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우리 역사라도 과장(誇張)하면 안된다

'독립운동은 평범한 모든 이가 주역이었다'라는 식의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져 보인다
28일 연합뉴스, <'일본강점기 독립운동, 평범한 모든
이가 주역이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학위취득용
논문('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연구')을 인용해 이렇게
썼다.

-'일제에 대한 저항이 전 연령층에서 일어났으며,
10대가 참여할 정도로 이 시기는 한국인들에게 평범한
삶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일제의 한국 식민지배가 평범한
사람들조차 일제에 저항해 감옥에 올 정도로 부조리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파악하게 됐다'

그러면, 기사 제목대로, '독립운동, 평범한 모든 이가
주역'이라는 주장과, 기사 내용 중 '이 시기는 한국인들에게
평범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했다'는 주장이 Fact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보자.

논문을 인용해 연합뉴스 기사가 밝힌 1919~1944년
서대문 형무소 '사상범'은 4062명이다. 독립운동을 포함한
사상범은 서대문 형무소로 집중 수감된 것으로 보이므로
'사상범'의 경우 서대문 형무소 집계가 곧 한반도 전체
집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반도 인구를 2500만
명으로 평균 잡아 보면, 25년간(1919~1944) 누계
4062명은, 전체 인구의 0.016%다.

그런데, 사상범 중 순수 독립운동에 해당하는 인원은 2745
명으로 줄어든다. 이 기준으로 하면, 독립운동 수감자는
전체 인구의 0.011%다. 아울러, 2745명 중, 1600명 이상은
3·1운동 관련 수감자다. 결국, 3·1운동을 제외하면, 25년간
1100명 정도가 독립운동으로 수감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1919년 이전의 독립운동이나 수감되지 않은 독립운동가,
3·1운동 당시 여타 형무소 분산 수감 등의 변수는 많다.

하지만 최소한, 이상과 같은 통계적 수치(Fact)를 감안할
때, '독립운동은 평범한 모든 이가 주역이었다'라는 식
주장이나, '이 시기는 한국인들에게 평범한 삶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는 식은, 타당성이 떨어져 보인다. 수치가 보여
주는 것은 오히려, 당시 일반 대중의 경우, 평범한 삶(일
상)의 연속이었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커 보인다. 우리
역사라고 해서, 과도한 미화나 무리한 일반화 시도가 쉽게
용납된다면, 이는 오히려 우리 역사 전반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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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중히 2015-07-29 오전 9:04

    조선시대 나름 훌륭하다는 신숙주께서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했단다.
    그 후 조선은 교만하여 일본을 야만인 취급하다가 임진왜란을 당했다,.,
    그 교만은 지금도 계속된다..(사실은 교만은 실력없는 자의 전유물)

    대체적으로 문명을 우리가 전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를 상전모시 듯 해달라는 것
    같은데.. (4대 문명 발상지 국가들이 미국에게 대접받길 원하는 모양)
    모든 것은 과거 보다 현재가 중요하다.
    일본은 우리가 어떻게 다루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이것은 다른 일반론보다 더 심각함)
    해방후 70년동안 일본은 우리와 이념 동반자요, 경제, 문화 동반자였고 도움을 주던 나라였다.
    그런 일본이 대외 안보환경 변화에 발 맞춰어 미국과 공조하며 패전국에서 벗어나
    정상국가화(군사적)하고 있는 것이다,. 극우나 우경화하고는 거리가 있다..

    이 싯점에 우리가 일본을 적국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세계 2위국의 적국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한미일 공조를 튼튼히 하며 일본을 군사적 동맹관계로 생각한다면
    우리방식의 통일의 큰 우군을 얻는 것이 된다..

