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마루(対馬丸) 71주년 추도

태평양전쟁(太平洋戦争) 중에 학동소개선(学童疎開船) 쓰시마마루(対馬丸)가 美軍 잠수함에 의해 격침되어 多數의 학동(学童)들이 사망한 사건.

태평양전쟁(太平洋戦争) 중에 학동소개선(学童疎開船)
쓰시마마루(対馬丸)가 美軍 잠수함에 의해 격침되어 多
數의 학동(学童)들이 사망한 사건으로부터 22일로 71년
을 맞아, 나하(那覇)市의 비(碑) '작은 벚꽃 탑'(小桜の塔)
앞에서 추도회가 열렸다. 생존자와 유족 등 수백명이 참
석하여 희생자를 추도했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나비의 일종인 오고마다라(オオゴマ
ダラ)를 날렸다.

네 살 때 쓰시마마루(対馬丸)에 탔다가 구조된 '쓰시마마루
기념회'(対馬丸記念会) 다카라 마사카쓰(高良政勝, 75세)
이사장은 '쓰시마마루(対馬丸)와 같은 비극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위정자들은 다짐을 해야 한다. 세계 평
화의 실현을 지향했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추도회에 앞서 나하(那覇)市의 쓰시마마루 기념관측은,
22일 현재 파악된 당시 희생자 수는 1484명이라고 발표
했
다. 사망자 명단 중 중복자가 1명 밝혀져 이전보다 1
명 줄
었다.

쓰시마마루(対馬丸)는 1944년 8월21일 밤, 국민학교 학
동
(学童)과 교원, 일반인 등 소개자(疎開者) 1788명을 태
우고 나하(那覇)를 출항했다. 그리고, 나가사키(長崎)로
향하는 도중 익일(翌日)인 22일 오후 10시 12분경, 가고
시
마(鹿児島)県・아쿠세키섬(悪石島) 북서쪽 약 10 킬로
미터
해상에서 美軍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받아, 오후 10
시 23분
경 침몰했다. 1484명이 희생되었고 그 중 780명
이 학동(学
童)이었다.


 学童疎開船「対馬丸」の慰霊祭で、平和の象徴とされるチョウを放つ子どもたち =22日午前、那覇市
  
학동소개선(学童疎開船) 쓰시마마루(対馬丸) 희생자 추도식에서, 평화의 상징인 
  
오고마다라(オオゴマダラ) 나비를 날리는 어린이들. = 22일 오전, 나하(那覇)市


学童疎開船「対馬丸」の慰霊祭で、犠牲者の名前が刻まれた碑を水で清める「対馬丸記念会」の高良政勝理事長(左)ら=22日午前、那覇市 
   학동소개선(学童疎開船) 쓰시마마루(対馬丸)의 추도식에서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비(碑)를 물(水)로 깨끗이 씻어내는  '쓰시마마루 기념회'의 다카라
   마사카쓰(高良政勝) 이사장(左). = 22일 오전, 나하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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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stkorea 2015-08-23 오전 11:10


    이런 일본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일본인들의 본질과 본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들 역시 결코 대인이 될 종족들은 아니라는 것. 진정 강한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 강한 자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역사의 아픔과 고통을
    그것도 자업자득으로 발생한 것을 피해자라며, 자신들은 한없이 평화를 사랑하는
    약사였는데 강자들이 무자비하게 학동들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것을 세상에 노출
    시키는 행위는 그야말로 자존심이란 티끌만치도 없는 소인배의 노예근성에 다름
    아니다 하겠다.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것은 산자의 도리이다. 그러나 그 행위는
    세상에 보여주며 동정심을 얻는 수단으로 여겨선 안된다. 가장 비열한 짓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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