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5주년을 맞아 建國 대통령 이승만 바로 알기 연속 토론회를 개최해온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이 13일 <이승만은 독재자라던데?>를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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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 |
여의도 소재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은 “이승만 시대의 통치도 민주주의였지만 민주주의는 결코 이념형적 잣대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며 “한국과 함께 출발한 국가 및 주변국들과의 비교방식에 따른 평가여야 한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과정적 평가와 비교적 평가를 고려한다면 이승만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신생독립국 및 민주주의 도입국가들의 민주주의 모델을 만들어 세운 위대한 혁명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5천년 민족사나, 혹은 대한민국 70년사로 본 분석으로나 20세기 중반이래 개도국 내지 신생국 지도자 모두를 분석해보더라도 이승만 보다 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지도자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남정욱 숭실대 문창과 겸임교수는 “이 땅에 민주주의는 쟁취가 아니라 ‘선언’ 형식으로 왔다”며 “국민의 지력은 잘 봐져야 19세기 수준인데 정치 행태는 20세기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이어 “4.19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유와 인권을 위한 인류의 오랜 싸움에서 이보다 적은 피를 흘린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는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에 기초한 작금의 정치 질서를 ‘87년 체제’라고 부른다. 상공업이 전면에 나서서 경제개발을 이끌었던 것을 ‘5.16체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두 체제는 이승만의 ‘48년 체제’가 아니었으면 나타날 수 없는 것이었다.”
남 교수는 “이승만의 집권 12년은 ‘48년 체제’를 한국에 정착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며 “겨우 12년에 다른 나라 수백 년간의 치열했던 인권-민권 투쟁을 압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재력과 지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승만은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지름길인 교육과 문맹퇴치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1959년이 되면 비무장지대 남쪽의 모든 국민들은 적어도 기능상으로는 모두 문맹을 면하였다”고 언급했다.
권 소장은 “이승만 대통령 집권기에 나타난 이 ‘교육기적’은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며, 이후 경이적인 경제발전의 지적 기반을 조성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정리/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