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직전까지 갔던 북한정권

침략전쟁이 곧 패전으로 끝나게 되자 김일성 일당은 평민들이야 죽거나 살거나 자신들의 일가친척만 군용트럭에 실어서 중국으로 도망쳤다.
얼마 전 중국 길림성 길림시 정부는 《吉林市志 - 外事當案》을 출판했는데 지방의 역사기록으로서 공개출판하고 공개열람할 수 있는 출판물이다. 그 책의 183페이지를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1950년 11월2일, 북한의 최고급 당정간부들의 가족들이 대거 길림시에 피난왔다. 길림시 정부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길림시 西大街 10號에 있는 커다란 동네를 임시 특별 보호 구역으로 설정하고 북한 고위간부 피난민들을 안치하였다. 그들은 도합 151가구 741인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인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일성의 조부모 일가, 김정일 형제와 가정부, 최용건 위원장 일가와 친척들, 金一 부수상 일가와 친척들, 홍명희 일가와 친척들, 박헌영 일가와 친척들 등이었다.

그중 김정일은 다른 몇몇 학생들과 함께 1952년에 그곳에 있는 길림조선족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조선어와 수학을 배웠으며 1953년 봄에는 중국의 소년선봉대에 입대하였다. 1952년 10월, 북한의 萬景臺遺子女學院이 길림시 光華路 17호에 이사오게 되자 1953년 여름 김정일은 자기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퇴학하고 이곳으로 전학하였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북한의 당정고위 피난민들과 萬景臺遺子女學院은 같은 시기에 북한으로 돌아갔다.>

봉건왕조가 멸망하면 말대 황제의 친척들이 우르르 모여다니면서 낙화유수된 옛시절의 부귀영화를 추억하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아쉬워한다. 이런 무리들을 중국어로는 왕조의 遺老遺少라고 부른다. 이 유로유소란 말이 우리한국어에는 없다.

자기가 일으킨 침략전쟁이 곧 패전으로 끝나게 되자 김일성 일당은 평민들이야 죽거나 살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가친척만 군용트럭에 실어서 혼비백산 중국으로 도망친 것이다.

그때 그들의 호위를 책임진 부대는 전부 중국에서 북한에 들어갔던 중국동포 부대이고 또 그 유로유소의 식사와 일상을 도와준 식모들은 다 현지의 조선족 부녀라고 한다. 그리고 길림시 육문중학교는 김일성이 다니던 중학교이다. 그래서 그들이 길림시를 피난처로 삼았던 것이다.

만약 맥아더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공군에게 핵무기를 사용했더라면 김일성 정권은 철저히 멸망했을 것인데 대국의 논리에 린치당한 대한민국은 아무 말도 못하고 휴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김정은 정권은 전전긍긍 하면서 붕괴 직전의 왕조를 붙들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국들이 또 한번 멸망해 가는 김정은 정권을 살려주고 있다. 누군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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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bong 2015-07-04 오전 8:43

    누굴까요? 중국이야 육지로 미군과(한국 주둔의) 얼굴 맞대기 싫어 북한이 있어주는 게 낫고, 일본은 통일된 한국이 앞서갈 우려가 있으니 남북이 다투는 게 좋고 소련은 통일된 한국이 개스와 석유를 다 많이 사가는 게 좋지만 영향력 잃기는 싫고 미국은 굴기하는 중국이 한국에서의 자신들의 지위를 뺏고 일본까지 위협할까봐 완충지대로 북한이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 밖의 나라들은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어요.
    딱 한가지 진짜 문제는 북한 사람들은 남한을 동경은 하는지 몰라도 친남.종남은 하지 않는데 남한 사람들은 친북.종북이 많다는 것 그것입니다. 남한 사람들 일부는 가난과 고생이 나 보다 잘사는 사람을 보면서 사는 것 보다는 좋다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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