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각하, 틀린 글자가 있습니다"


물가 인상 100%!

1973년 10월부터 시작된 석유파동은 한국에 석유부족, 물가폭등, 국제수지 악화라는 3重苦를 동시에 몰고왔다. 석유부족은 1974년에 들어서면 석유수출기구가 원유 增産을 결의하여 해소되었다.
정부는 전반기엔 석유사용 10% 절감, 국내석유값 30% 인상, 긴급조치 3호로 대응했다. 후반기엔 국내 석유값 82% 인상, 두 달 뒤 다시 22.3% 인상, 그리고 환율 21% 인상(이는 모든 수입품값이 그만큼 인상된다는 뜻이다), 국내 석유값 31.3% 인상으로 대처했다.
석유사용 10% 절감책은 '국영기업체와 관공서의 電球 중 3분의 1 빼기' '다방 음식점 목욕탕의 영업시간 단축' '공휴일 자가용 운행 규제' '텔레비전 방영시간 하루 4시간 단축'식이었다. 여러 부문에서 조금씩 노력하면 이 절약분이 쌓여서 10% 절감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절약할 구석이 생활 속에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이 석유파동이었다.
석유값이 오르니 석탄과 연탄의 가격경쟁력이 살아났다. 석탄 소비량이 급증하자 사양길에 들어섰던 탄광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저질탄도 써야 했으니 부산에선 주부들이 자주 꺼지는 연탄을 내던지면서 시위를 했다.

중화학공업 건설에 대한 도전

1973년 12월5일 太完善 경제기획원장관, 南悳祐 재무장관, 鄭韶永 농수산 장관, 張禮準 상공장관은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석유류(30%), 전기값(7%), 비료(30%), 나일론絲(32.6%), 설탕(16.7%), 배합사료(25.5%), 전분(42%), 판유리(25.5%), 목장우유(15%), 분유(10.8%)의 인상률을 발표했다.
소비자들은 이에 대해 생필품 사재기로 대응했다. 언론은 부자들이 화장지 등의 사재기에 앞장선다고 비판했다. 그때 비로소 한국에선 화장지가 양변기와 함께 널리 쓰이기 시작할 때였다. 일본인들조차 한국에 관광온 김에 화장지를 사가지고 갔다.
朴대통령은 유신선포 직후인 1972년11월30일 1980년대를 향한 비전을 수치로 요약하여 발표했었다. 1981년에 가면 국민소득이 1인당 1000달러, 수출이 10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1969년 朴대통령은 金鍾泌을 청와대로 불러 대통령 3選 개헌안에 지지해줄 것을 설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임자도 잘 알다시피 우리는 한강을 건너올 때 이미 조국 근대화에 목숨을 걸지 않았나. 60년대에 겨우 먹는 문제를 해결했는데, 70년대엔 공업화를 해야 돼. 함께 죽자고 혁명을 해놓고 이제 와서 혼자 살겠다는 거야?'
이처럼 朴대통령의 전략은 간명했다. 1960년대는 식량문제 해결, 70년대는 중화학공업 건설. 朴대통령은 중화학공업 건설을 선언한 1973년의 연두기자회견 직후 '올해 물가 인상은 3%이내로 억제하라'고 지시했었다. 석유파동은 한국을 경공업 국가에서 탈피시켜 세계적인 공업대국으로 만들겠다는 朴대통평의 신념과 집념에 대한 도전이었다.
1973년 11월 중순 朴대통령은 보유외환이 바닥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자 太完善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종합 대책을 마련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12월 중순 그 보고회가 열렸다.
朴대통령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太 부총리, 수고했습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니 청와대에서 다시 검토하여 결론을 내도록 합시다'

경제긴급조치 준비

대통령은 집무실로 돌아와서 金龍煥 경제1수석 비서관을 불렀다.
'경제기획원에 한달 동안이나 시간을 주어서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그렇게 미지근하게 대응해가지고는 이 난국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아. 임자가 한번 다시 만들어봐'
金龍煥 수석은 새해 1월10일을 목표로 정하고 비밀돌관작업에 들어갔다. 그 1년 전 8.3 私債 동결조치案을 비밀리에 만들었던 金수석은 그때 팀(심형섭 씨 등 4명)을 다시 모았다. 여기에다가 高炳祐(뒤에 건설부 장관), 河東善, 宋炳循(은행감독원장 역임), 李相熙씨를 합류시키고 북악 파크호텔에서 실무작업에 들어갔다. 金수석은 1974년 1월10일에 완성된 계획서를 12일에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다. 문서 제목은 '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와 이의 관련사항에 관한 보고'였다.
金수석은 긴급조치의 목적을 이렇게 설정했다.
<석유파동으로 야기된 악성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하여 정부 기업 소비자의 공동노력을 조직화하고 저소득층의 부담경감과 국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강력한 소비절약을 유도하여 석유파동의 충격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1월14일 청와대에서 朴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여 긴급초치안을 의결했다. 긴급조치 선포에 따른 대통령 담화문을 金수석이 낭독하여 통과시키려는 순간 閔寬植 문교장관이 소리를 질렀다.
'각하, 틀린 글자가 하나 있습니다. 心氣一轉이 아니라 心機一轉입니다'
誤字, 脫字가 없도록 수십 번 원고를 확인했던 金龍煥은 가슴이 철렁했다. 朴대통령은 웃으면서 이렇게 넘어갔다.
'통상 우리가 쓰는 한자는 心氣一轉이 맞는데 氣자로 쓴 心氣一轉도 좋지 않습니까. 마음과 기분을 한번 가다듬자는 뜻인데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金수석은 밤낮없이 고생한 실무진의 사기를 꺾지 않으려고 배려해준 대통령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저 분을 위해서는 더욱 분골쇄신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왔다. 그 뒤 官報에도 '心氣一轉'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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