    과거와 명분에 얽매여 일본을 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생각하고 실리를 추구하여 일본을 우방으로 볼 것인가? 이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 온고지신ongozsin 2015-07-28 오후 9:45

    이런 글을 왜 실어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 통진당 골빈 인간들이 북한이면 사족을 못쓰는 꼴이 역겨워 이곳에 왔더니 이곳에는 일본이라면 꿈속에서라도 흠모하는 사람들로 우글거리고 있다. 나는 반일론자가 아닌데도 역겨운데 좌빨놈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좌빨들의 친일공세가 먹혀드는 것이다. 심지어 일전에 회원토론방에서 한일합방을 칭송하는 글이 올라 와도 삭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역사에 바로 세우신 조갑제 대표 일생의 공로가 말년에 허물어질까 심히 염려된다.

  • 기본정석 2015-07-28 오후 7:00

    나는 웬만하면 댓글 다신분들 여태까지 시비걸지 안을려고 노력했는데,저 밑에 멸공씨는 어디 화성에서 왔나.도대체 무슨 망발을!! 초등학교 교육과 가정교육이 의심스럽군.아니면 그냥 장난으로 쓴건가.

  • jibong 2015-07-28 오후 6:37

    상록수씨.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다는 라디오 보도가 '유케 유케 군깡 다이 닛뽄노'라는 노래와 함께 흘러나오자 나의 선친은 사랑채에 계시던 할아버지께 이제 일본은 졌습니다
    라고 말씀 드리던 기억을 할아버지로 부터 소학을 배우던 내가 들었답니다.
    당시 내 선친은 일본 군수 밑에서 군청 직원이었고 토쿄에서 아라부 중학을 나오고 와세다 재학중에 출교(黜校)를 당하셨던 분이십니다. 출교의 이유는 MR 운동 때문이었고.
    귀하는 중학생이라 세계를 몰랐겠지만 당시에도 지성인들은 일본의 폐망을 다들 알고 있었어요. 심지어는 진주만 공격을 지휘한 일본 해군대장 야마모토 이소로쿠 조차도 공격 당일에 "닛뽄와 마케다" 라고 했어요. 1945년에 중학생이었으면 참으로 멍청한 학생이었군요. 그 멍청한 정신으로 심훈의 소설제목을 닉네임으로 쓰시다니 용감도 하십니다.
    아닌가요, 지금 86세 실테니 노망이십니까?

  • 기본정석 2015-07-28 오후 6:31

    지금 펀드빌더씨는 상당한 착각을 하고있소.지면상 지금부터는 펀드라 하겠소.
    일제강점기때 감방간 사람만 독립운동 한게 아니요.감옥에 있었던 우국지사들과 마음을 함께했던 대다수 조선의 민초들이 있었기에 그들은 외롭지 않았소.신사참배 거부하고 투옥된 기독교 지도자들도 대다수 교인들이 그들과 마음으로 함께하기에 외롭지 않았소.행동하는 독립운동가와 마음으로 함께하는 국민들이 있기에 해방후에 친일파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고 이승만이나 이시영등을 지도자로 뽑았소.북한에서도 조만식선생이 8.15 직후 이제 이강토 두번다시 뺏기지 맙시다 할때에 평양시민들이 하염없이 울었다는건 너무나 유명하오 왜? 비록 감옥에는 같이 안갔지만 마음으로는 함께했기 때문에 그렇소.펀드씨 너무 수치를 좋아 하시는데 그수치를 뺀나머지 99.9% 는 독립운동을 반대했습니까? 우리가 지나치게 민족주의 사관으로 치우처 우쭐대도 문제지만 쓸데없이 자학사관에 빠지는건 더심각하오.나도 랑케교수의 역사 접근법을 지지하는 사람이지만 랑케교수도 펀드씨 처럼 계량수치를 그런식으로 적용하지는 않소.그 계량수치에 있는 사람들이 다수의 국민들에게 끼친영향은 무슨수치로 만들어 낼거요?펀드씨 공부좀 하시요!!

  • jibong 2015-07-28 오후 6:20

    미래지향군! 자네 눈은 사팔뜨기인가 아니면 청맹과니인가? 위 펀드빌더의 글은 분명
    1919 - 1944로 기록 되어있지 삼일 운동 얘기가 아닐새.
    그리고 설혹 3.1운동 얘기라 하더라도 당시의 전 국민의 절반은 독힙만세를 외쳤는데 그것이 국민의 0.016%에 해당하는가?
    자네 미안하지만 정신은 어디에 놓고 다니나? 용궁에 간 토끼야 꾀를 쓴 것이지만 자네
    는 간이 아닌 정신줄을 끊고 말았네그랴. 아가 너무 불쌍해 눈물난다. 자네 부모님은 속이 얼마나 상하실까?

