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변침》에 수록된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國家 理性이 마비되는 과정
4월16일 오전 10시50분경. 세월호는 172명을 제외한 나머지 294명의 구조 가능성을 상실한 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약 10분 뒤인 오전 11시01분부터 27분까지 모든 방송매체들은 ‘전원 구조’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誤報 대행진을 시작한다. 세월호 침몰사고에 이은 ‘2차 재난’의 시작이었다.
오후부터는 에어포켓의 주장이 매스컴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생존자들이 에어포켓 속에서 카톡 메시지를 날리는 것처럼 가장한 거짓 메시지들이 SNS를 통해 등장한다. 매스컴은 사실 확인도 없이 이를 마구 전파했다. 매스컴은 아들딸의 생존을 간절히 바라는 유가족들의 절실한 마음을 분노로 바꾸며 적극 이용했다. 종편을 위시한 방송매체들은 현장을 모르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경쟁적으로 선동적 오보를 양산했다. 에어포켓과 함께 물 밑에서 생존자를 보았다는 목격담과 다이빙 벨의 구조 가능성이 연일 회자됐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방송에서는 ‘아무쪼록 희망을 잃지 마시고’라는 멘트가 계속 나갔다. ‘조작된 희망’을 근거한 신문들은 연일 백일장 하듯 감상적인 제목을 달고 선정성 경쟁에 몰입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히 누구도 ‘구조 종료 선언’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國家 理性이 마비된 채 재난상황이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5월19일, 朴槿惠 대통령은 가라앉는 선체 밖으로 나온 172명 전원을 50분 동안 성공적으로 구조한 사실은 무시한 채 ‘구조의 실패’라고 단언하고 ‘海警(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감사원과 검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무리한 끼워 맞추기식 조사와 수사를 계속했다. 언론과 방송은 이들의 발표를 비판 없이 보도하며 해경을 범죄자로 모는 데 가세했다. 대통령, 국회, 검찰, 감사원, 언론, 방송들이 합세, 海警에 책임을 전가했다. 결국 해경은 대통령의 선언 이후 6개월만인 11월19일, 역사 속으로 침몰해 버렸다. ‘3차 재난’이었다.
그리고 세월호 사고 228일만에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에 따라 2015년 국회는 세월호 특별조사를 필두로 ‘4차 재난’을 예고하는 중이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제대로 된 복구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채 끝없이 국력을 漏水(누수)하는 재난 확대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구조의 성공’이며, ‘복구의 실패’이고 ‘재난의 확산’으로 요약된다.
SAR 협약의 ‘합리적 희망’
水密(수밀)되지 않는 합판 재질의 객실을 가진 여객선이 약 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돌아누우며 섭씨 11도의 물 속으로 가라앉으면 그 안에서의 생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단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이런 추정도 가능하다. 과연 에어포켓 같은 호흡할 만한 공간은 형성된 것일까? 만에 하나 이런 공간이 객실의 모서리 부분마다 약간씩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안에서 머리를 물위로 내민 채 버틸 수 있는 최장 시간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답변들이 마련되어야만 목숨 건 잠수 구조의 종료 시간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해난사고 발생시 구조의 주체인 海警에는 인명구조를 위한 기간과 책임이 무한대로 주어지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해양 수색 및 구조에 관한 국제협약’이라 불리는 ‘SAR 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Maritime Search And Rescue)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SAR 협약은 1979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유엔 산하의 國際海事機構(국제해사기구·IMO)가 중심이 되어 20여 개국이 체결하면서 탄생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52번 째로 1995년 4월 공식 가입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해역에서의 해난구조활동이 국내 선박은 물론 SAR 가입국 선박으로까지 확대됐다. 동시에 우리나라 선박이 가입국 해역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도 협약 가입국으로부터 국내와 동등한 구조지원을 받게 된다.
