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0월 헝가리에서 反共봉기가 일어나 잠시나마 共産정권을 타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몇 달 전 폴란드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를 자유유럽방송(RFE)이 헝가리 사람들에게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에서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지는 데도 지방의 소요를 알린 RFE의 역할이 있었다.
소련의 옐친, 체코의 하벨, 폴란드의 바웬사 등 1989~91년 사이 소련과 동구 공산정권을 허무는 데 主役이었던 이들은 RFE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하였다. 자유유럽방송(RFE)은 對蘇봉쇄론자였던 조지 F 케난(미 국무부 고위 간부, 駐蘇 미국 대사 역임)과 프랭크 G 위스너(미CIA)에 의한 발상인데, 미국 議會가 미 CIA를 통하여 지출한 예산으로 운영되었다. 본부는 뮌헨에 있었고 단파와 중파로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대만에 있는 송신소를 통하여 소련과 東歐로 뉴스를 보냈다.
한국에는 자유유럽방송보다도 더 좋은 선전도구가 있었다. 國軍이 운영하던 휴전선상의 對北방송이 그것이다. 휴전선을 따라 배치된 약70만 명의 북한軍人들에겐 이 방송이 외부세계의 진실과 통하는 창구였다. 북한의 젊은이 약70만 명을 고정 시청자로 둔 이 방송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더라면 북한 정권을 총 한 방 안쏘고 무너뜨려 북한동포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난, 화폐개혁 등으로 흔들리는 북한 내부의 사정을 이 對北방송이 매일 북한군에게 공급하였더라면 탈영, 반항, 또는 조직적인 저항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북한지역에서 소요가 발생하면 이 사실을 신속하게 북한쪽으로 전파하는 데 쓸 수도 있었다.
2004년 6월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의 이 골칫꺼리를 철거하였다. 북한의 對南방송과 같이 없앤다는 모양새를 취하였으나 이는 黃金과 돌을 맞바꾼 생쇼였다. 노무현 정권에 영합하여 對北방송을 철거함으로써 몇 개 군단보다 더 효과가 있는 심리전 무기를 없애버린 당시 군 지휘부는 용서 받을 수 없는 利敵, 自害행위를 함 셈이다. 이는 북한의 同族에게 진실이 전달되는 통로를 막아버린 反민족적, 反통일적, 反민주적 행위이기도 하였다.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데 한국은 휴전선 방송조차 재개하지 못하니 북한정권과 종북 빨갱이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북한군은 휴전선상의 방송 중단 때 합의하였던 자신들의 의무(서해상의 교신)는 지키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對北방송을 재개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것이다.
===========================================================================
휴전선상의 對北진실방송을 재개해야
북측이 西海교신 합의를 파기했으니 휴전선 방송을 일방적으로 재개할 권한이 있다.
趙甲濟
남북 군 당국이 서해상의 우발 충돌을 막기 위해 개통한 함정간 무선통신망이 북측의 비협조로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국방부가 3일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에 보고한 '남북 군사관계 현황과 대비' 자료에 따르면 2004년 6월 서해 무선통신망 개통 이후 남측 함정이 올 10월말까지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 104 차례 호출했지만 북측은 단 한 차례만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월엔 북한이 몇 차례 응답했으나 그 횟수는 한 자리수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은 2004년에 서해상에서 남북한 함정이 교신하여 상호 충돌의 위험을 배제한다는 것을 이유로 삼아 휴전선의 對北(진실)방송을 폐지시켰었다. 북한정권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對北방송을 폐지한 대신에 우리가 얻은 交信합의는 기능을 상실했으니 우리는 결국 휴전선상의 對北방송이란 가장 유효한 심리전 수단만 떼 먹힌 셈이다. 우리 군은 이제 남북한 약속의 失效를 선언하고 일방적으로 휴전선 對北 방송을 재개해야 할 것이다. 북한군 70만 명이 愛廳(애청)했던 휴전선 방송은 그들에게 진실을 전해주는 통로였다. 정부는, 김정일을 편하게 해주기 위하여 북한군의 눈과 귀를 막은 노무현 정권의 이 건 관련자들을 利敵혐의로 수사해야 할 것이다. 휴전선 방송 포기는 몇 개 사단을 해체하는 것보다 더한 戰力 손실을 한국군에 가져왔다. 創軍 역사상 한국군의 戰力을 이렇게 약화시킨 賣國행위는 달리 없었다.
