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개성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위 ‘남북차관급회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랜 기간 동안 남북대화 현장에서 북한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저의 생각으로는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협상행태는 과거의 그 것과 하나의 변화도 없이 그 연장선상에 있을 뿐입니다. 도대체 노무현 정부는 무엇을 하고자 이 같은 ‘대화’라는 이름의 ‘사이비 대화’에 집착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습니다. 다음의 글은 1995년10월 서울에서 ‘국방군사학회’가 “한국의 휴전체제와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방향”에 관한 세미나에서 제가 발표한 논문입니다. 한번 이 논문을 읽어 보시고 그 때의 북한의 협상행태와 지금의 그들의 협상행태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동복
平和體制로의 轉換을 위한 協商戰略 (3)
- 북한의 협상행태에 대한 집중분석 -
국방군사연구회 주최 “韓國의 휴전체제와 새로운 평화
체제 구축 방향”에 관한 세미나(서울: 1995.10.10)에
서 발표할 논문 [발표자: 李東馥 미국 국제전략문제연
구소 초청연구원]
4. 북한의 ‘협상’행태② - 남북대화의 경우
1971년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이 시작된 이래 남북한 간에는 간헐적으로 끊임없이 ‘대화’라는 이름의 회담이 추진되어 왔다. 그 동안 남북한 간에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생산되었고 ‘적십자회담,’ ‘조절위원회,’ ‘경제회담,’ ‘변칙대좌,’ ‘체육회담,’ ‘국회회담,’ ‘고위급회담’이라는 명칭의 ‘총리회담’ 등 여러 가지 명칭과 형태의 ‘대화’가 명멸해 왔다.
1990년 9월에 시작된 ‘고위급회담’은 회담의 지속성이나 성과 면에서 과거에 있었던 다른 ‘대화’들과는 판이한 양상을 보여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고위급회담’에서 쌍방은 1992년 2월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하 ‘비핵화선언’으로 약칭) 등 앞으로 통일될 때까지의 남북관계를 규율하게 될 두 건의 기본적인 합의문서를 탄생시켰다. 남북한은 이들 합의문서에 의거하여 ‘정치,’ ‘군사,’ ‘교류•협력’ 등 3개 분과위원회와 ‘핵통제공동위원회’를 발족시켜 본 회담 말고도 100여회의 각급 회의를 평양과 서울 및 판문점에서 진행시켰다.
남북한은 이 과정에서 ‘기본합의서’의 “구체적 이행•준수 대책”을 담은 3건의 분야별 (‘화해,’ ‘불가침’ 및 ‘교류•협력’) ‘부속합의서’를 생산해 냈으며 이들 ‘기본’ 및 ‘부속’ 합의서의 실천•이행기구로 ‘화해(정치),’ ‘군사,’ ‘경제’ 및 ‘사회문화’ 등 4개의 분야별 ‘공동위원회’를 발족시키는데 이르렀다.
그러나 ‘고위급회담’이라는 이름의 ‘총리회담’을 통로로 하는 남북대화도 역시 여기까지 뿐이었다. 남북한 간에는 1992년 11월중 4개 ‘공동위원회’ 회의를 판문점에서, 12월에는 제9차 ‘고위급회담’ 본회의를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되었으나 북한은 한•미간의 연례적 합동 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93 실시를 트집 잡아 이들 모든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과거 모든 남북대화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의 ‘고위급회담’의 경우에도 ‘합의’는 이루어 냈지만 이루어 낸 ‘합의’는 이행되지 않은 채 사문화되고 있는 것이다.
