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의 구도(1)/6.15 前夜

약점 잡힌 상태에서 金正日과 對座

金正日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好機라야 정상이다. 왜냐 하면 남북한 관계의 본질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樣式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기 때문이다. 金正日 정권에 이로운 것은 한국정부에 불리한 것이고, 한국 정부에 불리한 것은 金正日 정권에 유리한 것이다.
金大中 정부 때부터 이 원리가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金 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에 오랫동안 집착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엔 국가정보기관의 조직을 자신의 노벨상 공작에 동원했다. 2000년 6월의 남북頂上회담을 준비하는 남북 비밀접촉에서 북한측은 정상회담의 代價로서 10억 달러를 요구했다.
이 액수를 놓고 장사꾼들의 흥정 같은 이상한 회의가 열렸다. 결국 한국측이 현대그룹을 통해서 5억 달러(5000만 달러는 물건)의 金品을 비밀리에 북한측에 갖다바쳤다.
북한정권의 對南적화공작을 저지하는 것이 主임무인 국가정보원은 이 불법자금을 金正日의 해외계좌와 마카오 주재 對南공작기관의 계좌로 송금하는 下手人이 되었다.
당시 國情院은 이 달러가 군사비로 轉用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國情院은 파키스탄과 북한 사이에 핵개발을 둘러싼 협조가 이뤄지고 있다는 정보도 입수한 상태였다. 당연히 5억 달러의 금품이 核개발에 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당시 국정원장 林東源씨는 金大中 대통령에게 5억달러 송금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보고했으나 金대통령은 송금을 지시했다.
2000년6월14일 아침 金正日과 金大中이 평양에서 회담을 위하여 對座했을 때 金正日은 金大中으로부터 일종의 뇌물을 받아놓은 상태, 즉 金대통령의 결정적 약점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만약 이때 이 불법송금 사실이 알려졌다면 金正日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겠지만 金大中은 노벨평화상을 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적 치명상을 입고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盧武鉉 정권은 없었을 것이다. 이 불법송금 사건은 2002년 9월에 가서야 야당과 언론에 의하여 폭로되었고, 수사는 盧정권 들어서 이뤄졌다. 이 수사도 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는 진술 조서 한 장 받지 않는 不實조사였다.
결정적 약점을 잡은 김정일은 회담이 시작되자말자 金大中 대통령을 협박했다.
'오늘 아침 남조선 텔레비전을 보니 검찰에서 인공기를 올린 대학생을 수사한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선 회담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만남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하셨으니 그만 돌아가시지요'
이 無禮한 발언은 심리적 機先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金大中으로서는 여러 가지로 불리한 입장에서 회담에 임했다.
국민들을 속여가면서 거액의 뇌물을 바침으로써 김정일에게 약점이 잡힌 사실을 그는 잘 알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이 회담에서 근사한 합의문을 받아내어 待望의 노벨평화상을 받아야겠다는 조바심.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金대통령은 아주 불리한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6.15 공동선언의 제2항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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