  • bestkorea 2015-07-28 오후 5:21

    고금동서를 통 털어 자주국방을 안하든 못하든 그런 나라치고 제대로 된 나라가 있던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만큼 자주국방에 무관심 혹은 비판적일 순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즉 노예근성이 몸에 벤 민족이라서 그렇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경제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실제로 옛날엔 국방력을 갖추고 싶어도 경제력이 없었음), 한사코 국방예산은 안늘리고 또한 군사문화를 계속 적대시 하며, 어떡하든 기를 죽여서 범죄 집단으로 몰아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하는 한국인들이다. 어찌 노예근성이 뼈 속깊이 물든 열등 민족이 아니고선 이런 행동을 끊임없이 할 수 있겠는가. 아직 전쟁 중인 나라인데 국방예산이 복지예산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나라다. 온 국민이 복지비 더내놓으라고 아우성치지만 국방비 늘려 자주국방하자는 사람 있던가. 늙어나 젊어나 매 한가지 아닌가. 그런면 이런 현상이 거란, 몽골, 왜,청, 일제 식민지 전후엔 안그러했고, 6.25 전 후엔 안그러했느냐이다. 안 그러했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다들 주둥이만 살아 입으로만 애국하고 국방하고 충성했지 실제로는 도망갈 궁리부터 하지 않는가. 이 또한 예나 지금이나 뭐가 다른가. 일본이 군사 대국이 되는 것이 그렇게 무섭고 두려우면 그냥 그 밑에 기어들어가 살면 된다. 옛날에 일본인들에게 너무 심하게 맞아 가슴에 멍이 들고 한이 맺혔으면 이젠 다시는 안 얻어 맞겠다는 각오를 하고 힘을 키우면 된다. 힘도 안 키우고, 왜 맞았는지도 모르면서, 마냥 울무짓고만 있다. 참으로 자존심도 수치심도 없다. 앞으로는 좀 살살 때려달라고 무릎꿇고 비는 노예 모습아니고 뭔가. 이 모든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군사력을 키워 당당히 싸우면 된다. 비겁하고 비굴하고 자존심 상한 짓들은 제발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이다. 명색이 성공한 대한민국이요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이고 세계 공업대국 5위권이요 세계 학력이 제일 높은 국민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모든 것은 겪에 맞을 때 아름답고 그렇지 못할 땐 너무나 추하고 더럽기 까지해서이다.

  • 멸공! 2015-07-28 오전 11:50

    전에 초등학교6년때 담임선생님 말씀은, 일본이 항복했다고 하니, 크게 걱정했었다라고 하시던데. 그들은 자기 조국을 당시의 일본으로 생각했다. 지금도 일제시대때 조상들이 공부 잘 해 고위직 역임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 후손들이 있나. 북한보다 일본과 연방제 통일도 난 지지하고 싶다. 일본국적 준다고 하면 거절할 사람 몇이나 될까. 반일은 반미로 이어져 걱정스럽다.

  • 상록수 2015-07-28 오전 11:15

    광복 때 중학 2학년이었다. 일본이 진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조선인 99%는 아마 그랬을 것이다. 슬프지만 그만큼 조선인은 일본인化되어 있었다. 일본인화 경험자가 100만명 쯤 생존하고 있지 않을까?

  • 알라는위대하다 2015-07-28 오전 11:05

    새로운 나라가 자발적인 아닌 타국에 의해서 세워졌으니 정체성을 정립할려고 과거를 각색하는 일은 이 나라에서 다반사였죠, 대한민국 이전의 정권은 조선총독부를 최대한 악랄하게 묘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건국의 정당성을 높이고자 여러가지 과장이나 무리한 시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란 직시를 할 때 교훈을 얻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교과서는 극소수 사람들의 투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당시를 산 대다수 민중들의 삶을 조망하지 못했고, 그 결과 한국인의 역사의식은 허례허식과 유치한 내셔널리즘으로 일관하며 세계사의 객관성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안보교육과 역사연구를 착각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민비나 고종,구한말을 과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남겨 후손이 역사의 지침으로 삼기를 기원합니다.

