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당 900원의 환율이 현실화되면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05년 5월초 월례사에서 '1달러당 900원의 환율에도 경쟁력을 갖도록 원가 절감과 제값 받기 등의 대응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다그쳤다. 하늘처럼 까마득하던 소니를 문제투성이 회사로 비치게 만든 장본인의 말이라 예사롭지가 않다. 잭 웰치 이후 세계 최고의 경영자로 떠오르고 있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래예측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그의 말속에는 미국의 경제 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못지않은 함의가 들어있는 수가 많다.

윤종용 부회장은 외환위기 직전에 노조 없는 삼성전자의 임직원을 소리 소문 없이 무려 3분의 1이나 줄이고 적자가 나거나 비전이 없는 부문은 과감히 정리했다. 현실 안주의 방만한 경영 대신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래지향적 경영을 도입하고 서울대 교수보다 많은 2500명의 박사를 중심으로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이건희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과감한 선행 투자를 한 결과, 삼성전자는 1997년 순이익 3억 달러에서 2004년 순이익 100억 달러라는 초우량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금융업까지 포함해서 세계 10위권이다. 그 결과 4만여명까지 줄었던 직원이 6만2천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의 보수도 수직 상승하여 2004년에는 평균연봉이 7천만원을 넘어섰다.

1980년대 일본은 하와이 대신 아예 미국의 본토를 무차별로 공격하여 거의 점령하다시피 했다. 이번에는 군함 대신 화물선으로, 전투기 대신 탐스러운 화물과 영리하고 싹싹한 사람을 가득 실은 점보기로 공격한 것이 달랐다. 대성공! 달러가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1985년 마침내 서부의 사나이가 회심의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그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이다. 다리가 풀린 일본의 사무라이가 일본도를 땅에 짚고 간신히 몸을 가누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보안관 존 웨인을 대신하여 무명 배우 로널드 레이건이 달려와서 쌍권총을 빼들고 사정없이 그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1달러당 250엔의 환율을 한때 80엔까지 내려버린 것이다. 일본의 땅값과 주식이 막 대기권을 벗어나 무중력의 우주공간에 진입하여 영원한 별로 자리매김하려던 인공위성이 폭발하듯 공중분해되어 연기처럼 사라졌다. 우습지도 않게 그 사이 일본의 1인당 GDP는 순식간에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다시 3만 달러로 올라섰다. 드디어 미국을 앞질렀다!

일본은 이 때 일본도를 버리고 허리춤에 숨겨 두었던 권총을 뽑아들거나 대포를 구입해야 했다. 수입을 확 늘려서 소비자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IT 기술과 선진 금융기법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여서 이를 갈고 닦아야 했다는 말이다.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른 수건을 짜고 또 짰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졸라맸다. 돈을 모으고 또 모아 통장에, 또는 다다미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해서 10년간 한 푼 쓰지도 못하고 썩혀 버린 돈이 일본의 3년치 GDP에 해당한다. 놀라지 마시라, 1200조엔이었다. 덕분에 개인은 가난해도 국가는 부유하다던 주식회사 일본의 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150%를 능가하게 되었다. 쌍둥이 적자로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미국을 휙 추월했다. 한 푼도 쓰지 못하고 미국의 채권을 사서 고스란히 미국에 되돌려 주었다. 외환보유고 수치만 올리고 또 올려서 해마다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2004년 말 현재 8천억달러! 이를 일러 ‘잃어버린 90년대’라 한다.

외환보유고도 없이 달러 환산 GDP 오르는 재미에, 외제 싸게 사고 해외관광 싸게 다니는 꿀맛에 자국의 통화를 의도적으로 고평가했던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이 1997년에 차례로 무너졌다. 그보다 약 5년 전에 영국의 파운드화가 조지 소로스 한 명에게 속절없이 당했던 것과 비슷한 경우였다. 금융이 선진화된 싱가포르와 홍콩은 핫 머니라는 바이러스를 간단히 격퇴했다. 외환보유고가 넉넉했던 일본과 대만도 끄떡없었고 기개가 넘쳤던 말레이시아도 독감에 걸리는 정도로 그럭저럭 넘어갔다. 금융이 전혀 개방되지 않은데다, 주용기 전총리가 그 몇 년 전에 고의적으로 저평가한 위안화로 수출에 여념이 없었던 중국은 아예 이 때 휘파람을 트럼펫으로 바꾸어 불었다.

