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에 생각나는 비겁한 지도자들 ; 윤보선과 힌덴부르크



1.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혁명을 일으켰다.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군사반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장면 총리는 숙소이던 반도호텔(현 롯데호텔)을 빠져 나와 한국일보사 앞 주한미국대사관저로 갔다가, 혜화동 칼멜수녀원으로 도주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는 말로 5-16군사혁명을 맞이했다. 이 발언에 대해 그는 후일 여러가지로 변명했다. 하지만 그가 장면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은근히 그 상황을 즐겼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는 민주당 舊派, 장면은 新派였기 때문이다.



민주당 구파의 수장으로 실권 없는 내각제 하의 대통령이 된 윤보선은 자신에게 부여된 위치에 만족하지 않았다. 민주당 신파와의 약속을 깨고 같은 구파인 김도연을 총리로 지명했다가 실패했던 그는 장면 정권 9개월 내내 장면 정권에게 딴지를 걸었다.



5-16이 일어나자 윤보선은 군을 동원해 쿠데타군을 진압하자는 그린 주한미국대리 대사와 매그루더 유엔군 사령관의 종용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전방 부대장들에게 자중자애할 것을 요구하는 친서를 보냄으로써 진압군 출동을 사실상 방해했다.



혁명군에게 붙잡힌 장면내각의 국방부 장관 현석호가 청와대로 연행되어 오자 윤보선은 장면 내각의 무능부터 질타했다. 윤보선은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장도영 중장에게는 거국내각 구성을 권유하기도 했다.



윤보선은 헌법기관인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철저히 민주당 구파의 수장으로 행동했다. 이 사실은 당시 미국대사관의 정보보고에도 잘 나타나 있다.



윤보선뿐이 아니었다. 한 신민당(민주당 구파가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가 만든 정당) 지방당에서는 쿠데타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다던가....



장면 내각이 퇴진하고 군사혁명정부가 본격적인 施政을 펼치자, 윤보선은 깡패소탕,농어촌고리채 정리 등 군사정부의 업적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윤보선이 군사정부와 결별한 것은 군사정부가 (민주당 구파도 참여하는)거국내각을 구성해 과도정부를 꾸려나가다가 조기에 민정 이양을 하는 대신, 군인들 중심의 새로운 정치판을 짜는 것이 분명해진 다음이었다. 그후 박정희 대통령 집권 기간 중 윤보선은 가장 극렬한 박정희 반대자였다.



총소리 몇 방에 놀라 수녀원으로 달아난 장면 총리도 비겁했지만, 군사쿠데타를 정적 제거의 호기로 판단했던 윤보선도 비겁했다.

만일 같은 구파인 김도연씨가 총리로 있었어도, 윤보선은 쿠데타 진압에 미온적이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NO'이다.

그 이유는 장면 정부는 윤보선의 정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에게 너무 가혹한 비판일까?



2.

1933년 1월30일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나치당수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고, 組閣을 위촉했다.

나치의 운세는 1932년 7월을 정점으로 점차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여전히 국회 제1당이기는 했지만, 나치당은 원내 과반수 정당은 아니었다. 나치당 단독내각 구성을 고집하는 히틀러 때문에 집권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치당이나 돌격대는 흔들리고 있었다.

1933년 초, 反나치 세력들은 나치의 집권 기회는 물건너 간 것으로 판단했다.독일제국 육군원수 출신인 대통령 힌덴부르크도 그가 경멸하는 '오스트리아 하사' 히틀러에게 정권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사회민주당, 가톨릭중앙당 등 反나치세력들은 힌덴부르크가 얼마나 히틀러를 경멸하는지도 알고 있었고,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힌덴부르크의 공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리사욕에 눈이 먼 전 총리 파펜, 힌덴부르크의 아들 오스카 폰 힌덴부르크 등의 막후 공작으로 히틀러는 '민족주의통일전선'을 명목으로 한 汎우파 내각의 총리로 임명될 수 있었다.



힌덴부르크는 왜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는데 동의한 것일까?

왜 그는 히틀러가 체제수호세력이 아니라, 체제파괴세력이라는 점을 몰랐을까?

자세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나는 그가 바이마르공화국에 애정이 없었던 것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면서 철저하게 고민 하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힌덴부르크는 소위로 보불전쟁에 참전했고, 1871년 베르사이유궁전에서 열린 독일제국 선포식에 참석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탄넨부르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었다. 그는 스스로 프로이센의 호엔쫄레른 왕가의 신하를 자처했고, 왕정복고를 공공연히 지지했다. 그는 1934년 죽기 전, 유서에서도 히틀러에게 왕정복고를 당부했다.

그런 사람이었으니, 체제수호세력이 아니라 체제파괴세력인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문제에 대해 큰 걱정 안 했던 것은 아닐까?

만일 그가 바이마르공화국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면, 히틀러 같은 무책임한 선동정치가에게 무책임하게 국가의 운명을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나는 윤보선이나 힌덴부르크 모두 비겁하고,자신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한, 역사의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처럼 쉽게 정권을 넘긴 것은 그들이 정권이나 나라에 대해서 '내 정권','내 나라'라는 의식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지도자는 모름지기 조국의 역사에 대한 애정과 긍지를 가진 자여야만 한다. 그 애정과 긍지는 체제를 위협하는 적과 맞서 싸우는 용기의 원천이 될 것이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북한공산집단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적'에게 맞설 용기를 가진 사람인가?

노무현은 그 용기의 원천이 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애정과 긍지를 가진 사람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그가 취임 이후 8-15나 3-1절 경축사 등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어떤 사람들을 공직에 임명했는지,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장으로, 과거사진상규명위원장으로 어떤 사람들을 임명했는지를 보면 자명해 질 것이다.

* 이 글은 우익정치토론사이트 프리존www.freezone2005.com에서 전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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