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해방에 대한 진실을 말했다가 김정숙사범대학 혁명역사강좌장 자리에서 쫓겨난 교수 이야기.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어 한국이 독립하였고, 이와 동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정부는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해마다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제정하였다.
북한은 8월 15일을 해방의 날이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김일성이 15년 동안 백두산에서 일제와 싸워 나라를 해방시킨 뜻 깊은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 날에는 국가적인 정치행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된다.
2013년 2월 남한에 정착한 혜산 출신 박문옥씨는 "북한에는 일곱 살 어린아이들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8월 15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100% 해방의 날이라고 답한다. 철없는 애들도 해방절에 대해 물어보면 김일성이 일제 100만 대군을 쳐부수고 나라를 독립한 날이라고 막히지 않고 대답한다. 거기에 2차 세계대전이요, 소련군이요 하는 내용은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오직 책이나 역사교과서에 대충 한 단락 정도 남아있을 정도다. 대학교재에도 김일성의 항일투쟁 15년 역사만 집중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 그 외는 소수적으로 게재되어 있는 상태다"고 증언했다.
"당시 아버지가 김정숙사범대학 혁명역사강좌장을 하셨다. 2005년 가을 대학생들과 함께 농촌동원을 가셨다가 돌아온 후 갑자기 퇴임당하셨다. 모교에 돌아온 뒤 대학 당 비서가 불러서 갔더니 뜻밖에도 당의 혁명역사를 왜곡하여 학생들에게 주입했다고 엄하게 추궁했다. 영문을 몰라 반문하는 아버지를 향해 당 비서는 당시 학생들과 나누었던 대화내용을 기록한 서류를 보여주면서 신성한 대학교단에 서있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동원기간 학생들에게 어떤 발언을 했으며, 노동당 출당이라는 정치적 박탈과 함께 반생을 후대교육을 위해 애쓰던 교단을 내려와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계속되는 박씨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박씨는 “동원기간이 해방절 가까운 시기라 해방에 대한 문제로 학생들이 물어보면 아버지는 답하는 과정에 생긴 일이다. 아버지가 학생들에게 북한의 해방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말로 일본이 망했으며 김일성 부대는 소련군대에 속한 부대였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원자탄이 일본을 항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 것이 죄로 인정된 것이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김일성부대의 전투나 일화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대로 학생들에게 여담삼아 이야기했는데 생각지 못한 화를 당했다. 아버지는 교단에서 퇴임하신 후 마음고생이 많으셨다. 당시 금수산기념궁전 호위병으로 친위대에서 복무하던 둘째 동생이 아버지의 출당과 함께 인민군8총국산하 도로국에 소환되었다. 8·15해방과 관련한 진실을 말한 죄가 본인뿐 아니라 온 가족의 앞날에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탈북민 북청 출신 김병길씨는 2012년 남한에 정착했다. 그는 "해방절 행사를 끝마치고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셨다. 명색이 명절이라 모두들 거나하게 마시고 해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훗날 당위원회에 불려가 거의 한 달 동안 비판서도 쓰고 후방기지에 가서 혁명화도 했다. 이유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우리나라(북한) 해방은 소련군의 도움이 많다. 일본군이 100만인데 항일유격대는 거기에 비하면 작은 소부대나 같다고 말한 것이 화근으로 불거졌다"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놀라운 것은 당 비서의 소련군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소련군이 미국과 결탁하여 자신들이 이익을 위해 38선에 멈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련군이 우리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데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 그런 군대를 사람들 앞에서 해방군이라 선전하는 것은 극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김일성의 혁명투쟁이 없었다면 지금도 제국주의 식민지로 남아있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북한에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불행하다고 봐야 정답이다. 진실을 말했다가 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무서운 나라이다. 오히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로 수긍하는 척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이 오늘의 북한실정에 어울리는 말이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어 한국이 독립하였고, 이와 동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정부는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해마다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제정하였다.
북한은 8월 15일을 해방의 날이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김일성이 15년 동안 백두산에서 일제와 싸워 나라를 해방시킨 뜻 깊은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 날에는 국가적인 정치행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된다.
2013년 2월 남한에 정착한 혜산 출신 박문옥씨는 "북한에는 일곱 살 어린아이들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8월 15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100% 해방의 날이라고 답한다. 철없는 애들도 해방절에 대해 물어보면 김일성이 일제 100만 대군을 쳐부수고 나라를 독립한 날이라고 막히지 않고 대답한다. 거기에 2차 세계대전이요, 소련군이요 하는 내용은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오직 책이나 역사교과서에 대충 한 단락 정도 남아있을 정도다. 대학교재에도 김일성의 항일투쟁 15년 역사만 집중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 그 외는 소수적으로 게재되어 있는 상태다"고 증언했다.
"당시 아버지가 김정숙사범대학 혁명역사강좌장을 하셨다. 2005년 가을 대학생들과 함께 농촌동원을 가셨다가 돌아온 후 갑자기 퇴임당하셨다. 모교에 돌아온 뒤 대학 당 비서가 불러서 갔더니 뜻밖에도 당의 혁명역사를 왜곡하여 학생들에게 주입했다고 엄하게 추궁했다. 영문을 몰라 반문하는 아버지를 향해 당 비서는 당시 학생들과 나누었던 대화내용을 기록한 서류를 보여주면서 신성한 대학교단에 서있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동원기간 학생들에게 어떤 발언을 했으며, 노동당 출당이라는 정치적 박탈과 함께 반생을 후대교육을 위해 애쓰던 교단을 내려와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계속되는 박씨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박씨는 “동원기간이 해방절 가까운 시기라 해방에 대한 문제로 학생들이 물어보면 아버지는 답하는 과정에 생긴 일이다. 아버지가 학생들에게 북한의 해방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말로 일본이 망했으며 김일성 부대는 소련군대에 속한 부대였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원자탄이 일본을 항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 것이 죄로 인정된 것이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김일성부대의 전투나 일화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대로 학생들에게 여담삼아 이야기했는데 생각지 못한 화를 당했다. 아버지는 교단에서 퇴임하신 후 마음고생이 많으셨다. 당시 금수산기념궁전 호위병으로 친위대에서 복무하던 둘째 동생이 아버지의 출당과 함께 인민군8총국산하 도로국에 소환되었다. 8·15해방과 관련한 진실을 말한 죄가 본인뿐 아니라 온 가족의 앞날에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탈북민 북청 출신 김병길씨는 2012년 남한에 정착했다. 그는 "해방절 행사를 끝마치고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셨다. 명색이 명절이라 모두들 거나하게 마시고 해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훗날 당위원회에 불려가 거의 한 달 동안 비판서도 쓰고 후방기지에 가서 혁명화도 했다. 이유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우리나라(북한) 해방은 소련군의 도움이 많다. 일본군이 100만인데 항일유격대는 거기에 비하면 작은 소부대나 같다고 말한 것이 화근으로 불거졌다"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놀라운 것은 당 비서의 소련군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소련군이 미국과 결탁하여 자신들이 이익을 위해 38선에 멈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련군이 우리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데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 그런 군대를 사람들 앞에서 해방군이라 선전하는 것은 극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김일성의 혁명투쟁이 없었다면 지금도 제국주의 식민지로 남아있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북한에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불행하다고 봐야 정답이다. 진실을 말했다가 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무서운 나라이다. 오히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로 수긍하는 척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이 오늘의 북한실정에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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