무역적자가 한국의 1년 GDP와 비슷한 미국이 2004년에만 1620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를 본 중국에게 본격적으로 환율인하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1달러당 7.8위안을 1달러당 5위안까지 내리라고 할 것 같다. 여기에 일본과 EU도 동참할 것이다. 미국에 비길 수는 없지만 이들도 대중국 무역적자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일을 비롯하여 G7은 이미 자본주의의 맛을 알게 된 인도를 중국에 대한 지렛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우스 하나로 하루에 2조 달러가 전세계 금융시장을 헤집고 다니는 세상에 이런 호기를 환투기꾼들이 놓칠 리 없을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친구라는 조지 소로스는 좋겠다!)

이번에는 1985년과 달리 경제보다 안보가 우선이다. 6억 개의 눈을 뻔히 뜨고 “맙소사, 안 돼(Oh, No)!'만 부르짖었을 뿐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수천 명의 생목숨을 잃은 9․11 사태 이후, 미국은 경제보다는 ‘테러와의 전쟁’에 최우선 순위(top priority)를 두고 있다. 수천억 달러를 들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발본색원했지만, 국방위원장이 다스리는 군사독재국가 북한은 까딱 잘못하면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을 끝장낼 수도 있어서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북한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합한 것보다 수십 배 군사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앞의 두 경우와는 달리 중국과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그 뒤를 봐 주고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지듯이 한국이 씩씩하게 ‘우리 형님’이라며 그 앞을 가로막고 ‘먼저 나부터 치라’며 부아를 지르고 있다. 목하 미국은 북한 때문에 극심한 편두통을 앓고 있다. 1994년 제네바협약을 맺어 중유와 식량을 산더미처럼 대 주며 은근슬쩍 덮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리스트에게 넘어가면 미국의 도시 몇 개를 단숨에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란 듯이 더 개발했고 이제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양산체제를 갖추겠다고 아편 맞은 노숙자가 경찰에게 대들듯이 되려 미국을 협박한다. 그러고도 모든 책임을 도리어 미국에 덮어씌우며 약을 바짝바짝 올리고 있다.

부시와 라이스는 독립국가연합(CIS)을 순방하며 러시아를 먼저 북한으로부터 떼어놓고 있다. CIS의 민주화를 지원하여 우크라이나 경우처럼 친러시아 세력을 친미 또는 친서구 세력으로 대체시키겠다는 말로 러시아를 은근히 협박하고 있다. 여차하면 러시아의 민주화도 걸고넘어지겠다는 말이다. 체첸의 반군을 지원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초읽기에 들어간 제2의 육이오에서 군사적으로는 중국보다 러시아가 더 문제다.

무슨 말인가. 이른바 걸프전부터 전쟁에 나선 GI는 장군만이 아니라 병사들에게도 컴퓨터가 총 못지않은 필수품인데, 이것은 백악관과 펜타곤과 현지 총사령부(HQ)가 실시간으로 인공위성을 사이에 두고 머리를 맞대어 최선의 방법을 찾아 내리는 명령을 받아야 작동된다. 이 커뮤니케이션을 차단하거나 교란하면 전쟁은 아수라장이 된다. 아군끼리 싸울 수도 있고 군인 대신 민간인을 무차별로 학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해 전파를 보낼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밖에 없다. 걸프전 포함 세 전쟁에서 미국이 손쉬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가 모른 척하고 전파를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선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자연히 부시 부자는 러시아 정상을 극진히 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가 좌시하지 않기로 하면, 미국은 북한과 전쟁을 치를 수 없다. 앞의 세 전쟁에서는 러시아에게 당근을 주었지만, 이번에는 채찍을 내밀고 있는 셈이다. 부시가 얼마 전 석유 폭등을 보고 새 에너지 개발을 서두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러시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수도 있다. 러시아의 최대 수입원은 석유 수출인데, 만약 석유 가격이 폭락하면 잘 나가던 러시아 경제가 수세미처럼 헝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인공위성에 손을 대지 않기로 하면, 부시는 푸틴을 다시 한 번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대하여 그를 위대한 국가 최고경영자라고 치켜세우며 민주주의 확산이니 대체 에너지 개발이니 하는 말을 일시 유보할지 모른다. 두 사람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아 군사력은 별 것 아니지만 최대의 방해 세력은 중국과 한국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이 그 동안 비굴할 정도로 애원했다. 이를 보고 마치 자주외교를 잘해서 그런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의 정통우익세력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국이 제 정신을 차리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젠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그렇다면 마지막 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이것으로 한국과 중국을 동시에 굴복시킬 수 있다. 잘하면 미국의 경제도 회생시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환율전쟁!