2014년 12월1일 러시아 베링해에서 침몰한 사조산업의 어선 오룡호의 경우도 러시아와 미국의 해안경비대 및 인근 어선들의 구조지원을 받았다. 이처럼 1995년 이후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해양경찰은 SAR 협약에 입각해 모든 해난 구조에 임해온 것이다. 이 SAR 협약서 4.8에 보면 ‘수색 및 구조활동의 종료와 중지’에 대한 규칙을 정해 두고 있다. 인용해 본다.
<4.8.1 수색 및 구조활동은 실행가능한 한, 생존자 구조에 대한 모든 합리적인 희망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4.8.1 Search and rescue operation shall continue, when practicable,until all resonable hope of rescuing survivors has passed.)>
4월16일 오전 10시50분경, 세월호는 선수 밑부분만 수면위로 내 놓은 채 가라앉아 버렸다. 水密(수밀) 능력이 전혀 없는 객실 안으로 물이 들어찼고 수온은 건장한 사람이 3시간을 버티기 힘든 섭씨 11도 였다. 이럴 경우 과연 ‘합리적 희망’은 언제까지로 보아야 하는가.
‘합리적 희망’과 생존 가능 여부
SAR 협약서에는 ‘합리적 희망’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들어 있지 않다. 이 경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을 마련하려면 결국 통계적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통계란 무수한 빈도수를 근거로 삼는 수학적 산정방식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해난사고는 20년에 한 번 꼴로 발생하니 이 또한 통계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과연 ‘합리적 희망’은 언제까지 일까. 세월호 현장에서 210일간 잠수 수색을 지휘해 온 해경의 경비안전국장 이춘재 치안감은 “생존자가 1%라도 있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수색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해경의 입장”이라고 말해주었다. 기자가 ‘그 시각을 언제로 보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18일 오전 0시30분”이라고 답했다. 그 전까지는 생존자가 있다고 간주하고 확인 수색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8일 오전 0시30분이되면 수면 위로 떠올랐던 세월호의 球狀船首(구상선수)가 물 속으로 잠기면서 선체 전체가 45m 해저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생존 가능성이 0%로 굳어지던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이 사태를 관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만나게 된다. 재난 관리를 연구하는 防災學(방재학)에서는 구조를 위한 ‘대응단계’가 끝나면 ‘복구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어느 누구도 ‘구조 종료 선언’을 하지 못했다.
해난사고의 복구는 사고 현장에 가라앉은 화물과 선체의 인양이 포함된다. 防災學이 발전한 西洋의 잣대로는 화물의 인양 속에 屍身(시신)도 포함된다. 하지만 屍身을 보다 엄중히 여기는 東洋에서는 屍身을 화물과 同格으로 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도 매뉴얼을 마련하는 데에 모호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한 번도 이런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엄격한 절차를 마련할 수 없다. 屍身을 화물과 同格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屍身을 생존자와 同格으로 둘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없었던 것도 복구 과정을 실패로 몰아가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屍身이 화물이냐 사람이냐 하는 차이는 잠수 수색 현장에서 드러났다. 屍身을 화물로 간주했더라면 뻘물이 최고 5.6노트 이상의 속도로 흐르는 바다 속에서 210일 동안이나 목숨을 건 잠수 수색과 시신 인양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양할 가치가 있고 인양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인양했을 것이다. 인양할 가치가 있더라도 인양 가능성이 없다면 과감한 포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屍身을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는 경우, 무리를 해서라도 잠수 수색과 인양을 하도록 종용하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그러한 무리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2명의 민간 잠수사와 5명의 소방대원 등 총 7명의 생명을 잃어야 했다.
북한에 아직도 국군포로 500여 명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해 오면서, 시신 인양을 위한 구조대원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태도가 과연 우리의 ‘합리적인 희망’인가. 살아있는 우리들은, <과연 이것이 ‘합리적인 희망’이라고 불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질문을 외면한다면 미래에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드는 데 현재의 살아있는 우리들이 일조하는 셈이 된다. 언젠가 또 다시 발생할 대형 참사에 우리가 미리 죄를 짓고 업을 쌓는 셈이 된다.
