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제가 2001년에 쓴 글입니다. 남북과 한미, 북미 관계가 태풍전야 같아지면서 대한해협의 파고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독도와 친일파를 사이에 두고 양국이 의도적으로 막가는 듯합니다. 4·30 보선에서 여당이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치욕의 참패를 당했지만, 독도와 친일파 문제로 민족감정을 자극하고 건국세력과 산업화세력을 매도하는 데 성공하여 노 대통령의 인기는 수직으로 상승하여 50%를 능가한답니다.
힘도 없고 지혜도 없는 자가 큰소리치면 마라톤 경주 초반에 100미터 달리고 말 듯이 질주하는 것처럼 잠시잠깐 각광을 받을 뿐, 이내 크게 비웃음을 사고 영원히 TV 화면에서 사라집니다.
한국이나 북한이나 아직은 주변 4강에 큰소리칠 입장이 못됩니다. 자존심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함부로 대들다가는 뼈도 못 추립니다. 떼쓰기는 든든한 형이나 아버지가 있을 때 가능한데, 남북이 약속이나 한 듯이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군사와 외교 양면에서 결코 우리편이 될 수 없는 중국을 대원군이 청에게 의존하듯 세상에서 제일 힘센 아버님인 양 믿고서, 시시때때로 정체불명의 민족공조란 노래를 돌림으로 부릅니다.
전에는 한국이 미국을 믿고 일본에게 얼마든지 떼를 쓸 수 있었지만, 이젠 미국 형님 대신 작심을 한 듯 자진해서 중국을 아버님으로 섬기면서 어디 한판 붙자고 팔을 걷어붙이니, 일본이 가소로워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북한도 스탈린과 모택동 시절에 소련과 중국을 믿고 마음껏 떼쓰고 아예 깽판을 쳤지만, 지금의 푸틴과 호금도는 권력에 환장한 광인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지도자입니다. 죽은 아버지와 죽은 모택동을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연일 부시와 설전을 벌이는 김정일의 떼쓰기와 막가기를 그들도 어느 정도 이상은 용납하지 못합니다.
일본은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의 식민지였던 삼국통일 시절의 왜가 아닙니다. 인구나 국부(國富)나 과학기술이나 학문이나 외교 역량이나 군사력이나 우리는 아직 숫제 일본의 상대가 안 됩니다. 노는 물이 다르고 어울리는 무리가 다릅니다.
우리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힘을 기르고 지혜를 쌓아야겠습니다.
(200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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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일본의 역사 왜곡]
예상대로 일본의 '애국자'들이 쓴 역사 교과서가 국가의 공식 허가를 받았다. 이에 발끈하여 한국과 중국, 북한이 한 목소리로 성토를 하고 일본의 극소수 '양심'들이 크게 우려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일본국'의 공식 대응은 여유롭기만 하다.
--새로 수정할 수 없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국정이 아니고 검인정이다.
한국과 중국은 외교부 장관이 일본 대사를 불러 한쪽은 슬쩍 경고를 하고 다른 한쪽은 강력히 항의했다. 이어 한국은 주일 대사를 소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격앙한 목소리와는 달리 한국 정부의 외교적 충고는 봄바람 같다. 1998년 이후의 선린 우호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겠다는 뜻을 은근히 전달하고 월드컵 공동 개최와도 연계하지 않겠다며 차분하게 대응을 하고 있다. 한승수 장관의 말,
--일본은 역사 왜곡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이번 일로 대일감정이 나빠지면 내년의 월드컵 공동 개최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재수정은 직접 요구하지 않겠음).
사전(데라다) 일본 대사의 말,
--역사 교과서는 근린제국 배려원칙 등에 입각해 엄정하게 검토된 것이다(말씀은 고맙지만, 문부성이 137군데나 수정지시를 내려 대부분 고친 사실을, 최대한 배려한 결과물임을 알아 주기 바람).
[일본의 역사 왜곡은 일본식 역사 바로 세우기]
일본의 끈질긴 역사왜곡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일본의 역사 기술 방법과 다른 하나는 일본의 국민성이다.
첫째, 일본의 역사 기술 방법.
일본의 역사왜곡은 명치유신 이후 조선을 병탄하기 전 정한론(征韓論) 때부터 한국인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뿌리는 깊어 한반도에 통일 국가가 들어서면서 일본이 딴 살림을 낸 이후에 쓰여진 일본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을 병탄해서 식민통치할 때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한국 역사는 지옥에 쑤셔 넣고 일본 역사는 천당까지 끌어올렸다.