‘고위급회담’이 북한의 핵문제를 가지고 미•북 쌍무회담 개최를 위한 북한의 노력이 절정에 이를 무렵에 중단되었다는 것은 북한의 ‘협상’전략의 관점에서 시사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더 눈 여겨 살펴야 할 사실은 기본적으로 ‘고위급회담’의 중단은 ‘고위급회담’의 주산물로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합의문서”인 ‘기본합의서’ 내용, 특히 이 ‘기본합의서’에 근거한 남북한 간의 ‘특수관계’의 성격에 관한 합의 내용에 대한 쌍방 간의 해석 차이에 그 원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밝혀 두어야 할 사실은 문제의 ‘기본합의서’가 결코 “통일 이후의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문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통일을 이룩한 ‘하나의 나라’안에서는 남북한 간에 ‘기본합의서’로 규율해야 할 ‘상호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기본합의서’는 어디까지나 아직 “통일되기 이전”의 분단되어 있는 남북한 간의 관계를 과도적으로 규율하는 합의문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기서 이 합의문서의 원만한 실천•이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북한의 두 ‘분단주체’가 ‘분단’이라는 ‘과도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두 ‘분단주체’는 누구인가. 그들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남북의 두 ‘정치실체’라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결국 ‘기본합의서’가 규율할 남북한 간의 관계는 곧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관계인 것이다.
‘기본합의서’는 “통일 이전”의 한반도에서 남북관계가 갖는 특이한 “이중성의 상황”을 수용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본합의서’는 전문에서 이 합의서에 의거한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고 규정함으로써 ‘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가 “국제법에 의한 국제관계와는 다른 관계”임을 명백히 했다. 동시에 ‘기본합의서’는 제15조에서 “민족경제의 통일적•균형적 발전,” “민족 전체의 복리” 그리고 “민족내부교류에 의한 경제교류”에 언급함으로써 동 합의서에 의거한 남북관계가 하나의 ‘민족내부관계’로 상정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합의서’는 같은 전문에서 이 같은 남북한 간의 ‘특수관계’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관계라고 규정함으로써 이 합의서에 의거한 남북관계가 첫째로 “통일 이전”에 남북한에 실재하는 두 ‘분단실체’ 간에 형성되는 관계이며 둘째로 “분단 고정적”이거나 “분단 지향적”이 아니라 “통일 지향적”인 동태적 관계임을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명백한 사리에도 불구하고 북한 측이 ‘기본합의서’ 성립 이후에도 여전히 이 같은 남북관계의 이중성에 대하여 이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있다. 북한은 ‘기본합의서’에 의거하여 형성되는 남북관계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에 이루어지는 관계로 받아들이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기본합의서’ 전문 중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대목은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라는 대목만을 거두절미하여 인용하고 이에 대한 일방적 해석을 앞세워 오히려 ‘기본합의서’를 이용하여 북한의 이른바 ‘하나의 조선’ 논리의 정당화를 기도하는데 만 급급함으로써 동 합의서의 이행을 가로막은 것이다.
심지어 북한은 1991년 9월 남북한 동시가입을 수용한 것도 ‘하나의 한국•하나의 조선’이라는 현실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선’으로 가는 길로서 이를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논리로서는 남북대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하나의 조선’ 논리는 한마디로 ‘해방의 논리’에 입각한 ‘분단’과 ‘통일’의 ‘상황논리’이다. 즉 북한의 주장은 한반도 상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나라’만이 존재할 뿐 남쪽의 대한민국은 “미국의 점령 하에 존재하는 하나의 위(僞)정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분단의 다른 일방인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시하여 ‘해방의 대상’으로 간주할 뿐 ‘협상의 상대’로는 인정치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이 그 동안 시종일관 추진하고 있는 미•북 ‘평화협정’ 주장은 물론 작금 핵문제에 관한 미•북 쌍무회담의 과정에서 한국의 소외를 고집,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문제의 ‘하나의 조선’ 논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의 조선’ 논리에 입각한 북한의 통일노선은 첫 단계로 ‘미국의 식민지’인 ‘남조선의 해방’을 추구한다. 우선 “남조선을 ‘해방’시켜 ‘공산화’시키고” 다음 단계로 “‘이미 공산화되어 있는 북반부’와 ‘새로이 공산화되는 남반부’ 사이에 ‘합작’을 이룩”함으로써 “전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조선’ 논리에 입각한 북한의 통일이론인 소위 ‘남조선 혁명에 기초한 조국통일’ 이론의 정체이다.