‘상식 밖의 세계 신기록’
비합리적 관행으로 빚어진 또 다른 참사도 있다. 해난사고 발생시 해양구조의 협력세력인 어민과 구난업체들은 중앙재난대책본부의 從事命令(종사명령)에 따라 구조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 이 명령을 어길 시에는 벌금을 물게 돼 있다. 대신, 구조에 참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재산상 피해는 정부가 보전해 주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정부는 인색한 원가계산을 통해 절반도 안 되는 청구액의 33% 정도를 보상금으로 제시했다.
이로써 해양구조 협력세력들은 추후에 국가로부터 종사명령을 받을 시 무조건 벌금형을 받는 쪽이 손실을 막는 길이라는 새로운 학습의 기회를 갖게 됐다. 벌금은 최고 300만 원인데 손실은 수억 원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국내 유일의 해외 구난 업체 ‘언딘’은 파산의 위기를 맞았다. 이런 피해는 누가 보상하나?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海警은 물론이고 재난관리의 총체적 책임을 가진 정부조차 ‘합리적 희망’의 종료 시점을 용기 있게 ‘선언’하지 못했다. 용기가 있었다면 2박3일만에 구조 수색은 중단됐을 것이고 차분한 복구가 진행됐을 것이다. 용기가 없는 댓가로 우리는 장장 210일 동안 구조 수색을 했다는 ‘상식 밖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게 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국가도 침몰선의 구조 수색을 이만큼 해낸 사례가 없다고 한다.
인생은 세월호를 삼킨 바다보다 더 험난하다고들 한다. 그런 바다를 건너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런 용기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정직해야 용기가 생기는 법이다. 진실을 직시하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거짓말을 하며 비겁을 무기로 삼고 사는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에서 용기 있는 자와 비겁한 자의 승부는 어떻게 결판나는 것일까? 승자는 이득을 보는 쪽이고 패자는 손해를 보는 쪽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도 오보와 선동에 이리저리 휘둘린 유가족들이었다. 동정 받아야 할 사람들이 난폭해지면 미움을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유가족들은 선동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 다음 피해자는 해경과 구난업체들 그리고 국민들이다.
‘4차 재난’으로 확산되어 가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가장 큰 승리를 쟁취한 쪽은 상황에 따라 거짓말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일 것이다. 대통령을 오판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챙긴 특정 공무원 세력, 분노한 유가족들에게 선거 유세하듯 입맛에 맞는 말만 해 가며 박수 받은 정치인들, 그들을 추종한 감사원과 검찰, 언론과 방송들이다. 그런데 정작 선량한 국민들에게 ‘합리적 희망’은 있기나 한 것일까.●

거꾸로 쓴 세월호 전복·침몰·구조 보고서
연 속 변 침
732쪽 | 신국판(152*225) | 22,000원 | 2015년 4월8일 출간 | 979-11-85701-10-3
사회과학>정치·사회 일반>언론
 
|책 소개|
세월호 속으로 潛水한 기자가 건져 올린 진실은 무엇인가?
세월호 사고를 ‘거꾸로’ 보다!
<조갑제닷컴>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연속변침》(李東昱 著, 732쪽, 2만 2000원)을 펴냈다. 著者(저자)는 기존의 접근방식과 다른 취재 방법을 선택했다. 직접 21분간 潛水(잠수)하여 船體(선체)와 작업 상황을 확인하고, 해경 구조대원 집단 인터뷰·새로운 航跡圖(항적도)를 발굴하는 등 사고의 全과정을 입체적으로 밝히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쓴…’이란 副題(부제)가 붙었다. 
21분: 세월호 취재 위해 최초로 21분 간 潛水!
