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 근교를 차로 달리는데 이런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
'노거수를 보호하자'
'노거수'가 무슨 뜻인가? 사람인가, 老弱者인가? 국민 다수가 '노거수'를 모른다. 그렇다면 이 구호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의미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구호는 말이 아니라 소리이다.
'노거수를 보호하자'는 문장이 말이 되려면 노거수를 漢字로 써야 한다. 老巨樹라고. 나이 많고 큰 나무를 보호하자는 뜻이다.
서울 테헤란路의 어느 음식정 간판이 '신서정'이었다. 무슨 뜻인가? 아무도 모른다. 그 음식점으로 전화해서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자신도 뜻을 모른다고 했다. '신서정'이란 한글語는 없으니 漢字造語로 짐작이 되는데 한글로 써놓으니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의미가 통하지 않는 이름은 말이 아니라 소리이다.
요사이 신문에 '경전철'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런 기사 어디에도 '경전철'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40대 독자에게 물어보았다.
'경기도 전철의 준 말이 아닐까요'
'輕電鐵'이라고 써야 그 기사는 의미가 통한다. 핵심 단어를 암호로 만들어놓고 독자들에게 어떤 정보를 전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무식한 金泳三 정권이 國民學校가 日本人이 지은 이름이라고 초등학교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일본인이 지은 '文民'이란 이름을 도둑질해가서 '文民 정부'라고 자칭했다. 민간인을 배제한 軍人 정부도 나쁘지만 군인을 배제한 '文民 정부'란 성립이 되지 않는 말이다. 군대가 없는 정부가 있나?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은 朝鮮만 빼면 전부 日製이다. 民主主義, 人民, 共和國은 모두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받아들인 서양의 문물을 漢字化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毛澤東의 中華人民共和國도 中華만 빼면 日製語이다. 일본인들이 만든 현대 漢字語를 빼면 한국인도 중국인도 생활을 할 수가 없다.
基準, 基地, 石油, 現金, 支配, 國際, 代表, 傳統, 侵略, 論文, 電波, 出版, 業務, 警察, 保健, 建築, 作用, 意識, 現實, 進化, 理想, 單行本, 圖書館, 農作物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漢字語를 일본이 만들고 한국과 중국이 빌려가 쓰고 있다. 한자의 宗主國인 중국도 일본이 만든 이런 단어를 쓰지 않고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漢字는 중국의 글자가 아니라 東北亞의 共通언어인 것이다. 라틴語가 유럽문명의 공통언어인 것처럼.
따라서 漢字語를 외래어나 외국어라고 매도하면서 한자를 배제하고 순한글로써만 언어생활을 하자고 주장하는 자들은 言語파괴자, 문명파괴자이다. 문명의 가장 큰 요소는 言語이다. 漢字語가 70%나 되는 한국인의 언어구조하에서 漢字語를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말을 소리, 또는 암호로 전락시켜온 자들은 문명을 야만으로 후퇴시킨 셈이다.
실제로 한국인의 언어생활은 다분히 말을 버리고 소리화되어 가고 있다. 소리를 통해서는 思考나 論理 대신에 감정, 느낌, 기분이 전달된다.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언어의 소리化로 가버리니 감정적, 원초적 未開상태로 떨어지는 것이다.
漢字語는 사람을 생각으로 유도하는 실마리이다. 民主主義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이념이란 뜻이다. 資本主義는 돈을 중심으로 하여 돌아가는 사회의 이념이다. 동두천의 韓北대학은 남한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대학이란 의미이다.
아성, 우미가, 정도, 임협, 삼협, 한북, 내산정-이런 단어들을 읽어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생활을 하다가 보면 생각은 멍해지고 그러다가 보니 사기꾼들의 말초적 선동에 넘어가는 것이다.
한국의 좌경화와 저질화, 그 가장 큰 원흉은 한글專用, 漢字배제이다. 漢字혼용 없이는 조국 선진화는 불가능하다. 대학입시의 국어문제에 국어의 일부인 漢字를 출제하고 신문에서 漢字-한글 混用을 강력하게 밀고나갈 때 의외로 빨리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노거수를 보호하자'라니?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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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5-26, 0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