여기서 ‘남조선 해방’의 수단으로 북한이 추구하는 전술이 ‘통일전선’ 전술이다. 즉 대한민국을 ‘전복의 대상’인 정부당국과 ‘제휴의 상대’인 인민대중으로 양분하고 인민대중과의 ‘제휴’(통일전선)를 통해 정부당국을 고립시켜 전복시키려 하는 것이다.
‘고위급회담’의 경우처럼 북한이 대한민국의 ‘정부당국’을 대상으로 하는 ‘대화’에 호응하는 것은 소위 ‘상층 통일전선’ 전술에 따른 것으로 이 경우 남북의 ‘당국간 대화’는 그 목적이 오직 반정부적 인민대중을 상대로 하는 ‘하층 통일전선’으로 가기 위한 ‘교량’으로 이를 이용하는데 국한된다.
남북대화는 결국 ‘하층 통일전선’로 옮겨가기 위한 하나의 ‘교량’으로서의 ‘상층 통일전선’의 한 변형에 불과한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맥락 속에서 북한은 한편으로는 한국과 ‘당국 간 대화’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당국 주도’ 또는 ‘당국’은 배제하는 대화방식인 이른바 ‘정치협상회의’를 거론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당국 간 대화’ 석상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구속자 석방 등을 거론하여 ‘비당국 주도’의 ‘정치협상회의’ 추진에 유리한 환경과 조건의 조성에 이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이 요구들을 ‘전제조건’화하여 때로는 대화의 진전을 교착시키고 때로는 대화의 중단을 강요하며 또 때로는 중단된 대화의 재개를 가로막는 작태를 반복하는데 이를 이용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북한이 여전히 ‘하나의 조선’ 논리의 테두리 안에서만 남북관계를 운영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남북 간의 ‘당국 간 대화’가 갖는 한계성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대한민국도 ‘하나의 나라’ 논리, 즉 ‘하나의 한국’ 논리로 북에 대응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 흔히 망각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하나의 한국’ 논리는 ‘수복의 논리’였다. 즉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북한지역을 ‘미수복 지역’으로 규정, 북한지역만의 자유선거나 아니면 남북한 전역에서의 자유총선거를 통하여 북한지역을 ‘수복’함으로써 ‘실지 회복’을 통해 통일을 완성한다는 통일정책을 추구했던 것이다. 1948년 5월 30일 대한민국의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실시했을 때 북한지역의 ‘수복’에 대비, 북한지역 몫으로 100석의 국회의석을 공석으로 남겨 두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결국 냉전시대 한반도의 통일상황은 남의 ‘하나의 한국’ 논리와 북의 ‘하나의 조선’ 논리사이의 팽팽한 대치로 특징 지워 졌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탈냉전 지향의 세계조류 속에서 대한민국은 대결상황의 극복을 위하여 ‘하나의 한국’을 고집하는 입장에서 일보 후퇴하여 통일까지 잠정적으로 남북한 간에 ‘하나의 한국’과 ‘하나의 조선’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과도적 특수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노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대한민국의 노력이 성공적인 북방외교의 추진과 남북한의 동시 UN가입 실현을 거쳐 ‘고위급회담’에서의 ‘기본합의서’ 타결로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간에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들이 성립된 뒤에도 북한은 여전히 냉전시대의 왜곡•전도된 한반도 상황논리인 ‘하나의 조선’ 논리에 집착하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북한은 ‘기본합의서’ 채택을 위한 ‘고위급회담’이 아직 계속 중이었던 1991년 9월 UN헌장 제4조에 의거 UN에 ‘동시가입’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UN헌장이 요구하는 ‘독립된 주권국가’(STATE)라는 회원국 자격요건을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용함으로써 사실상으로는 ‘하나의 조선’ 논리를 포기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또한 남북한 UN 동시가입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수교하고 있는 171개 국가중 118개 국가가 북한과도 동시에 수교하고 있으며 남북한은 UN을 비롯하여 108개 국제기구에 이중으로 가입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북한 동시 UN가입을 수용한 것이 오히려 “‘하나의 조선’을 실현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궤변으로 ‘하나의 조선’ 논리 고수를 고집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고수하는 이 같은 냉전시대의 ‘상황논리’와 ‘기본합의서’에 명문화되어 있는 탈냉전시대의 ‘대화논리’ 사이에 빚어지는 괴리 때문에 북한은 ‘기본합의서’ 이후의 대화를 이어 가지 못하는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이다.
