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포드 목장이 뭐길래?


크로포드 목장이 뭐길래?

[조선일보 강인선기자블로그]
2005/05/16 04:12 추천 1 스크랩 1



텍사스주 크로퍼드에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목장은 그의 ‘쉼터’이자 ‘은신처’이다. 틈만 나면 워싱턴을 탈출하는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1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약 300일을 크로퍼드에서 보냈다.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주 주지사 시절인 지난 1999년 ‘프레이리 채플 랜치’라는 이 목장을 샀다. 면적이 190만평이니까 용인 에버랜드 놀이동산(30만평)의 여섯배가 조금 넘는다. 당시 구입가격은 130만 달러. 최근 몇년 미국의 부동산 경기가 좋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20억원이 넘는다는 서울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103평 아파트 한 채 값도 안된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크로퍼드 목장의 ‘정치·외교적 가치’는 눈부시게 치솟아, 요즘은 ‘서부의 백악관’이라 불린다. 기본적으로는 재충전과 휴식을 위한 장소지만, 미국 국내정치 무대에서 크로퍼드는 부시를 단순하고 촌스러운 서민적인 대통령으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잡목을 쳐내는 부시는 농사꾼처럼 소탈해 보이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바베큐 파티를 할 때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느낌을 준다. 부시 대통령이 “워싱턴이 숨막혀서 못견디겠다”며 크로퍼드로 달려갈 때는, ‘기득권 정치인과 엘리트 계층’에 대한 염증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미국 동부 정치명문가의 팔자 좋은 아들로 태어나 예일과 하버드를 다닌 부시가 ‘귀족적인 배경’을 슬쩍 지워버리고 남부의 보통 사람들과 ‘반기득권 정서’를 공유하는 무대가 바로 크로퍼드다. 그래서 크로퍼드는 ‘부시의 텍사스 카우보이식 포퓰리즘’의 산실이라 불린다.

크로퍼드를 국제무대로 옮겨보자. 인구 700명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 때로는 세계 각국 기자들이 몰려드는 ‘외교의 메카’로 변신한다. 소수의 정상들만이 크로포드를 방문하면서, ‘크로퍼드에 초대받는 것’은 부시 대통령에게 최고의 환대를 받는다는 의미가 됐다.

워싱턴을 떠도는 크로퍼드에 초대받는 ‘비공식적인’ 조건은, 우선 영국이나 이스라엘처럼 미국과 형제같은 나라일 것, 아니면 러시아나 중국처럼 미국의 국익에 핵심적인 영향을 끼치는 전략적인 파트너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조건은 ‘국내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협력해준 지도자’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 이라크전을 지지했던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스페인의 호세 마리아 아즈나르 전 총리가 바로 이 경우였다.

그래서 어느샌가 ‘크로퍼드 목장으로의 초대’는 미국이 특정 국가 또는 그 지도자에 대해 갖는 ‘애정의 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됐다. 미국과 정말 친한 나라임을 자부하려면, 그 나라 지도자가 크로퍼드에 초대받아 부시 대통령의 트럭을 타고 목장을 한바퀴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만간 열릴 예정인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회담 장소로 크로퍼드 목장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50년 동맹국이자 영국 다음가는 이라크전 파병국으로서 한국 대통령이 크로퍼드에 초대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평소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는 자주외교를 강조해온 청와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크로퍼드에 연연하다니! 친미파도 싫다는 청와대에 ‘애미파(愛美派)’라도 생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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