그 교육 효과는 대단하여 아직도 한국인들은 '엽전의식, 약소국의 비애, 불완전한 삼국통일, 오천 년 가난, 단군 부정'으로 스스로를 멸시하고, '일본 문화 동경(어린이의 일본 만화와 오락으로 밤낮을 잊어버리기에서 청소년의 일본 대중문화 베끼기를 거쳐 어른의 일본식 단결, 질서, 장인정신 사모하기까지), 일본 경제 부러워하기, 일본 정치 흉내내기(정경유착이니, 금권정치니, 주군과 가신이니, 하는 일본말을 그대로 가져와서 그대로 실천한다), 일본 교육 따라하기(한국의 교육 체제는 아직도 거의 일제 시대와 변함이 없다)'에서 보듯이 일본을 영혼 깊숙이 주군으로, 스승으로, 양부모로 모시고 있다.
[한국의 역사 기술의 대원칙--춘추필법]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는 역사 기술 방식이 전혀 다르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중화사상에 입각한 역사 기술이고 한국은 공자의 춘추필법을 그대로 따라 유교적 입장에서 선악을 기준으로 세워 선(善)을 사랑하고 악(惡)을 미워하되, 그 둘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다. 이건 서양의 근대역사학을 배운 이후로도 변함이 없다.
정권을 잡으면 정권을 잡은 쪽이 선이 되어 그를 기준으로 현대사를 기술한다. 정권에 반대하는 쪽은 그 정권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기들을 선으로 확신하고 역사를 기술한다. 한국은 서로 다른 정권이 크게 자유당, 민주당, 공화당-민정당-민자당, 신한국당-민주당으로 바뀌면서 그 때마다 판이하게 역사 기술이 달라졌다. '역사 바로 세우기'와 '제2의 건국'으로 선악의 기준이 바뀌었고 현대사도 획기적으로 달리 기술되었다. 반면에 북한은 정권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김일성 부자가 선의 기준이 되어 철저하게 김씨 왕가 중심의 역사 기술을 고수했다.
[일본의 역사 기술의 대원칙--좋은 이야기만 쓴다]
일본은 일본대로 고대 이래 현재까지 역사 기술이 일관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미화'이다. 일본은 철저히 집단주의 문화이기 때문에 자기 집단에 대해서는 나쁘게 기술하지 않는다. 맥아더에게 '천황 자리'를 내주면서, 그들의 침략 역사를 교과서에 담았지만, 그것은 전혀 혼네(본심, 本音)가 아니었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그랬을 따름이다.
힘있는 자에게는 언제든지 굴복하고 거기서 실리를 취하는 일본인인지라, 힘이 조금만 생기면 다떼마에(겉치레, 建前)의 틈새로 이 본심을 드러낸다. 한국인이 크게 착각하는 것은 일본의 거듭되는 망언이 일부 몰지각한 극우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아마 일본인의 99%는 일본의 현대사 역사 서술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강한 미국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역사 서술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든 북한이든 중국이든 대만이든 1960년만 되면 경제력이든 학문이든 과학기술이든 정치든 뭐든 전혀 일본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사 기술에서 본심의 한 자락을 누군가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힘센 미국에 대해서는 대체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한테 '까불' 정도의 힘은 갖게 되자 민간인 차원에서 '도라, 도라, 도라'라는 영화를 만들어 진주만 침략을, 은근히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척하면서 미화했다.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만약 미국이 형편없는 나라로 추락하고 일본이 미국을 월등히 능가하게 되면, 2차 대전 후의 미국에 의한 일본 '식민 지배'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술할 것이다.
80년대에 일본이 미국을 능가할 조짐이 보이자, 즉시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으로 그 본심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역사 왜곡에 드러나는 일본의 국민성]
둘째, 역사왜곡에서 드러나는 일본의 국민성.
일본 국민성은 여러 가지로 한국과 대조적인데, 위에서 암시한 것과 같이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선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본인과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악하고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의 차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역사 왜곡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대조적인 국민성은 바로 한국의 '콘크리트' 국민성과 일본의 '벽돌' 국민성이다.
[한국이 콘크리트라면 일본은 벽돌]
한국은 화끈하여 잘못되었다 싶으면, 힘을 가진 순간 일시에 바꾸어 버린다. 집을 확 허물고 며칠 사이에 콘크리트를 비벼 넣어 우람한 형태의 새 집의 골조를 만든다. 그 후에 보아가며 이것저것 갖춰 나간다. 좀 하자가 있지만, 고치면 10년이나 20년은 끄떡없을 집을 단숨에 뜯어내고 기세 좋게 콘크리트를 부설하다가 그만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서 콘크리트만이 거대한 모습으로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수가 많다.
반면에 일본은 쩨쩨하여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간다. 처음에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뭐라면 한두 개 벽돌을 들어내기도 하지만, 사람이 바뀌어도 그 벽돌을 계속 쌓아간다. 시간이 점점 흘러가면, 그것은 언제 그렇게 되었나 싶게 견고하기 짝이 없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멋진 건물이 된다. 모든 거래에도 이들은 이렇게 한다. 조금씩 조금씩 야금야금 파고든다.