저자인 李東昱(이동욱) 기자(前 月刊朝鮮 기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조에 최선을 다한 海警(해경)이 해체되고, 언론은 해경을 亂打(난타)하는 등 선동적 분위기에 반발, 이를 檢證(검증)하고자 잠수취재를 결심했다고 말한다. 그는 230시간이 넘는 잠수 경력을 가졌음에도 ‘21분’간 잠수를 한 뒤 ‘숨이 막혀 왔다’며 잠수부들의 구조가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 책에는 李東昱 기자와 해경 잠수요원들이 바닷 속에서 벌인 임무수행(유실방지망 점검) 과정, 침몰한 세월호 船體(선체)의 外觀(외관) 등이 사진과 함께 실려있어 현장감을 더해준다. 
21초: 침몰의 원인은 ‘급변침’ 아닌 21초간의 ‘연속변침’
검찰은 공소장에서 세월호 침몰의 주된 원인을 ‘急變針(급변침)’으로 지목, 언론도 이를 그대로 수용해 급변침만 다룬 기사를 많이 보도했다. 저자는 ▲變針(변침) 시간 간격 ▲항적도 ▲타겟 리스트 등 새 자료를 수집·분석, 검찰 공소장의 오류를 지적하며 5도 → 5도 ‘연속변침’이 침몰의 진짜 원인이었음을 증명했다. 즉 21초간의 연속변침으로, 過積(과적)되고 제대로 固縛(고박)되지 않은 화물들의 ‘左舷(좌현) 쏠림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고 당일 조타실 내부에서 벌어진 연속변침 상황을 사실에 입각해 再구성, 세월호가 처했던 21초간의 ‘운명적 상황’을 생생하게 재연해냈다. 
言論의 선동·왜곡 보도 비판
세월호 사고 후 메이저 언론사들까지, ‘해경의 구조작업은 실패했다’며 ‘얼치기’로 표현하고, 구조작업을 ‘엉망’으로 단정하는 등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투의 기사를 쏟아냈다.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살리지 못한’ 책임을 해경에 씌우고 꾸짖음으로써 正義를 구현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론 不義(불의)를 저지른 셈이 됐다. 진실 위에 정의를 세워야 자유를 지킬 수 있지만, 正義 위에 진실을 세우려고 하면 진실은 수단화되거나, 거짓을 낳는다. 미리 내린 결론에 사실을 구겨 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엔 세월호 사고 직후부터 사실에 기초해 언론의 선동적 보도와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해온 趙甲濟, 李東昱 기자의 글들도 수록되어 있어, 세월호 보도의 선동·왜곡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海警의 ‘亂中日記’
해경은 세월호 선체 밖으로 탈출 후 구조된 172명의 승객 중, 114명과 1具의 시신을 건져 올렸다(나머지는 어선 등이 구조). 해경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구조에 실패했다’는 汚名(오명)을 쓰고 해체되었다. 이 책의 話頭(화두) 중 하나는 ‘선장이 달아나 지휘기능이 마비된 배가 절벽처럼 넘어가는데, 30분 만에 현장에 도착, 50분 만에 172명을 살린 해경이 왜 해체되었는가’이다. 
《연속변침》에는 사고 당시 구조에 투입됐던 해경 구조요원 7명의 手記(수기)와 日記(일기),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이들은 구조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秘話(비화), 언론 비판, 해경 해체에 대한 所懷(소회)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이들의 글을 정리한 著者는, “해경은 野性(야성)을 잃어버린 채 묵묵히 일만 하는 황소 같았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는 해경 해체를 비판하며 “우리는 바다를 지키는 守門將(수문장)이자 해양의 戰士(전사)들을 홀대하고 있었다”고 개탄했다.
사고 당일, 해양수산부의 중앙구조대책본부가 세월호 승선자 명단을 7번이나 수정 발표하자 不信(불신)의 불똥이 애꿎은 해경에 튀었다. ‘한 번이라도 더 틀리면 해경은 끝장’이라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해경 형사과 직원들은 정확한 승선자 수를 확인하기 위해 20여 일간 고군분투한다. 著者는 사실확인을 위한 ‘해경의 奮鬪記(분투기)’를, 記者들의 교과서를 만드는 심정으로 기록했다고 말한다. 
