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칼럼] 나라를 정돈할 때다
*조선일보 논설주간
권력 신파극 속의 대통령 선생님과 동지
국가적 과제는 줄을 서 기다리는데
어수선합니다. 대통령의 선생님·대통령의 동지가 등장한 ‘유전(油田)게이트’가 검찰 손에 의해 정리되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대통령 참모들이 대거 출연한 ‘S 프로젝트’인가 뭔가 하는 문제로 다시 소란스럽습니다. 깊은 내막이야 모르겠으나, 두 사건 모두 대단한 곡절이 있을 듯싶지는 않습니다.
등장 인물이나 극(劇)의 전개가 옛 악극단(樂劇團) 수준 같아서입니다. 무대 중앙엔 힘깨나 쓴다는 실력자가 서 있습니다. 사단(事端)은 이 실력자의 ‘실력’이 묘하다는 데 있습니다. 법이 부여한 권한에 바탕한 실력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실력자들의 힘은 친분(親分)에 있습니다. ‘대통령과 가깝다’ ‘대통령이 믿는 사람이다’ ‘대통령과 자주 만난다’는 소문이 실력의 근거라는 겁니다. 여기에 모 방송사 사장 인선에 결정적 입김을 불어넣었다든가, 지난번 장군 인사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미쳤다든가 하는 확인 불능의 이야기가 따라붙습니다.
이렇게 되면, 꼼짝 못합니다. 문제의 실력자가 건(件)마다, 단계마다 전화를 넣지 않아도 일은 저절로 굴러갑니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게 이 나라 실정입니다. 유전게이트를 둘러싸고 철도청과 감사원에서 빚어졌던 신기한 일의 연속도 이걸로 설명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알았다, 알았어…’ 하며 스위치를 꺼버려서는 드라마의 진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사실 무대 중앙의 힘깨나 쓴다는 실력자는 허깨비일 따름입니다. 드라마의 연출자는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실력자에겐 드라마를 엮어갈 아이디어나 소재가 빈곤합니다. 정당 뒷골목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혁명을 이야기하거나 권력의 햇살이 들 날만 기다려온 게 세상살이의 전부였던 그들로서는 이 험한 세상의 작동(作動) 원리를 알 턱이 없습니다.
드라마가 굴러가려면 산전수전을 헤쳐온 정체불명의 사업가나 수상한 아이디어 맨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들은 진작부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정권의 실력자와 선생님을 지켜봐 왔습니다. 약점과 허점(虛點)도 훤히 꿰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위해, 정권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영달(榮達)을 위해 뭔가 한 건 크게 올리고 말겠다는 공명심(功名心)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부류(部類) 인간의 접촉은 첫 대면(對面), 아니 첫 대결에서 승패가 판가름나고 말게 돼 있습니다. 귀에 솔깃한 아이디어 하나에 실력자와 선생님은 무너지고 맙니다. 구멍가게라도 책임지고 꾸려본 적이 있었던들 그렇게 허무하게 주저앉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할린 유전개발은 석유개발공사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아이디어이고, 행담도 개발은 시중 은행이 보증을 거부했던 사업이라고 합니다.
야박한 이야기지만 정체불명의 사업가와 수상한 아이디어 맨은 밑밥도 뿌렸을 것입니다. 그게 그들의 상식일 테니까요. 실력자 주변 사람 가운데 이 위험천만한 사업에 끼어드는 걸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게 그런 느낌을 들게 합니다. 이쯤 와선 실력자와 선생님도 자신이 이 드라마의 연출자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을 겁니다. 3류 감독에게 눈도장 찍힌 허영심에 들뜬 스타 지망생에 지나지 않았던 셈입니다. 이제 와서 ‘사기극이다, 나도 속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가짐과 행동거지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나라를 정돈해야 할 때입니다. 이참에 대통령과의 연(緣)으로 실력자 행세를 하는 사람이나 무슨무슨 위원회 주변에 이런 허황된 일이 또 없나를 둘러볼 일입니다. 지금이 악극단의 신파극(新派劇)으로 소일할 만큼 태평성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마음을 다잡고 밀쳐놨던 국가적 숙제와 마주해야 합니다. 북핵은 어쩔 셈입니까. 6·15 축전에 참가한다며 너나없이 북으로 넘어가면 풀릴 일입니까. 동맹의 문제는 그냥 두고보는 것입니까. 한국을 믿지 못해 정보도 함께 나눌 수 없다는데도 말입니다. 정권 출범 때보다 늘어난 500만명의 빈곤층은 또 어찌해야 합니까. 성장률 2%대의 경제 앞에서 ‘경제는 완전 정상화됐다’는 말씀을 앵무새처럼 계속 복창(復唱)하라는 겁니까.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볼 생각입니까. 이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나라를 정돈해야 합니다.
나라를 정돈할 때이다
- 강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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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5-27, 2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