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이 인정한 대한민국 建國은 획기적 사건"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대한민국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 토론회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UN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서의 대한민국 건국을 재조명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1948년 5월10일 유엔의 감시 하에 실시된 총선거의 결과 8월15일에 건국된 대한민국은 그해 12월2일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서 회원국 58개국 중 48개국의 찬성을 얻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임을 승인받았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은 대한제국의 망국과 일제 패망이 다가올 무렵 중경의 임시정부와 이승만이 미국과 국제사회에 전개한 임정 승인외교가 실패한 사실, 그리고 미국 등 연합국 측의 신탁통치 실시 계획 등에 비추어 볼 때 기적과도 같은 획기적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통일지상주의 사관을 고수하는 사학계의 풍토에 대해 “분단고착화의 주된 책임을 건국세력에게 물었기에 대한민국의 승인을 위한 건국 외교활동도 남북분단의 고착화를 촉발한 암울한 역사의 개막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한국 현대사의 전개과정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一國史的 관점을 넘어 강대국간 국제관계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남북분단의 원인에 대해 “민족내부의 분열 때문이 아니라 1945년 9월 런던 외상회의에서 소련의 북해도 분할점령 요구가 거부된 직후 스탈린이 북한에 정부를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1946년부터 1948년 사이에 벌어진 중국의 내전에서 소련이 북한을 중국 공산군의 후방기지로 제공함으로써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이야말로 한국 문제의 유엔 이관을 통해 미국의 정책변화를 이끌어낸 주도자였다”며 “그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서두른 까닭은 남한에서라도 40여 년간 독립운동을 이끌며 꿈꿔 온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세워 국제적 지지를 통해 지키려 했던 데 있었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유엔의 승인을 획득한 이면에는 이승만의 전략과 장면·조병옥의 헌신적 외교활동도 있었다”고 지적한 뒤, “유엔에서 대한민국 대표단이 認定 투쟁에서 북한을 꺾고 쟁취한 국제적 승인은 6.25전쟁 때 유엔군 파병을 이끌어 내는 호국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박흥순 선문대 교수는 토론에서 “유엔 승인외교가 비교적 신속하게 성공한 것은 당시 한국의 미약한 국력 및 국제적 위상, 열악한 외교역량, 남한 내에서의 정치, 안보적 불안, 남북한의 분단과 갈등, 그리고 한반도 당사국 및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소련의 견제 및 반대 등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역사적인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어 “유엔의 승인이 가져온 의미는 한국이 주권확보와 자립을 마련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당시 2차 대전 직후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 시기에 유엔 자체의 정치적, 도덕적 권위와 유엔총회의 압도적 지지, 그리고 지속적 원조 등의 기여는 이후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박 교수는 또 “유엔의 입장에서도 대한민국 총선거와 건국 과정은 기념비적 임무였으며 이와 같은 역할로 유엔의 권위와 정당성을 발휘하는 계기로 창설 초기 유엔의 발전에도 기여했다”며 “탈 냉전시대 유엔이 각종 평화활동 (Peace Operations)을 전개하는 가운데, 선거감시 옵서버 활동 등을 통해 분쟁해결 및 정부수립 등 평화유지 혹은 평화구축 (peace-building) 활동을 일반화한 점에서 한국의 사례는 매우 효시적인 유엔의 평화활동이었다”고 평가했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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