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할 줄 모르는 교육부


김진표 교육부 장관이 '고1 학생들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했다. 2008학년도 입시제도에 관한 불만으로 광화문 등에서 촛불 시위를 벌이려는 고1 학생들의 ‘오해’를 풀어 주고 그들을 설득하려는 내용이다. 거기엔 이런 말이 있다.

“학교 성적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대입 전형에 반영되는 비중을 강화하여 교육의 중심축을 학교 밖에서 학교 안으로 끌어오되, 끝없는 등위 경쟁 대신 보다 폭넓은 아홉 등급의 여유 속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찾을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 새로운 대입 제도의 근본 취지입니다.”

“그러나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듯이 학생들에게는 다소 부담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적 부풀리기 방지를 위해 교과 성적 표기 방식을 변경하여 평어를 없애고 석차 중심으로 표기하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지나치게 ‘경쟁’을 의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수십 년 동안 교육부가 되풀이하던 변명이다. 첫째, 교육부는 잘못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다. 있다면 1% 정도? 둘째,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와 교수는 교육부가 정한 입시 정책은 이해하고 실행하려고 애쓸 따름이지, 감히 이에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1,000만 명이 떠들어도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다. 이상 끝!

재미있는 것은 그 누구도 교육부가 정한 바를 어길 수 없지만, 교육부는 장관만 바뀌면 입시 제도를 마구 고쳐 버린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더하다. 3년만 가면 대단한 성공! 그 이전은 순 엉터리였음을 스스로 실토하는 강력한 반증이다. 말인즉슨 바꿀 때마다 교육 정상화요, 사교육비 절감이요, 경쟁 완화요, 다양성 확보요, 인간성 회복이요, 하면서 자화자찬에 날 새는 줄 모른다.

김 장관의 글에는 내신이 상대적으로 수능에 비해 이전보다 엄청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과 천양지차인 학교 차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 평가가 한 학교가 아니라 전국 2000여개 고등학교 간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입시의 핵심에서 천 리 만 리 비켜서서 학생들이 익히 알고 있고 크게 문제시하고 있지 않는 사항만으로 학생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씨도 안 먹힐 소리다.

예전에도 석차연명부가 있어서 전과목, 전학년을 종합해서 상대평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외고나 명문고(평준화 지역이든 비평준화 지역이든) 별 불만이 없었다. 10등급 기준에서 7등급하던 학생도 서울대에 들어가곤 했으니까. 왜? 내신에서 손해 보더라도 학력고사나 수능을 잘 보면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입학시험 자체가 상위권도 얼마든지 변별할 만큼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다. 이해찬표 허무한 물수능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답이 빤히 보이는 문제가 많고 변별력이 뚝 떨어져서 대학에 들어가면 고교과정을 새로 배워야 할 형편이다. 더군다나 현 고1부터 수능마저 원점수든 표준점수든 점수는 알려 주지 않고 등급만 알려 준다. 그런데 과목별로 1등급만 해도 전국에 2만5천명, 2등급은 무려 4만3천명, 3등급은 6만7천명이다. 한 등급 안에 들어있지만, 실지로 획득한 점수는 천차만별인데 이들을 똑같이 취급한다. 그 상황에서 0.1점의 차이로 한 등급이 내려가면 등수가 4만 등, 6만 등, 최대 12만 등 곤두박질친다. 내신은 요지부동이고. 내신은 주요과목 같은 경우는 도합 12번을 쳐서 이를 평균 내기 때문에 등급이 결국은 소수점 단위로 길게 늘어선다. 1등급이 아니라 1.001등급 식으로 나온다는 말이다. 수능 1등급 2만5천 명은 실지로 몇 점을 맞았건 점수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똑같이 취급할 수밖에 없지만, 내신은 이처럼 얼마든지 줄을 세울 수 있다. 단 한 번 잘못 친 것으로 소수점 단위가 획획 바뀔 수 있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입시의 당락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학생들이 바보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교육부 장관보다 학생들이 더 똑똑하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착하게 살자’고 다짐을 해도 자기도 모르게 한 학교 안의 모든 학생이 더 이상 이웃이나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나 원수로 보일 수밖에 없다. 경쟁을 없앤다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고 그 경쟁도 전국이나 전세계가 아니라 한 교실의 학생들이다. 한 학교의 동창들이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최악의 입시제도이다. 그런데 한가하게 특별활동, 봉사활동, 독서, 낭만, 운동, 사랑, 우정? 학생기록부에서 대학이 점수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죽자 사자 또 다시 매달 수밖에 없다. 입시 부담이 한결 심해졌다는 말이다. 내신을 위해서 학교 교육에 충실하는 게 아니라 학원에 더 다녀야 한다. 내신용 학원, 수능용 학원, 교과별 독서용 학원, 논술용 학원, 수시모집용 학원! 이미 2008학년도 입시제도가 발표된 지 불과 몇 달만에 학원이 18%나 늘었다고 한다.