‘기본합의서’의 해석의 차원에서 남북한이 근본적으로 의견을 달리하는 또 하나의 문제가 소위 ‘통일 3원칙’의 해석에 관한 문제이다. 남북한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 ‘평화,’ ‘단결’의 ‘통일 3원칙’에 합의하여 이를 천명한 이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재확인해 왔다. ‘기본합의서’ 또한 전문에서 이를 재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7.4 남북공동성명 때나 마찬가지로 북한은 이번에도 남북이 합의한 ‘통일 3원칙’에 대한 자의적이고도 일방적인 해석을 고집함으로써 ‘기본합의서’의 성격을 크게 왜곡•변질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의 실천•이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통일 3원칙’을 해석함에 있어서 남북한 간에는 다음과 같은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자주의 문제>
통일문제 해결에 적용되는 원칙으로서 ‘자주의 원칙’은 두개의 측면이 있다. 즉 외세간섭 배제의 측면과 당사자 해결을 요구하는 민족자결의 측면이다. 근세에 들어 와서 한반도 상에서의 열강의 각축과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그리고 국토와 민족의 분단 등 외세의 간섭으로 온갖 시련에 시달려 온 우리 민족으로서는 통일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다시는 외세의 간섭으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다짐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판을 치던 19세기의 상황과는 달리 국제화•개방화•세계화가 구가되는 가운데 상호 의존성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지구촌 시대에 와서는 소위 ‘외세의 간섭’은 하나의 관념적인 상대적 개념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자주의 원칙’과 관련하여 보다 중요한 원칙의 문제는 통일문제를 비롯하여 남북한 간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는 직접 당사자인 남북 쌍방이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인 선택과 합의에 의하여 해결한다는 ‘민족자결’ 원칙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체제와 이념 그리고 관행을 달리 하는 남북한이 상호간의 문제를 ‘민족자결’의 원칙에 입각하여 외부의 개입 없이 당사자 사이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상대방의 존재와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남북한은 각기 자기 측의 고유한 법질서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당사자 해결’과 ‘민족자결’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은 우선 서로 상대방의 법질서를 존중해야 하며 서로 상대방의 정부당국이 자기 측 지역의 주민들을 대표하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각기 자기 측 지역에서 쌍방 간의 합의사항의 실천•이행을 보장할 권한과 권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냉전시대의 ‘해방의 논리’에 입각하여 ‘자주의 원칙’을 논하고 있다. 북한은 “북한지역에서는 ‘자주’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주’의 문제가 없으며 따라서 ‘자주’의 문제가 존재하는 곳은 남한지역 뿐”이라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북한의 주장은 남한에서의 ‘자주’의 문제는 “미제에 의한 남조선 강점으로 인하여 제기되는 문제”라는 것이며 따라서 “남조선을 미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자주의 원칙’의 본질이라는 억지 이론을 펴고 있다.