2003년 5월 부시는 노골적인 반미 발언으로 ‘재미 좀 본’ 노무현 대통령을 백악관의 만찬에 초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놀랍게도 상당히 ‘오버’했다. 노골적으로 부시에게 아첨하고 김정일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지가 말입니더, 북한에 태어났으면요 강제수용소에 끌려갔을지 모릅니데이!”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미국 소재의 스탠더드 앤 푸어스(Standard & Poor's)와 무디스(Moody's)가 거의 동시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 마디씩 던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부정적 관찰 대상이다.” -- 여차하면 신용등급을 내리겠다는 경고!
1997년 말 한꺼번에 신용등급을 무려 7단계나 끌어내리는 바람에 한국이 바로 외환위기에 빠졌던 악몽이 생생히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정권이 교체되었고 5년 후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던 것인데, 만약 그런 사태가 다시 벌어지면 경제가 무너짐과 동시에 부메랑 효과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를 못 채울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제법 큰소리치고 할 말 다하는 듯하지만 한국은 경제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일시에 무너진다. 촛불을 켜들고 얼굴 붉힐 수 있는 것은, 낮에는 망월동에 가서 눈물을 흘리고 밤에는 룸살롱에 가서 침을 흘릴 수 있는 것은, 태풍이 불어와도 뮤지컬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쌍꺼풀 수술할 수 있는 것은, 다 살 만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97년처럼 주식시장이 무너지거나 무역적자가 매년 100억불을 넘어서면, 10여년간 선진국의 문턱에서 갈팡질팡하는 한국은 민심이 들끓어 그 어떤 것도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진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유태인을 뺨칠 정도로 돈을 밝히는 족속이 자칭 중화족인데, 공산주의를 실험한다며 이웃 나라의 공산주의를 지켜준다며 천신만고 끝에 통일국가를 세운 바로 그 해부터 약 30여년 동안 광란의 허송세월을 보낸 후에, 중국은 마침내 ‘돈이 역시 최고’라는 전통사상을 되살려 이를 자본주의에 결합한 지 30년도 안 되었지만 이제 돈이면 마누라와 자식도 기꺼이 버릴 정도가 되었다. 제법 배가 부른 한국보다 훨씬 더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이건희 삼성회장

미국이 이 두 나라를 동시에 굴복시킬 수 있는 게 환율전쟁이다. 각각 6천억달러, 2천억달러의 외환보유고도 위안화와 원화가 절상되면 앉은자리에서 천억 달러, 5백억달러 까먹게 된다. 대신 미국의 대북한 정책에 대해 입의 혀처럼 구는 일본은 은근히 봐 줄 가능성이 크다. 일본도 중국에 매년 200억달러 이상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으니까, 위안화 절상에 미국과 한 편이 되기에 딱 좋다. 하나같이 어중뱅이인 주제에 얻어들은 말은 많아 이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철부지 나라 한국은 중간에 끼어 중국과 도매금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난 60년 동안 미국의 혜택을 얼마나 보았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포퓰리스트들이 연이어 집권하기 전에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기업가들과 노동자와 농민과 함께 일으킨 경제를 마치 대학생과 정치인이 데모해서 이룩한 줄 확신하고, 부자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족을 각각 300만씩 죽인 독재자를 한사코 민족의 이름으로 감싸고도는 한국의 위정자들과 방송과 시민단체를 이제 미국은 더 이상 달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소리 소문 없이 원화를 절상하고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으로 선언하여 절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할 것이다. 더 이상 북한의 독재자를 돕지 못하게 할 것이다.

1달러당 환율 900원! 일인당 국민소득 2만불! 무역적자 100억불! 주식폭락! 부동산폭락! 은행 파산! 기업 도산!

이제 다들 제2의 육이오에 앞서 닥칠 이런 경제난에 대비할 때가 아닌가 한다. 경제가 완전히 회복 기미에 들어섰다는 대통령 각하의 단언은 50조원의 조기 재정집행에도 불구하고 1분기 2%대 성장에서 증명되었듯이,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나는 윤종용 부회장의 예측을 믿고 내 나름대로 그 함의를 어설프게 추측해 보았다. 나는 내 추측이 허무맹랑한 것으로 밝혀지길 간절히 바란다. 너무도 끔찍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면, 작년에 삼성은 1달러당 1050원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했고 그것은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삼성전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200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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