  • 未來指向 2015-07-28 오전 10:57

    지봉님깨서는 1945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목도한 부분에 한하여 역사의 증인이 되실 수 있겠지만, 1919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증인이라 하실 수 없으십니다. 본문글은 3.1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논점을 흐리셔서는 아니됩니다.

  • jibong 2015-07-28 오전 10:33

    이 글 하나로 이 펀드빌더라는 자가 한국인이라면 민족에 대한 반역정도가 아니라 절대로 이 나라에 태어나서는 안 될 민족의 원수이다.
    서대문 형무소에 사상범으로 수감된 지사들만 반일투쟁을 했고 나머지 국민은 일제를 환영하고 일본의 황국신민으로 행복을 누렸다는 식으로 우리 민족을 모독한다.
    1945년에 열한 살이었던 나도 고꾸민각꼬를 다니는 동안 어떻게 하면 일본놈들을 죽일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고, 나의 족친께서는 씨족의 장손으로써 스스로는 일본인들에게 보이기 위해 파락호짓을 하고 다니시면서 종가의 저택과 종가소유 농토를 세 차례나 팔아 허랑방탕한 생왈을 하는 것 처럼 꾸미시고는 실제로는 그 돈을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셨다. 그 파락호짓으로 인해 일본경찰은 그 족친을 친일분자로 알아 오히려 우대 하도록 만들었었다.
    내용적으로 그 종가의 족친의 행위를 안 우리 씨족들은 그 어른이 종가건물과(지금도 문화재이다) 농토를 팔아 버리면 모두들 십시일반으로 모아 반 년 안에 되 사드리기를 세 차례나 했다. 이것이 항일투쟁이 아니면 무엇인가. 이것이 내 종가 족친께서 서대문 형무소 커녕은 일본인 군수와 밤을 세워 술자리를 한것, 그리고 그런 것으로 일본 경찰의 호위를 받던 것이 친일이었다는 것이며 그 분 혼자 독립투쟁을 하신 것이냐?
    네 이놈, 펀드빌더, 네 놈은 우리 씨족을 위글로 천세에 씻을 수 없는 모독을 했다. 네놈을 갈갈이 찢어 죽여도 우리 씨족 50만의 공분은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 토마스 2015-07-28 오전 10:33

    공감합니다. 내 조상이라고 준비없이 임금되고 그 후 우왕좌왕 매관매직까지했던 고종이나 나라뺏기고나서 우국지사인양 했던 주변사람들을 미화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지요.

  • 정중히 2015-07-28 오전 10:21

    현재 한국사교과서를 보면 독립운동사를 김일성이가 항일운동한 것만큼
    왜곡하여 과장하고 있다.
    누가 보면 일제시대 내내 온 국민이 독립운동만 할 줄 알 것이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1920년도 부터 이 나라는 사회주의 공산계열의 혁명분자들이
    항일투쟁의 중심이 되어 사실상 순수한 독립운동이 아닌
    부루조아를 없애려는 프로레타리아 운동을 한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항일 빨치산을 하며 수 많은 동포들을 노략질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스스로 민족주의계 독립투사에 반목하며 그 운동을 방해하기 까지 했다..
    이 공산주의자들의 혁명까지 독립운동으로 평가한다면 이 나라는
    벌써 공산화가 돼야 되고 그게 정통적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물론 일부 순수한 독립운동들은 높히 평가하고 거룩한 뜻을 이어가야 하지만,
    이런 불순한 자들의 활동까지 포함시킨다면 역사왜곡이요 어불성설이지만
    현재 교과서는 그 자들의 공산활동까지도 독립운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결국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반일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적화야욕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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