북한은 이 같은 억지 이론에 근거하여 ‘자주의 원칙’의 미명 아래 주한미군 철수라든가 UN군 사령부의 대안 없는 해체라든가 미•북간 한국의 참여 없는 ‘평화협정’의 체결 요구 등을 정당화•합리화시키려 하고 있다. 요컨대 북한이 거론하는 ‘자주의 원칙’은 오로지 한•미 안보유대의 단절•파괴만을 그 실체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북한 측 입장의 부당성은 자명하다. 첫째로 이 문제에 관한 북한 측 입장은 ‘외세’ 문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분단의 원인으로써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만약 분단의 원인으로 ‘이데올로기’가 중요하지 않다면 통일은 보다 용이하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북한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대한민국이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간단히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통일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외세’ 때문이기 보다는 북한은 공산주의를 버리려 하지 않고 있고 반면 대한민국은 공산주의를 수용하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문제에 관한 북한 측 입장은 한반도의 경우 주한미군 문제는 ‘자주’의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무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1949년 한반도를 떠났으나 다음해인 1950년 북한의 6.25 불법남침을 격퇴시키기 위한 UN군의 일부로 다시 한반도로 돌아 왔으며 1953년 휴전이후에는 정전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쟁재발 억지력으로 대한민국과의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대한민국의 요청으로 잔류하고 있는 존재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는 ‘자주의 원칙’의 차원에서 북한이 시비할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 위협 제거 문제와 관련하여 한•미 양국간에 협의•해결할 문제인 것이다.
<평화의 문제>
다음으로 ‘평화의 원칙’은 통일의 방법에 관한 문제이며 이때의 ‘평화’의 문제는 당연히 뿌리를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도발된 6.25 전쟁에 두고 있다. 즉 ‘평화의 원칙’은 통일을 달성함에 있어서 다시는 6.25 때와 같이 무력이나 폭력의 사용을 배제하고 반드시 평화적 방법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6.25 전쟁은 북한이 ‘조국해방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통일’을 명분으로 하여 대한민국을 기습적으로 전면 남침함으로써 일어 난 전쟁이다. 이 때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공격한 대상은 대한민국이지 미국이 아니다. 따라서 6.25 전쟁은 어디까지나 침략자인 북한과 피침략자인 대한민국 사이에 수행된 전쟁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의 경우 전쟁당사자도 남북한이고 “전쟁 이전의 상태로의 복귀”(STATUS QUO ANTE)를 요구하는 ‘평화’의 당사자도 당연히 남북한일 수밖에 없다.
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미국을 비롯한 16개 UN회원국들이 UN 안보리의 결의에 호응하여 한반도에 군대를 파병했다. 이들은 침략을 당한 대한민국이 침략을 격퇴시키는 것을 지원하기 위하여 참전한 것이지 이들이 대한민국을 대신하여 전쟁을 가로맡기 위해서 참전한 것은 아니다.
전쟁의 효율적 수행을 위하여 역시 UN 안보리의 결의에 의거하여 미군 장성이 지휘하는 UN군 사령부라는 통합 지휘체제가 구축되었고 한국군 역시 작전지휘권을 UN군사령관에게 위임함으로써 UN군의 일부가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미군 장성인 마크 클라크 (Mark Clark) 대장이 정전협정에 서명한 것은 UN군사령관의 자격으로 다른 참전국 지휘관들을 대표하여 서명한 것이지 미군 사령관의 자격으로 서명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정전협정은 교전 쌍방의 야전 사령관간에 조인된 것이지 국가 간에 체결된 것이 아니다. 미군은 16개 참전국군과 한국군 중의 일원일 뿐이고 따라서 미국은 결코 6.25 전쟁의 주당사자도 아니고 하나의 국가로서 정전협정의 배타적인 조인 당사자도 아니다.