*****************************************
對北진실 방송의 종언, 그 뒤의 사태
조갑제
1. 金正日이 그렇게도 골치아파하고 북한군인들은 그렇게도 목말라하던 對北진실방송을 김정일측의 요구에 따라 對南허위방송과 맞바꾸어 없애버린 盧武鉉 정권-국방부와 청와대와 통일부의 관계자들은 독재자의 안락함을 위해 동포들과 진실을 버린 민족사적 범죄를 저질렀다. 김정일 독재를 연장시키는 데 기여할 이런 일들은 머지 않아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2. 시계가 없는 북한군인들은 우리쪽 전광판의 시간표시를 보고 교대시간을 알곤 했다고 한다. 북한주민들에게 열려 있던 외부의 통로, 그것도 진실로 통하는 통로를 독재자 한 사람의 편의를 위해 없애버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평화란 거짓말로써 국민들을 속이고 또 자랑하는 자들에게 통일 된 뒤 북한동포들이 거칠게 따질 날이 올 것이다.
3. 북한군에 대한 국군의 가장 유효한 전략무기를 없애버린 자들을 군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가장 좋은 무기를 없애놓고도 즐거워하는 집단이 있다면 필경 자살에 이를 것이다.
4. 하벨 체코 대통령이,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독재자를 위하고 북한동포를 외면한 것이라고 공개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7천만 민족은 진실과 동포를 외면하고 독재자를 섬긴 자들의 이름들을 꼭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무덤에 침을 뱉을 가치도 없겠지만.
5. 김정일은 남한의 친북세력을 동원하고 좌파정권의 호응을 불러 국군을 약화시킨 뒤에 武力의 우위하에서 적화통일을 달성하려고 할 것이다. 앞으로 對南전략의 초점은 국군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거짓과 진실을 맞바꾼 이번 거래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고철화된 재래식 무기와 국군의 신예무기를 맞바꾸는 식의 減軍 협상을 제안할 것이다. 이 전략이 평화와 교류란 미명하에서 성공하면 북한군은 핵폭탄과 대등한 정규군과 우세한 예비군을 가지게 될 것이며 여기에 남한내 친북세력과 주한미군의 철수 내지 중립화가 더해지면 북한은 對南군사우위에 서게 된다. 그날이 赤化통일이 되는 날이다.
42년간 북녘 울린 '자유의 소리' 마지막 방송
"월드컵 중계땐 북쪽서 '와~'하는 함성"
▲ 대북방송 진행자 장광복 위원
“우리들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민족 공동번영과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남북 간 합의사항들을 착실히 이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며 ‘자유의 소리’ 방송을 들어준 인민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무궁한 행운을 빕니다.”
지난 14일 밤, 국군 심리전담방송과 장광복(49) 위원은 북녘을 향해 마지막 코멘트를 날렸다. 그의 목소리를 끝으로 지난 42년간 전방의 확성기를 통해 북측에 울려퍼진 ‘자유의 소리’ 방송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월드컵 생중계 때는 북측에서 함성 들려
15년간 ‘북한 청취자’를 대상으로 아나운서, PD, 구성작가의 역할을 해온 장 위원은 갑작스런 ‘실직’에 시원섭섭했다. “남북한 화해와 협력을 위한 일이니 기쁘게 받아들여야죠. 하지만 섭섭한 마음을 지울 수 없네요.”
장 위원은 ‘자유의 소리’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지막 방송을 녹음하면서도 눈물이 나왔는데, 지금 얘기하면서도 또 이러네.”
기독교방송 성우였던 장 위원은 지난 1990년 국군 심리전담방송과 아나운서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민영방송이 생겨나며 여러 곳에서 제의가 왔지만, 그는 특수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곳을 택했다. 그는 “확성기를 통해 방송이 나가다보니, 목소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말해야 했다”면서 “처음 이 곳에 와 6개월동안 몸무게가 5㎏이나 빠졌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맡았던 프로그램은 남한 사회의 각종 풍물을 소개하는 ‘산 따라 풍류 따라’. 최근까지 드라마 형식의 ‘우리 사는 세상’과 남한의 소식을 전하는 ‘오늘의 초점’을 진행했다. 또 음악 프로그램인 ‘청춘을 즐겁게’와 시사 프로그램인 ‘통일로 가는 길’, 천주교 프로그램의 제작도 맡았다.
