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아직은 아닌 듯,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북한--이들은 2001년 9월 11일 현재 3억의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울부짖는 미국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였다. 둘은 석유부국에 독재국가였고 둘은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최악의 독재국가였다. 그 중에 각기 한 나라씩 제거했다. 남은 두 나라는 핵무기 잠재 보유국이었는데, 한 나라가 2005년 2월 10일에 스스로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나머지 한 나라는 독재국가로 분류하기 힘들다. 그런 만큼 핵무기에 대해서도 이성을 잃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토마호크 대신 당근이나 채찍으로 제2의 리비아를 만들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나라는 흰소리하던 양옆의 두 나라가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궤멸 당하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에 간이 졸아들 대로 졸아들어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소총으로 초강국 소련의 탱크를 물리친 적이 있지만, 미국한테는 독수리 앞의 꿩 병아리였다. 이유는? 소련의 후신 러시아가 중립을 지켰기 때문이다. 실은 아프가니스탄이 소련에 굴욕적인 퇴각을 선물한 것은 베트남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불굴의 민족주의로 이겼다고? 그건 신화지 역사가 아니다. 소설이지 실화가 아니다. 월맹은 소련과 중공의 무기와 에너지와 전술을 받아서 미국에 이겼고,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달러와 무기를 건네받아서 소련에 이겼던 것이다. 피장파장이었다. 대리전이었다.

이라크가 또 다시 전쟁 오락터가 된 것도 약소국의 민족주의는 한낱 사춘기 소년의 영웅 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러시아가 이번에도 중립을 지켰기 때문이다. 석유 이권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이 위선 놀음을 했지만, 그들도 감히 미국에 맞서 사담에게 무기를 대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담은 유럽의 신문과 러시아와 중국의 외교적 수사를 은근히 믿었지만, 막상 부시가 최후통첩을 선언하자 그 누구도 소총 한 자루 빌려 주지 않았고 비라 한 장 살포해 주지 않았다.

북한은 미국이 치기엔 너무 부담스럽다. 중국이 여전히 중주국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언제든지 어깨를 들이밀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나라가 최소한 중립을 지키게 만들어야 한다. 외교가 군사에 앞선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먼저 치고 이라크를 나중에 친 것은 그들 두 나라의 국력 차이 때문이다. 투입할 군사력의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60년 동안 국가 총동원 체제로 오로지 군사력만 키워 온 북한은 북방 두 나라가 설령 돕지 않아도 미국의 21세기 신속기동군도 감히 장담 못한다. 핵과 미사일과 땅굴로 언제든지 한국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을 급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미국에게 서광이 비친다. 북핵과 북한인권 때문이다. 둘 다 전세계가 ‘이건 아니다’라며 독재자와 민족주의를 구별할 준거이다. 북한에는 석유도 없으니 경제적 이익을 위한 침략이라는 비아냥거림도 피할 수 있다. 북핵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도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를 찾지 못해 오락하듯 쉽게 전쟁에 이기고도 국내외의 이죽거림에 곤욕을 치렀던 부시로서는 북한의 핵보유선언은 불감청이나 고소원이다. 김정일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외교와 군사 두 부문 모두 너무 미흡하다. 이 둘을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 이번은 수천 명 단위의 희생밖에 없었던 중동의 두 전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떤 식으로든 최소한 백만 명 이상의 희생이 생기게 되어 있다. 그만큼 북한의 군사력은 강하고 한반도는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이 잠재적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서울은 천하태평!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6자 회담의 결렬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유엔안보리로 끌고 가고 반대표를 던질 게 뻔한 두 상임이사국의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경제제재를 해야 하고 PSI를 발동해야 한다. 허울만 남은 한미동맹 때문에 약화되고 분산된 군사력을 일본 자위대로 보강해야 한다. 일본에게 핵무장을 허용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방사능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북한의 지하요새를 박살낼 미니 핵폭탄도 만들어야 한다. 대만 카드를 흔들어 중국의 고집도 꺾어야 한다.

북한인권법을 본격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이것은 이중 효과가 있다. 하나는 전세계가 히틀러보다 더한 김정일의 독재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인권침해 또는 북한과의 동조에 전세계가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게 하는 것이다. 2008년 올림픽에 대한 보이콧을 유도하여 중국이 북한에 대해 더 이상 종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으름장을 놓아야 한다. 돈맛에 영혼이라도 기꺼이 팔 준비가 되어 있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위안화를 두고 제2의 플라자 합의도 이끌어 내야 한다. 배은망덕한 한국의 국가신용을 1997년 12월보다 더 떨어뜨릴 필요도 있다. 증시도 여차하면 다시 붕괴시켜야 한다. 그 전에 미국의 자본이 빠져나가야 한다. 서울이 불바다가 되기 전에 미군과 그 가족을 평택항이나 오산비행장으로 소개시켜야 한다. 이라크전 이후 2년을 준비했지만 아직도 최소한 1년이 더 필요한 일들이다.

미국의 이런 약점을 잘 알고서 북한이 연일 강공 일변도로 나가고 있다. 인공사진을 판독한 결과 북한은 제2의 파키스탄으로 공인 받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이것은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래서 부시와 라이스는 외교 용어로서는 부적절한 말도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다. 준비를 덜 갖추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제2의 사담 후세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서 동북아의 스텔스기와 항공모함이 5분 대기 체제로 들어갔다.

부시는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임을 잘 알기 때문에 김정일은 현 시점에서 별 이득이 없는 핵실험은 감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기습남침으로 허를 찌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미국과 일본의 경계 태세가 여간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대놓고 북한의 핵우산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할 리가 없다. 그 순간 분노한 국민이 정권을 뒤엎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식량 사정도 최악이다. 가을걷이는 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이나마 110만 인민군과 750만 예비전력의 군량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 되돌아가기엔 강을 너무 많이 건넜다. 북한도 되돌아갈 수 없고 민주를 가장한 한국의 친북 세력도 되돌아갈 수 없다. 언제 커밍아웃을 선언하느냐, 하는 것만 남았다.

환갑 진갑이 지나도록 그 누구에게도 선제공격권을 빼앗겨 본 적이 없는 김정일, 신의 반열에 올라선 자기 아버지한테도 속마음을 들켜본 적이 없는 김정일, 1993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래로 총알 전쟁에 앞선 말 전쟁에서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외교와 군사와 경제에서 항상 선제기습공격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김정일, 이번에도 결코 선수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닌 듯하다. 부시도 준비가 덜 됐지만, 그도 준비가 덜 됐으니까. 미국의 경계 태세에 전혀 빈틈이 없고 중국마저 미국이 요청한 에너지 차단은 거부했지만 무역에 약간의 제제를 가하겠다고 하니까.

(200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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