한국인: 100달러, 그 이하는 절대 안 돼.
일본인: 하이.
며칠 후
일본인: 99달러 99센트로 하면 안 될까요?
한국인: (경멸하는 눈을 숨기지 않고, 잠시 침묵) 좋소.
한국은 수출할 때 한꺼번에 왕창 실어 나르길 좋아하고, 협상을 해도 '극적'인 타결을 보길 아주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 잘 되는 수도 더러 있으나 대개 뒤통수를 한 대 맞는다. 일본에 비해서는 수출이 보잘것없으면서도 무역제재는 한국이 도맡아 놓고 당한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유학을 가도 오로지 혼자 힘으로 공부하고 그것을 족보로 만들어 놓지 않고 자기 머리 속에만 집어넣고 와서 국내서 조금씩 꺼내면서 큰소리친다. 일본인은 그렇지 않다. 일일이 모아서 정말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그가 누구든 다른 일본인에게 전달한다. 우린 기껏해야 족보를 준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절친한 후배에게나 준다.
국가 행정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만 바뀌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 바뀐 장관한테 6개월마다 똑같은 브리핑 준비하느라고 날밤을 새운다. 그 아래 차관, 국장, 과장, 계장, 줄줄이 브리핑하고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잘해 봅시다!' 그러다가 또 사람 바뀌고...
역사왜곡도 일본은 정확히 그 '벽돌' 국민성을 따른다. 그들의 본심은 이번에 통과된 것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일제시대 때 가르친 그 황국사관에 의거한 그 역사이다. 그들로서는 역사왜곡이 아니라 '역사 바로 쓰기'(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다. 그러나 절대 이를 한꺼번에 드러내지 않는다. 무수한 '애국적' 망언과 무수한 '애족적' 역사 왜곡에 이은 정부의 거듭된 수정지시로 한국과 중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서서히, 서서히, 서서히, 끈질기게, 끈질기게, 끈질기게,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그들의 본심을 드러낸다.
[초조해진 일본--한결 강해진 보수화]
이제 일본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10년의 불황으로 국민들이 무기력에 빠져 있다. 거지와 도둑과 깡패의 나라 중국이 알부자와 상인과 군인의 나라 중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흥부의 나라 한국이 놀부의 나라 한국으로, 들쥐의 나라 북한이 이리의 나라 북한으로 바뀌었다. 저들끼리 노는 남북의 꼴이 같잖지도 않지만, '우당탕탕' 저것들은 전쟁을 하든 '엉엉' 극적인 타결을 보든 머잖아 하나로 뭉쳐질 게 뻔하다. 언제까지 본심을 숨길 수 없다. 아직 힘이 월등할 때 저들을 '구원'할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여차직하면 다시 한반도를 접수할 수도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일본 위주로 경제 블록을 만들어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남남 대결이 갈수록 격화되고 남북 동상이몽이 갈수록 무지개처럼 찬란해지는 이 때가 절호의 기회다.
[우리의 대응]
첫째, 우리부터 춘추필법에 의한 정권 위주의 역사 서술을 바꾸어야 한다.
둘째, 정부와 국민, 학계, 여야가 합심하여 단호하게 저들의 역사왜곡을 경고해야 한다. 철저히 일본을 객관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입에 거품 무는 것으로 붉은 머리띠 묶는 것으로 '변' 소포 부치기로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당한다. 저들을 오히려 득의만만하게 한다. 감정을 북돋워서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 저들의 본심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눈도 안 보고 마구 주먹을 휘두르는 권투 선수는 머잖아 카운터 펀치 한 방에 캔버스에 드러눕게 되어 있다.
셋째, 여야, 학계, 정계, 국민이 허심탄회하게 속을 털어놓고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키고 함께 나라와 겨레를 살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일본 미워함보다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하는 동족 미워함이 훨씬 강렬한 상황에서 저들을 능가할 수가 없다. 저들은 오로지 힘에만 굴복한다. 우리가 저들보다 강하지 않는 한, 저들은 절대 사과하지 않고 절대 역사왜곡을 중단하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
일본의 미소 뒤에 숨은 날카로운 이빨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일본은 그 이빨을 아주 조금 드러냈을 따름이다. 그 이빨에는 옛날 일본 여인들처럼 '시커먼' 칠을 해 놓아 잘 보이지 않지만, 호랑이보다, 상어보다 더 날카롭다. 머잖아 발톱도 드러낼 것이다. 그 발톱은 깊숙이 감추어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가서 들춰 보아도 안 보이지만, 독수리보다, 호랑이보다, 용보다 더 길고 억세고 날카롭다.
아, 무서운 일본!
(200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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