6.25 전쟁 기간 중 미군 장성이 UN군을 지휘했고 정전협정이 미군 장성에 의하여 서명되었기 때문에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이고 6.25 전쟁은 남북한 간의 전쟁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간의 전쟁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는 북 한의 억지가 통용되려면 “미군 장성이 나토군 사령관으로 나토군을 지휘하고 있으니까 모든 나토 회원 국가들은 미제의 식민지”라는 논리도 성립되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은 어느 경우에나 남북한인 것이다.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이 가지고 있는 입장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평화’의 토대로서 신뢰문제에 관한 북한 태도이다. 북한은 6.25 남침 사실을 부인할 뿐 아니라 1.21 사태, 문세광 사건, 랑군 사건, KAL기 폭파사건, ‘남한조선로동당’ 사건 등 수없이 반복되어 온 각종 대남 폭력도발 사건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시인한 사실이 없다. 북한은 오히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이들 대남 폭력도발 사건들을 깡그리 한국측의 ‘자작극’으로 몰아붙이는 적반하장의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한 간에 신뢰가 조성될 리 없고 신뢰가 조성되지 않는 가운데 평화가 뿌리를 내리기를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어가 아닐 수 없다. 남북한 간에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시는 6.25와 같은 선전포고 없는 동족상잔의 참변이 재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필요하다. 이 같은 보장은 당연히 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6.25전쟁은 우발적 전쟁이 아니라 북한의 통일정책에 의하여 도발되었기 때문에 이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북한의 통일정책의 수정과 이에 수반되는 일련의 ‘신뢰구축조치’가 이루어 져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하여 남북한 간의 군비축소와 통제조치는 이 같은 ‘신뢰구축조치’의 선행이 없이는 무망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의 원칙’의 허구성은 그 실체로서 오로지 주한미군의 철수만을 요구하고 있다는데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선신뢰구축•후군비축소’의 당연한 수순을 외면하고 “먼저 군비를 축소하면 신뢰는 자연 조성된다”라는 선후가 뒤바뀐 논리를 전개하면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선군축’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단결의 문제>
‘단결의 원칙’은 통일을 지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남북의 같은 민족사회간에 화해를 바탕으로 ‘단합’을 도모함으로써 통일을 위해 유리한 내적 조건과 환경을 성숙시키는 것을 명제로 한다. 남과 북에 상호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사상과 제도 그리고 이념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단합’은 상호 일정한 ‘공통분모’의 형성 없이는 어렵지 않을 수 없다. 이때의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인권보장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이념을 벗어 난 민족적 동질성이라야 한다.
따라서 남북한 간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족적 단결’을 추구하기 위해서 쌍방이 추구할 당면과제는 우선 각자의 사회 안에서 민족 구성원 개개인이 이념에 의한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복수의 의견과 가치가 허용되며 UN의 인권선언이 보편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기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고 이에 대한 저해요소들을 제거하면서 상호 간에는 대화와 교류를 통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복원하여 그 안에서 민족적 동질성이라는 ‘공통분모’를 키워 나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말하는 ‘단결의 원칙’은 여전히 시대도착적인 ‘해방의 논리’의 범주 안에서 이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근거하여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대한 일방적 간섭을 정당화시켜 주는 ‘면허장’으로 이용되는데 그 의미가 국한되어 있다.
북한의 체제는 ‘주체사상’(헌법 제3조), ‘일당독재’(헌법 제11조), ‘계급노선’(헌법 제12조), ‘군중노선’(헌법 제13조) 등을 표방하면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헌법 제63조)에 기초하여 “전체인민의 정치 사상적 통일”(헌법 제10조)을 강조하는 ‘획일적 유일사상 체제’이다. 북한은 이 같은 ‘획일적 유일사상체제’의 구축으로 북한지역 안에서는 “단결의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라고 강변하면서 ‘단결’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 측 체제 내부 문제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배제하고 있다.
반면 상대방인 대한민국의 체제가 자유민주체제라는 사실에 편승하여 북한 측의 일방적 해석에 바탕을 둔 ‘단결의 원칙’을 상대방에게만 적용시킴으로써 상대방 체제에 대한 간섭을 합리화시키는 데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폐기하고 특정 구속인사들을 석방하면 북한 측과 연계된 불법적 정치세력에게 합법적 활동 공간을 제공하라고 요구하는 등의 북한 측 주장은 바로 이 같은 강탈적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한국이 북한의 ‘획일적 유일사상 체제’와 이에 바탕을 둔 북한식 ‘민족적 단결’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획일적 유일사상 체제’가 존속하는 한 남북한 간에 ‘민족적 단결’을 거론하는 것은 그 자체가 무의미함이 분명하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북한 간의 ‘민족적 단결’을 거론하는 것은 북한에서 ‘획일적 유일사상 체제’가 포기된 후라야 가능해 지지 않을 수 없다. [계속]
북한의 협상행태에 대한 집중분석 [3]
- 이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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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5-19, 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