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9. 산케이(産經)신문
(기사 原題 : 韓國은 日美와 함께하는 것 外에는 길이 없다)
후루타 히로시(古田博司, 쓰쿠바大 대학원 교수)
※주요내용 발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민족의 행동 패턴을 전제로,
한국이 걸어온 과거(역사)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이 개
략해 볼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
현재 한반도의 南北분단이 사상 최초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1231년부터 약 30년에 걸친
몽골의 침입으로 다수의 고려인이 만주 요양(遼陽)과 심
양(瀋陽) 방면으로 납치되어 집단거주지를 형성하는 가
운데, 북위 39도선 이북에 요양행성(遼陽行省)이 설치되
었다. 이것이 최초의 南北분단이다.
고려인들은, 왕과 제후(王侯) 등 귀족에서 민중에 이르기
까지 南과 北 상호간 친척관계를 가진 상태에서 자유교역
을 했는데 당시 일차산품(一次産品) 외에는 팔 것이 없었
다. 때문에 12세기부터는 국내의 은(銀)까지 손을 대어,
14세기 후반에는 은(銀)이 고갈된다. 그리고 기아(飢餓)
로 고통받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한국은 중국에 도전하기보다 복종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그렇지 않다. 고대선진기술국(중
국) 옆에 극빈국이 붙어 있었던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당
시 중국 입장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으므로 (한국을) 공격
할 필요도 없었다. 한국을 공격한 것은, 만주로부터 남하
하는 북방민족 아니면 바다로부터 올라오는 日本민족, 둘
중 하나였다.
한국을 공격할 때는 우선, 지형이 평탄하여 외적 막기가
어려운 서쪽을 공략했다. 이렇게 해야만 중국과 한국으로
부터의 협공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후
한국을 점령하게 된다.
한국은 당시 극빈국(極貧国)이었으므로 기술품이나 공예
품을 만드는 쪽에 약했다. 바늘(針) 정도 물건도 한국에
서 만든 것은 좋지 않았을 정도다.
■방위경제(防衛経済)를 선택한 이조(李朝)와 北韓
이후 이조(李朝) 시대가 열리지만, 이전 몽골 지배의 영향
은 여전히 크게 남아있게 된다. 제30대 고려왕 '미스젠도
르지'를 독살한 것이 제31대 고려왕 '바얀테무르'였는데,
이같은 몽골 이름의 고려왕은 한문(漢文)으로는 각각 충
정왕(忠定王)과 공민왕(恭愍王)이다. 아울러, 민중은 강제
하지도 않았는데 변발(弁'658)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조(李
朝)의 개조(開祖), 이성계(李成桂)의 부친은 몽골의 천호
장(千戸長, 부족장 등)이었다.
이렇게 정치・경제적으로 몽골의 영향이 컸던 이조(李朝)
는, 몽골에 대한 거부감으로 우선 국경을 폐쇄하고 자유
무역을 금지하게 된다. 그리고, 민간상업(民間商業)을 억
제하고, 특권상인에게만 지배 계층을 위한 장사(상업)를
영위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자유경제(自由經濟)를 포기
하고 방위경제(防衛経済)로 전환한 것이다.
이 특권상인들이, 일본 쓰시마(対馬) 교역이나 중국 조공
(朝貢)을 담당했다. 이러한 패턴은 지금의 北韓 39호실
지배하의 무역상사와 흡사한 모습이다. 이조(李朝)의 특
권상인은, 북경(北京)의 류리창(瑠璃廠, 골동품 상가)에
서 벼루(硯)를 구입하고, 융복사(隆福寺)의 정기시(定期
市)에서 견직물(絹織物)을 구입했다.
반면, 이조(李朝) 시대의 민간(民間, 민중)은 궁핍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조(李朝)와 北韓은 방위경제(防衛
経済)를 택했기 때문에 거대한 지나(중국) 경제권으로부
터 비록 독립은 가능했지만, 나라는 궁핍해져만 갔고, 때
문에 주자학(朱子学)과 주체사상(主体思想)이 各체제(李
朝, 北韓)의 자율성(自律性)을 지키는 무기가 되었다.
■自由經濟와 自律性의 병립
만약 自由經濟를 선택하면, 거대한 종주국 경제의 말단
에 연결되어(편입되어) 자율성(自律性)을 잃게 된다. 고
려(高麗)와, 日本통치시대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후자(일본통치시대)는 다행히 자본주의(資本主義) 체제
였기 때문에 당시 한반도에는 산업이 일어나고, 기아(飢
餓)도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었으며, 연평균 3.7%의
경제성장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당시 한국인은 (처음부터 적극) 일본化 되었다.
당시 한국인은 일본국적을 가진 일본인이었다. 통치 기
간 막바지 5년간의 황민화(皇民化) 정책 때문에 결정적
으로 한국인이 일본에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이 정도 내용만으로도 지금의 한국이 얼마나 특이한 상
황인지 알 수 있다. 한국 역사상, 오늘날과 같이 자유경
제(自由経済)와 자율성(自律性)이 병립하고 있는 경우
는, 지금의 한국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이것(자유경제+자율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
지 덕분이다.
첫째, 38선으로 자칫 고립화(島化)될 수도 있는 상황으
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
둘째, 韓美상호방위조약으로 군사적으로 보호받게 된 점.
셋째, 日韓기본조약과 부속협정으로 日本側으로부터 제
기될 수 있는 한반도內 日本자산의 반환청구(返還請求)
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상무상(有償無償) 경
제원조를 얻어낸 점.
그런데, 이러한 한국이 현재 反日에 열심이다. 보다 많은
자율성(自律性)을 원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
은, 南北통일을 이루어 한반도가 다시 옛날과 같은 방위
경제(防衛経済)로 돌아가는 방법 외에는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자유경제(自由経済)가 저조해질 때, 중
국 경제의 말단으로 편입되어 중국에 동화(同化)되는 방
법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중국인들이 싫어할지도 모른
다. 결국, 위사(僞史)를 바로 잡고, 美國·日本과 같은 길
을 걷는 것 外에 韓國에게 자율(自律)의 길은 없다고 볼
수 있다.
韓國은, 美國·日本과 함께하는 것이 최선
- 펀드빌더(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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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09, 1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