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骨)의 노래' 詩人 다케우치 고조(竹內浩三)

흰 상자 안에서 고국(故国)을 바라본다./소리(音)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뼈(骨)./돌아는 왔지만, 고국(故国) 사람과의 서먹서먹함.
 2015. 8. 8. 마이니치(每日)신문

左から2人目が竹内浩三。21歳の時、1942年の出征前日に撮影した。左端は4歳の頃の庄司乃ぶ代さん、右端は庄司さんの母で浩三の姉、松島こうさん。抱かれているのは庄司さんの妹(本居宣長記念館所"101)
  
가운데 학생복 차림이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 21세인 1942년
  
出征前日 촬영한 사진. 오른쪽은 고조(浩三)의 누나 마쓰시마 고
  
(松島こう)씨. 왼쪽은 당시 4세이었던 마쓰시마(松島)씨의 장녀 
  
쇼지(庄司)씨. 안겨있는 것은 쇼지(庄司)씨의 여동생.


浩三の直筆で原稿用紙に書かれた「ぼくもいくさに征くのだけれど」(本居宣長記念館所"101)=宮間俊樹撮影
  
고조(浩三)가 원고용지에 직필(直筆)로 쓴 詩 '나도 전장터로
  
향하게 되었네' 일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니혼(日本)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가 입대를 기다리던 중 쓴 
詩가 바로 '나도 전장터로 향하게 되었네'다. 그리고 3년 후
필리핀에서 전사한다. 23세였다. 유골은 찾지 못했다. 직업
시인은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문예에 관심이 많아 사람들
과 동인지(同人誌) '이세문학(伊勢文学)'을 창간하는 등 100
편 이상의 작품을 썼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인 미에(三重)県
이세(伊勢)市를 중심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
을 애호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게 된 것은, 그의 누나인 마
쓰시마 고(松島こう,故人)씨의 노력이 크다. 당시 편지나 교
과서 여백에 적힌 詩나 문장을 마쓰시마(松島)씨가 보관했다.
전후에는 친구가 작품집을 내주었다. 마쓰시마(松島)씨의 장
녀 쇼지(庄司, 76세)씨는, 생전의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를
직접 아는 유일한 친족이다.

주위로부터 '성격이 소탈하고 쾌활하다'는 평을 많이 들은
고조(浩三)에 대해 쇼지(庄司)씨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당시 社會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고조(浩三)의 누나
마쓰시마(松島)씨의 의향에 따라 설립된 '다케우치 고조(竹
内浩三) 연구회'는 다양한 문예 연구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이세(伊勢)市에서 고서점을 운영하는 오쿠무라 가오루(奥
村"219, 65세)씨는 '이세(伊勢)문학을 창간한 고조(浩三)는 당
시 여러 문예 친구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연구회'는
15일, 회보를 창간한다. 한편, 나고야(名古屋)市에서는 30일
까지 기획전 '몰후(没後) 70년,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의
詩와 그 時代'展이 열리고 있는 중이다. 이세(伊勢)市의 아
카몬(赤門)寺에서는 독서회가 열리고 있다. 전직 교사, 연극
단원 등 멤버가 다양하다. 이들은 '지금도 변함없는 감성으
로 사물을 보고 시공을 초월하여 느끼고 있다'고 소감을 말
한다. 

입대 2개월 전, 詩 '뼈(骨)의 노래'에서 고조(浩三)는 자신의
운명과 전후 日本을 예감이라도 한듯 이렇게 쓴다. 

머나먼 타국에서 갑자기 죽는 것이나 잠자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는 것이나  (중략)  고국(故国)은 발전하기 바빴다 
여자(女)는 화장하기 바빴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뼈(骨)
는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나도 전장터로 향하게 되었네>,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

거리마다 전쟁 이야기가 넘치네.
어디를 가도 출정하는 이야기. 
3개월 후면 나도 전장터로 향하게 되네.
그런데도 이렇게 멍하니 있다.
내가 전장터에 가면 대체 나는 무엇을 하나.
무공을 세울 수 있나.
너나 없이 남자는 출정한다.
나도 출정하게 되었네.
출정은 해도 아무 것도 못할 것 같다. 
나비(蝶)나 잡다가 아니면 애들하고 놀다가 홀연히 戰死할 것
같다.
이렇게 멍청한 나는 어떻게든 다른 사람 만큼은 싸울 수 있어
야 할 텐데. 
나리타(成田)山에 올라 소원 빌어야겠다. 