사고 직후, 공간적·시간적 제약 하에서 구조에 몰입하여야 했던 김경일 정장(당시 海警 123정 정장)에게 1심 재판부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趙甲濟 기자(조갑제닷컴 대표)는 ‘김경일 정장에 대한 1심 판결문 비판’이란 글을 통해, 재판부 판단의 모순점, 검찰의 무리한 起訴(기소)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책엔 인간이 있다!”
李東昱 기자는 세월호 구조와 屍身(시신) 수습에 참여한 해경 요원들에게 우호적이다. 그런 감정은 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잠수까지 해본 체험의 결과일 것이다. 인간을 통한 취재와 서류를 통한 취재의 결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엔 인간이 담겨 있다.
그 인간은 全能(전능)한 하느님일 수가 없는, 그렇다고 짐승일 수도 없는 중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세월호 사고를 보도한 기자들, 이 사고를 수사하고 판결한 판검사들이 각각 기사와 공소장, 판결문에서 想定(상정)한 인간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실수해서는 안 되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이 책은, 인간에게 완벽성을 요구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인간적 실수를 심판하면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독자들은, 《연속변침》을 통해 304명의 사망자를 낸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교훈은 물론, 언론과 정치가 만들어낸 ‘제2차 재난’의 폐해를 실감할 것이다.●
|책속으로|
필자 앞에 나타난 수많은 진실의 봉우리들을 보고 망연자실할 무렵, 인천해양경찰청 형사과를 방문했다. 거기서 필자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를 만나게 됐다. 형사들은 기자들보다 더 기자정신이 투철했다. 세월호 승선자 수를 확인하는 고난도의 진실 추적을 해냈던 것이다. 그들은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지만, 수도승처럼 묵묵히 끈질기게 그 고통스러운 작업을 완수했다.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우리 海警이 다 죽는다’는 절박감이 그들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머리글’_15페이지)
조준기 操舵手(조타수)가 복창하면서 키를 우현 5도로 돌렸다. 속력은 19노트. 그때부터 약 4분 뒤에 박한결 항해사가 다시 변침 지시를 한다.
“아저씨, 145도요.”
“예, 145도!”
조준기 씨가 타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었다. 그 순간 배가 왼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졌다. 8시48분이었다. 당황한 조준기 조타수가 소리치며 키를 右舷(우현)으로 더 돌렸다.
“어? 타! 어? 타! 타!”
거의 동시에 박한결 3항사가 소리쳤다.
“포트! 포트! 포트!”
그녀는 좌현(포트)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배의 船首(선수)는 우현으로 급회전함과 동시에 선체는 좌현으로 점점 기울고 있었다. (‘變針과 침몰’_111페이지)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海警은 물론이고 재난관리의 총체적 책임을 가진 정부조차 ‘합리적 희망’의 종료 시점을 용기 있게 ‘선언’하지 못했다. 용기가 있었다면 2박3일만에 구조 수색은 중단됐을 것이고 차분한 복구가 진행됐을 것이다. 용기가 없는 댓가로 우리는 장장 210일 동안 구조 수색을 했다는 ‘상식 밖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게 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국가도 침몰선의 구조 수색을 이만큼 해낸 사례가 없다고 한다. (‘분노의 逆流: 재난의 확산’_293페이지)