모두 녹음 방송이었지만,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경기는 생방송으로 중계를 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개막전부터 생중계를 했어요. 남한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북쪽에서 ‘와~’하는 함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이효리, 렉시, 코요테 노래 북측에 방송
인터뷰를 하는 장 위원의 옆에는 ‘청춘을 즐겁게’ 큐시트(Cue Sheet)가 놓여 있었다. 20분짜리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노래는 4곡. 렉시, 이효리, 이수영, 코요테 등 요즘 인기가수들의 노래가 편성돼 있었다.
북쪽의 대남방송이 선동·비방·체제선전에 치우쳐 있는 반면, 남쪽의 대북방송은 주로 음악·스포츠·뉴스에 관한 소식으로 꾸며졌다. 1990년대 초 고위급회담 이후로는 ‘북괴’ ‘괴뢰군’이란 말이 ‘인민군’ ‘북한군’으로 바뀌었다. 장 위원은 “탈북 병사들한테 들으니, 남측 아나운서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한국의 가요가 북한 병사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 탈북 병사는 ‘이 밤을 그대와 함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아나운서의 얼굴을 보겠다고 방송국에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장 위원은 ‘자유의 소리’가 ‘대북 선전 방송’으로 인식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이 ‘왜 그런데서 일하느냐’고 하셨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장 위원은 1983년 기독교방송에 입사하기 직전까지 부산의 한 수녀원에서 영아들을 돌보며 신부의 꿈을 키웠지만, 집안 사정으로 포기했다.
장 위원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미정”이라고 답했다. “남북 회담이 열릴 때마다 북측이 방송 중단을 건의해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급작스레 중단될지는 몰랐어요.”
현재 ‘자유의 소리’에는 아나운서·성우 20여명을 포함, 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장 위원은 “방송 중단으로 평화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래도 ‘자유의 소리’가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의 소식을 알리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박내선기자 nsun@chosun.com )
******************************************
국군의 對北 자유방송 포기 內幕
『군사분계선에서 양측 병사들의 樂(낙)이 사라졌다. 정보에 목마른 북한군이 항의 데모할지도』
對北 「진실방송」의 終焉
지난 6월14일 오후 11시50분. 서부전선 非무장지대인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고지에서는 1962년부터 42년간 계속됐던 「자유의 소리(VOF)」 마지막 방송이 흘러나왔다.
인근 전광판에는 「평화·화해·협력」이라는 노란 불빛의 글씨가 켜졌다. 같은 시각 휴전선 일대의 모든 전방고지에서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방송은 『「자유의 소리」와 북한의 확성기 방송은 6월15일 0시부로 함께 막을 내리게 됩니다』라는 고별멘트로 시작됐다. 이어 『1962년 시작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유의 소리」는 국내외 소식을 비롯한 다양한 상식과 즐거운 음악 등을 내보내 군사분계선 지역에 근무하는 인민군 여러분의 마음을 여는 눈과 귀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고 했다.
방송은 『끝으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면서 그동안 「자유의 소리」를 청취해 준 인민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무궁한 행운을 빕니다』라는 말로 마무리됐다. 10분간의 방송이 마무리되는 순간, 전광판의 불빛도 사라졌다.
南北은 지난 6월12일 개성에서 열린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접촉에서 군사분계선(MDL) 일대 宣傳(선전)수단 제거에 합의했다. 金正日이 그렇게도 골치 아파하고 북한 군인들은 그렇게도 목말라 하던 對北 「진실방송」이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南北은 8월15일까지 MDL 지역의 확성기, 돌 글씨, 입간판, 전광판, 전단, 선전그림 등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南北 양측의 宣傳수단을 3단계로 나눠 제거하기로 했다. 작업결과 검증은 肉眼으로 확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의문점이 발견되면 통지문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고 한다.
軍 관계자들은 『남측의 주요 관심 사안은 서해상에서의 무력충돌 방지였고, 군사분계선 일대의 우리 측 對北 선전물을 철거하고 선전방송을 중단시키는 게 북측의 회담 목표였다』고 했다.