매번 그랬다. 사교육을 없앤다고 동원할 수 있는 갖은 수단을 다 썼지만, 결과적으로 예비고사와 본고사 체제 때와 내신을 반영하지 않을 때에 가장 사교육이 적었고 학교 성적이 가장 믿을 만했고 행동발달상황도 훨씬 객관적이었고 학생들도 그 후 어떤 때보다 반듯하고 따뜻하고 순수했다. 무슨 말인가. 교육부는 1980년 이래 25년 동안 매양 독선의 수렁에 빠져서 부지런히 헛다리만 짚었다는 말이다. 그래 놓고도 단 한 번 잘못을 반성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다. 모든 것은 전 장관과 전 정권에게 덮어씌우고 또 다른 입시제도를 도입하여 이것이야말로 최고, 최후의 입시제도라고 자화자찬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지곤 했다.

극약 처방을 있는 대로 다 쓴 결과 이제는 더 쓸 것이 없다. 딱 하나 더 있긴 하다. 그것은 수능도 안 보고 내신만으로 뽑는 것!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교육부가 입시에서 깨끗이 손을 떼는 것. 대학과 일선학교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 어떤 대학도 망하려고 작정하지 않는 한 대학정원이 고교졸업생보다 많은 현실에서 공부도 못하고 인성도 더러운 ‘영구 싸가지’ 학생을 뽑아갈 리가 없다. 맡겨 두면 얼마든지 잘한다. 혹 못하면 그 대학은 망할 것이니까, 그것도 참 좋은 일이다. 멋진 반면교사가 될 테니까. 다시는 그런 대학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명실상부한 대학자율로 가기 전에 경과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 교육부와 고1 이하 학생들을 모두 살릴 수 있는 방법이 3개 있다.
첫째는 비교내신제 전면 도입. 전국의 어떤 학교든 관계없이 수능이 내신보다 등급이 좋으면 그것으로 택하고 내신이 수능 등급보다 좋으면 그것으로 택하게 하면 된다. 검정고시 출신은 어차피 비교내신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공평하게 이걸 전국의 모든 학생에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고나 외고나 명문고 학생은 내신 9등급 맞고도 수능환산 내신 1등급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교육부는 그러면 학교 공부에 등한할 거라고 반대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더 충실할 것이다. 제대로 된 문제를 내서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고취시키고 수능 공부와 내신 공부가 거의 일치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학업성취도시험 전면 도입. 실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업성취도시험을 초등학교 3학년 이상에 전면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험은 전국적으로 똑같은 시험이고 가장 교육과정에 충실한 문제가 될 테니까, 이를 내신에 해마다 반영하면, 전국 어디에 있든 실력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확연하게 가를 수 있다. 해마다 한 번씩 보고 이를 누적해서 대학에 제출하면 구태여 입학시험을 따로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보고 싶은 대학이 있다면 얼마든지 보게 하고.

셋째는 문제점을 충분히 보완할 때까지 새로운 입시제도를 전면 보류하자는 것. 어차피 지금은 7차 과정이다. 최소한 7차 과정만이라도 입시제도를 바꾸지 말자는 말이다. 프랑스는 200년 동안 한 번도 안 바꿔도 인재를 잘만 뽑는다. 우리나라 대학보다 훨씬 낫다.

장관 못잖게 똑똑할 뿐만 아니라 색깔과 향기와 여유, 우정과 낭만과 애교심을 잃고 싶어하지 않는 멋지고 착하고 씩씩한 고1 학생들에게 큰 희망을 보며, 독선적이고 관념적인 교육부의 맹성을 촉구한다.

(2005. 5. 6.)

헌법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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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례 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함에 있어서는 규제하려는 쪽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덜 제한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지를 모색하여야 할 것이지, 제한당하는 국민의 쪽에서 볼 때 그 기본권을 실현할 다른 수단이 있다고 하여 그와 같은 사유만으로 기본권의 제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1994. 3. 8.)
② 국가보안법은 동법 소정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경우에 적용되는 한에서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므로, 동법은 이러한 기본권 보장의 한계를 이루는 것이다. (1993.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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