<뼈의 노래>,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

戰死의 가련함, 병사의 죽음 그 가련함.  
머나먼 他國에서 갑자기 죽는 것이나,
잠자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는 것이나,
(中略)
흰 상자 안에서 고국(故国)을 바라본다.
소리(音)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뼈(骨).
돌아는 왔지만, 고국(故国) 사람과의 서먹서먹함.
각자의 사무(事務)가 소중하고, 여자(女)는 자신의 몸가짐이
소중하여 뼈(骨)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뼈는 뼈로서 훈장(勲章)을 얻어, 높이 칭송받고 칭찬도 많다.
그래도 뼈는 뼈일 뿐. 
뼈는 듣고 싶었다.
절대(絶大)의 애정(愛情)의 울림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없었다.
와글와글 시끌벅적 사무(事務)와 상식(常識)이 흐르고 있었다.
(中略)
고국(故国)은 발전하기 바빴다. 
여자(女)는 화장하기 바빴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뼈(骨)는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家族写真を手に浩三との思い出を語る庄司乃ぶ代さん=三重県津市で、宮間俊樹撮影
  
가족사진을 손에 들고 고조(浩三)와의 추억을 말하는 쇼지(庄司)씨.
  
= 미에(三重)県 쓰(津)市


赤門寺では2008年から毎月1回、浩三に関する書物を読み解き合う読書会を開いている=三重県伊勢市で宮間俊樹撮影
  
아카몬(赤門)寺에서는 2008년부터 매월 1회 고조(浩三)에 관한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회가 열리고 있다. = 미에(三重)県 이세(伊勢)市


今年5月にあった浩三の生誕祭で、詩をイメージし描いた水彩画の発表と詩の朗読をした伊勢市立厚生中学校美術部の部員たち。竹内浩三が中学時代に記した詩「三ツ星さん」を女子部員3人の合作で描いた作品(中央)は、丘に座った人物の胸にハートマークを記し命の大切さを表現した。同じ詩をモチーフにした男子部員2人の作品には戦闘機が描かれ、戦争を連想させるものとなっている(右端の上下)=三重県伊勢市で、宮間俊樹撮影
  
금년 5월 고조(浩三)의 생일제(生誕祭)에서, 그의 詩를 이미지化하여 그린
  
수채화 발표 및 詩 낭독회를 가진 이세(伊勢)시립 후생(厚生) 중학교 미술부들.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가 중학교 때 쓴 詩 '세 개의 별(星)'을 부원들 세 명씩
  
짝이 되어 그린 작품을 보여 주고 있다. = 미에(三重)県 이세(伊勢)市


浩三の死亡告知書(本居宣長記念館所"101)。遺骨は見つかっておらず死を証明するものはこの紙切れしかない=宮間俊樹撮影
  
고조(浩三)의 사망고지서(死亡告知書, 本居宣長記念館所"101). 유골은
  
찾지 못한 채, 사망 사실만을 증명하는 현존 유일의 증서. 


竹内浩三研究会に参加する中京大学学芸員の千枝大志さん(38)=手前から2人目=は「浩三が遺した資料はまだ見つかっていないものもあり、今のうちにさがしていかないと取り返しがつかなくなる」と話す=三重県伊勢市で宮間俊樹撮影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연구회'에 참가하고 있는 주쿄(中京)대학
   
학예회 회원들. = 미에(三重)県 이세(伊勢)市



  
詩 <나도 전장터로 향하게 되었네>, 다케우치 고조(竹内浩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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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정석 2015-08-09 오후 10:05

    역사의 수례바퀴란,참 누구도 돌릴수 없군요.

  • 파나마 2015-08-09 오전 8:38

    아쉽게 사라진- 한 인간의 추모가 은은한 인간애로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진솔한 문화가 자리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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