선전판 및 선전시설이 南北 간의 논의대상이 된 것은 1992년 南北 고위급 회담 때부터다. 南北은 상호 화해와 불가침 원칙에 따라 非무장지대 선전물을 통한 상대방 비방·중상을 중단하기로 했다.
南北관계 경색으로 고위급 회담의 기본합의서가 이행되지 못하면서 이 같은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2000년 6월15일 남북 頂上회담에서 다시 의제로 등장했다. 頂上회담 직후 南北은 휴전선에서 상호비방을 일시 중단했다.
對北방송 포기 압력은 利敵行爲
북한은 2003년 7월 제11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방방송 중단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같은 해 8월1일 대표적 對南방송인 「구국의 소리」 방송을 전격 중단했다.
북한의 이 같은 비방방송 중단은 이번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우리 측에 MDL(군사분계선)의 선전 중단을 요구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 金正日은 對北방송이 체제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무기로 인식한 것이다.
방송用 확성기를 통해 내보내는 일기예보, 新世代 음악 등은 북한군을 내부적으로 동요케 만들었다. 귀순한 북한 군인들은 『시계가 없던 탓에 남쪽 전광판의 시간표시를 보고 교대시간을 알곤 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對北 선전방송 포기는 북한 주민들에게 열려 있던 외부의 통로, 그것도 진실로 통하는 통로를 독재자 한 사람의 편의를 위해 없애 버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黃長燁(황장엽) 前 북한 노동당 비서는 『북한이 「서해 무력 충돌 방지」라는 작은 선물을 주고, 인민군의 思想을 바뀌게 하는 휴전선에서의 남측 전광판을 없애고, 남한 국민들이 미국을 멀리하게 만드는 더 큰 목적을 위해 거짓 화해를 벌이고 있음에도, 靑盲(청맹)과니(눈 뜬 봉사) 남한 사람들은 거기에 놀아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閔丙敦(민병돈) 前 육사교장은 『전광판에 버튼 하나로 각종 정보를 표시하는 남측과 「돌 글씨」와 같은 원시적인 방법으로 선전하는 북측과는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았다』면서, 『북쪽에서 먼저 철거를 원했다면 代價를 받았어야 했다』고 했다.
국방부, 『李鍾奭 처장이 방송포기 압박』
국군의 對北 선전방송 포기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李鍾奭(이종석) 사무처장이 주도한 것이라는 주장이 軍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李처장이 「南北 장성급 회담에서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북측이 주장하는 對北방송 중단과 군사분계선 선전물 철거에 응하라」고 했다』면서 『曺永吉(조영길) 국방장관은 여러 차례 「軍 작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청와대의 의지가 강력해 뜻을 펴지 못했다』고 전했다.
李처장은 지난 6월19일 陸士에서 개최된 「2004년 무궁화 회의」에 강사로 초대돼 각 軍 장성 70∼80명을 상대로 안보 관련 현안을 설명하면서, 『앞으로는 병사들을 교육할 때 북한에 적개심을 갖도록 하는 것보다는 시민정신과 국가에 대한 자존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對北 적개심을 해소하는 쪽으로 장병 정신교육을 하도록 軍 장성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軍 관계자는 『군인에게 적개심은 공포감을 물리치는 중요한 戰力』이라면서 『군인에게 그런 戰力을 포기하라고 유혹하고 권고하는 것은 利敵행위』라고 못 박았다.
北은 휴전선 부근의 선전수단 제거와 관련, 金正日을 찬양하는 「돌 글씨」를 제거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 측은 합의서에 명시된 1단계 공사를 완료했다.
북측은 군사분계선(MDL) 남측에 건립돼 있는 종교시설물을 북한군에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 줄 것을 요구했다. 남측은 『종교시설물은 선전수단이 아니며, 민간시설이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결국 한발짝 물러났다고 한다.
對北방송 「자유의 소리」 아나운서로 15년간 방송을 진행한 張光福(장광복) 방송심리전 전문요원은 『북한 사회에 福音(복음)을 전해 준 고정 청취자 70만 명의 對北 확성기ㆍ전광판 방송 철거는 金正日을 돕고 북한동포를 버린 自害ㆍ利敵 행위』라고 했다.
(박정희 사랑에서 펌)
[ 2008-12-04, 00:35 ]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