암벽 등반을 해온 記者가 40kg이 넘는 장비를 짊어지고 사다리를 오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한 칸 한 칸 발을 옮길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갑판까지 대략 5m의 거리가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갑판에 오르자 비로소 수많은 얼굴들이 걱정을 하다 무사히 돌아온 기자를 보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기자를 벤치에 앉히고 장비를 탈착시켰다. 다시 한번 미안했다. 만약, 종군 기자였다면 기자의 취재를 위해 현역군인들이 얼마나 희생하는 것일지 궁금해졌다. 좋은 취재가 기자를 영웅으로 만들지는 몰라도 그 기자의 취재를 도와준 현장의 군인과 경찰의 노고는 제대로 알려진 바 없었다. (‘潛水 취재: 세월호 속으로’_414~415페이지)
그 작전 뒤 이들 두 대원은 지금까지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으며 감사원과 검찰에 수십 차례나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조사 내용은 몇 시에 잠수를 했냐, 진짜 물에 들어갔냐, 왜 저번에 했던 말과 시간이 다르냐, 솔직히 말해라 등. 슬프게도, 목숨 건 우리의 구조능력은 국민들의 기대와 많은 차이가 났던 것이다. 두 대원은 “우리가 그때 죽었더라면 우리 조직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텐데…”라며 한탄했다. (‘海警의 亂中日記’_427페이지)
권재준 경장의 영웅적인 구조활동을 보도한 기사는 없었다. 어느 신문은 세월호 구조 활동을 비판한 기사의 1면 제목을 ‘얼치기만 있었다’고 썼다. 다른 나라의 언론 같으면 권재준 경장을 영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해경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데 장애가 되는 정보를 외면해버린 한국의 기자들은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하면서 수십 명을 구조한 권재준 같은 해경 구조대를 ‘얼치기’라고 매도하고 역적 취급을 한다. 그런 언론의 선동 보도에 영향을 받았을 대통령은 海警(해경) 해체를 결정했다. (‘긴급출동 海警 구조대원의 증언’_568페이지)
|차례|
머리글\ ‘海警 해체’ 발언에 취재 결심… ‘眞實’을 찾아 세월호로 潛水하다
화보 ① | 세월호 전복·구조·침몰
1장 _ 비극의 출발: 세월호 改造
2장 _ 마지막 出航
3장 _ 變針과 전복
4장 _ 침몰과 救助
5장 _ 분노의 逆流: 재난의 확산
화보 ② | 최초의 潛水 취재
6장 _ 476의 비밀
7장 _ 潛水 취재: 세월호 속으로
8장 _ 海警의 亂中日記
9장 _ ‘연속변침’ 21초의 비밀
10장 _ 김경일 정장을 감옥으로 보낸 사람들
11장 _ 긴급 출동 海警 구조대원들의 증언
12장 _ 언론의 선동·왜곡 보도 비판
讀後記 _ 김경일 정장에 대한 징역 4년 선고를 비판한다! (趙甲濟)
부록 _ 여객선 세월호 전복사고 특별조사 보고서(해양안전심판원 특별조사부)
|저자 소개|
李東昱_이동욱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청구초등학교, 인천 부평중학교, 부산 금성고등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 물리학과에 재학 중 군 입대를 했다.
8사단 수색대대, 75사단 정보처, 美2사단 등을 거쳐 7년간 복무를 마치고 육군 중사로 예편한 뒤 복학, 대학원에서는 정치학을 공부했다. 1993년부터 월간조선에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기자로 특채되어 활약하다 2001년에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겨 6년간 조사 전문가 겸 컨설턴트로 일했다.
이후 프리랜서 선거 컨설턴트로 세 번의 선거를 맡아 모두 당선시킨 바 있다. 모 그룹 회장 등 저명인사의 고스트 라이터로 회고록 집필과 각종 기고문 등을 쓰면서 TV조선의 ‘돌아온 저격수다’와 MBN, 채널Y 등에 출연해 정치평론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현재는 ‘팟빵’의 팟캐스트 《이동욱의 현대사 X파일》과 ‘청년미디어센터’를 통한 《대한민국 정체성 찾기 프로젝트》를 제작, 방영하고 있으며 젊은 지도자 육성을 위한 강연 《자유와 존재를 위한 아포리즘》을 지방 순회 중이다.
저서로는 《啓礎 方應謨 傳》(조선일보사), 《우리의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이렇게 죽어갔다》(기파랑), 《100% 한국인》(리즈앤북), 《이기는 선거와 현장조사》(한국갤럽·공저) 등 10여권이 있다. 사격, 스키, 암벽 등반, 스쿠버 다이빙(master diver)에 익숙하며 근래에는 하모니카 연주자로도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