은 '한 민족이 떳떳하게 잘 살려고 하는 자주와 자립의 노력이 남의 일이 아닐진대, 대안 없는 비방과 자조적인 방관이 있을 수 없다'고 공격했다.

그는 지식인들의 비판과 부정속에서 1차5개년계획을 성공적으로 실천한 것에 대해서 이렇게 의미부여했다.
'돌이켜볼 때 1차5개년계획에 대해서는 너무나 의욕적이며 실현불가능하다는 비판과 의견이 국내외로 있었습니다만, 우리는 제철 기계부문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그 계획을 초과 달성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자립의 의욕이 용솟음치고,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자신에 가득차 있습니다. 이 의욕과 자신은 조국 근대화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朴대통령은 1960년대를 '근대화의 의지를 자각한 연대'라고 自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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