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흑인이 메이저 리그에 처음 등장한 지 68년이 되는 날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은 1863년이지만 미국의 남부 지역 흑인들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뒤였다. 1964년에 민권법과 1965년에 투표권법이 통과된 이후였다.
建國한 지 239년째인 미국을 '가장 오랜 민주국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인도를 '가장 큰 민주국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은 영국을 그렇게 불러야 한다. 영국에서는 1688년 명예혁명 이후 王權이 의회主權으로 교체되어 정권교체에 따른 流血사태가 종식되었다. 미국을 가장 오래 된 민주국가로 부르는 것은 아마도 建國부터 공화국으로 출발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흑인노예제도가 없어진 것은 세계에서 미국이 가장 늦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은 1863년이지만 미국의 남부 지역 흑인들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뒤였다. 1964년에 민권법과 1965년에 투표권법이 통과된 이후였다. 다시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2008년 미국인들은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한번도 흑인이나 여인을 부통령으로도 뽑지 않았던 나라가 미국이었다.

현재 백인인구가 절대 다수임엔 틀림이 없으나 히스패닉 계의 증가로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서기 1500년 이전에 미국 땅은 몽골系의 아메리카 인디언 땅이었다. 黑人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미국이 有色인종의 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국가적 성격은 크게 바뀔 것이다.

오늘은 흑인 민권 운동 역사상 획을 그은 사건이 일어난 지 68년이 되는 날이다. 1947년 4월15일 브루클린 다저스(로스엔젤레스 다저스의 前身)는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1919~1972)을 출전시켰다. 흑인이 메이저 리그에 처음으로 진출한 것이다. 프로 권투계에선 1900년대부터 흑인 선수들이 활약하였으나 메이저 리그는 늦었다.

2007년 4월15일 오후, 10시간의 비행 끝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나는 다저 스타디움으로 直行했다. 강연 여행을 주선해 준 김도우 통일문화진흥회장과 양준용 선생(前 경향신문 기자)이 미리 표를 예약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오후 5시 조금 전에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갔다. 5만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 거의 차들어가고 있었다. 경기장은 祝祭 분위기였다. 이날은 '최초의 흑인 메이저 리그 선수' 재키 로빈슨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前身(전신)인 뉴욕의 브루클린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에베츠 필드에 등장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004년부터 메이저 리그는 이날을 '로빈슨 데이'라고 부르면서 全구장에서 기념한다.

다저스는 로빈슨을 등장시킨 팀이었으므로 이곳 행사가 主무대가 되었다. 재키 로빈슨의 미망인인 라헬 로빈슨 여사는 아주 厚德(후덕)하게 생긴 할머니였다. 당시는 로빈슨 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最多(최다) 홈런기록 보유자인 행크 아론, 최초의 흑인감독 프랭크 로빈슨, 흑인 인권운동가 재시 잭슨, 전설적인 다저스 게임 중계 아나운서 빈 스컬리 등이 메이저리그 협회 총재인 버드 세리그와 함께 기념행사에 참여했다.

그날 기념식에서 한 마디씩 한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 리그의 인종차별 벽을 부숨으로써 야구나 스포츠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의 地形(지형)을 바꿔놓았다'는 취지였다. 재키 로빈슨은 그런 선구자 役(역)을 맡을 만큼 자존심이 강하고 참을성이 있으면서도 실력도 좋았다. 1970年代에 사망한 재키 로빈슨은 이런 名言(명언)을 남겼다.

'한 인생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중요하지 않다.(A life is not important except in the impact it has on other lives.)'

이 귀절이 다저 스타디움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었다. 오늘날 미국 프로야구는 흑인에 이어 南美系(남미계), 한국·일본系까지 참여하여 人材(인재) 풀이 국제화되고 내용도 풍성하게 되었다.

재키 로빈슨이란 한 위대한 도전자의 용기와 희생이, 그리고 그를 키워준 다저스 팀의 안목이 피부색의 벽을 무너뜨리고 야구도, 미국도, 그리고 우리의 삶도 즐겁고 보람되게 만든 것이다.

로빈슨 등장 50주년 기념식 때는 클린턴 대통령이 연설했고 메이저 리그 협회 총재 버드 셀리그가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를 메이저 리그 전체 팀에서 영구히 은퇴시키기로(그리하여 어느 선수도 이 번호를 사용할 수 없다) 했다는 결정을 발표했었다. 그날 다저스는 선수 전원이 '등번호 42'를 입고 나와 라이벌인 샌디에고 파드레스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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