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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핵무기 소형화 및 성능 확인을 위해 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의 윌리엄 페리(사진) 前 국방장관이 언급했다.
일본의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최근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현인그룹 회의’에 참석한 페리 前 국방장관이 25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북한은 핵폭탄을 중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한다는 목적이 있어 과학자들이 핵폭탄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핵실험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페리 전 장관은 그러나 “북한 지도부에서 핵실험 단행 여부에 대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이해 동창리 발사장에서 장거리로켓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풍계리 실험장에서는 페리 前 장관의 발언대로 4차 핵실험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2월~9월 기간 동안 111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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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계로 알려진 미국의 윌리엄 페리(1853년 일본 개항의 주역인 페리 제독의 후손) 前 국방장관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의 기준이 됐던 ‘페리 보고서’(Perry Process)의 작성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94년 1월 국방장관 취임과 함께 북한 핵 의혹 위기를 부추기며 美·日 신(新) 가이드라인 성립을 위한 군사적 긴장을 조장했고, 1997년 1월 장관 퇴임 후 1999년까지 북한 핵 의혹 문제를 둘러싼 정책조정관으로서 한·중·일·북(韓中日北)을 정력적으로 오갔다.
 
그는 가이드라인 성립 뒤에 “북한은 혐의가 없었다”며 무책임한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히로세 다카시著, 《アメリカの経済支配者たち》, 1999년) 또 군수 기업인 ‘GTE 실베니아’ 임원을 맡은 뒤 스스로 ESL이라는 군수 기업을 창업해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와 함께 그는 1967년부터 국방부 기술 자문을 10년간 수행해 1977년부터 親北 성향의 카터 정권에서 국방 차관이 됐다. 카터가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에도 페리가 북한 문제와 관련된 외교 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재벌이 배후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페리 자신은 레이더 파를 흡수하는 스텔스 전폭기를 만든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 국제안전보장군비관리센터(CISAC)의 소장을 맡아, 표면상의 직함은 고리타분한 수학자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투자 은행인 함브레히트 & 퀴스트(Hambrecht & Quist)의 경영자로서, 또 군수 기업인 ‘기술전략연합사’(Technical Strategies & Alliances)회장으로서 거대한 사재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페리 前 장관은 노무현 정권시절 左派정권 ‘대북 퍼주기’의 실체인 개성공단을 방문해 “개성공단 사업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한반도의 미래를 보여주는 사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또 부천공업(주), 신원(주) 등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둘러본 뒤, 북한 관계자들에게 “당신들은 미래의 개척자”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