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UN 사무총장으로서 자각(自覺) 있나"

日 <산케이신문> 쿠보다 루리코 前 서울 특파원 칼럼 통해 반기문 UN 사무총장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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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케이신문> 서울 특파원 출신의 구보타 루리코(久保田るり子) 기자는 10일 인터넷 <산케이>에 기고한 '반기문 씨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자각이 있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중국 공산당 열병식에 참가한 반 총장에 대해 “193개국 UN수장으로서 식견이 의심될 정도”라고 비판했다.

쿠보다 기자는 반 총장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행사는 참석하면서 금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평화기념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아베 신조 수상의 담화에 대해서도 ‘일본정부의 겸허한 반성에 따른 진정한 화해가 필요하다’는 말로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 씨의 일본에 대한 태도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입장보다는 한국의 주장을 반영하는 입장으로 보인다”며 “중국이 얽혀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반 씨는 한국 입장에 따른다. 홍콩에서 발생하는 민주 시위에 대해서도 '내정문제'라는 식으로 그냥 넘어간다”고 말했다. 

쿠보다 기자는 “현재 반기문 씨는 대선 출마를 부정하고 있지만 임기가 종료되고 귀국하는 시점은 한국이 대선이라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는 시기에 해당된다”며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반 씨는 유엔 사무총장 취임 이래로, 지금까지 몇 번이고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 금년에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다“면서 5월 하순 북한-개성공단을 시찰하겠다는 명목으로 북한 방문을 계획했었는데, 성사 직전에 북한으로부터 방북허가가 갑자기 취소는 일이 있었다. 반 씨는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방북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차기 대통령으로 방북하고 싶은 것인가? 어느 쪽이든 그 '야망'은 통일 문제와 관련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관련 글] 韓美日 3國 중 가장 먼저 中共과 수교를 맺은 日本
中國 공산당과의 수교를 통해 미국의 세계전략에 타격을 가했던 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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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9월27일 모택동과 주은래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다나카 가쿠에이 前 일본 수상


중공(中共)은 중소(中蘇)분쟁 과정에서 소련과 결별 후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이어 일본이 동경올림픽에 한 창 열을 올리던 1964년 10월16일 최초로 핵실험을 했다.
  
1967년 6월17일 中共은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 뒤, 1970년 4월24일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를 성공시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기술을 획득했다.
  
1971년 닉슨과 헨리 키신저는 中共을 방문해 美中 ‘핑퐁외교’가 시작됐다. 같은 해 10월 中共은 UN에 가입하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됐다. 이후 UN에서 대만(자유중국)이 축출됐다. 일본은 美中 사이의 관계정상화가 논의되자 미국에 앞서 1972년 中共과 수교를 맺었다. 
 
<日中공동성명>은 전문과 9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은 ‘中日 국교의 정상화라는 양국 국민의 요구의 실현은 양국관계의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중국은 성명에서 ‘대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라는 것’을 주장했다. 이외에 대사의 교환, 전쟁배상의 포기, 평화 5원칙과 국제연합헌장의 원칙, 평화우호조약과 제 실무협정의 체결협상 등이 日中 간에 합의됐다.

대만은 <日中공동성명>이 발표된 날 심야에 일본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미국은 中共과 1979년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이 모든 것이 핵과 ICBM 개발에 성공한 이후 이뤄진 변화였다. 북핵 6자회담과 美北직접협상을 통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으려는 북한이 가는 길이 과거 中共이 핵무기와 ICBM을 개발한 뒤 국제사회에 등장했던 바로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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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미국을 배신하고 미국에 앞서 중국 공산당과 손잡은 일본에서는 1976년 2월 미국 상원 ‘처치 위원회’에서 록히드社의 공작자금이 일본 고관에게 전달됐다는 증언이 발단이 되어 당시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총리가 정치생명을 걸고 강력 수사를 하게 된다. 이로 인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가 체포(1976년 7월)되고 1987년 실형이 확정됐다.

당시 美日 양국에서는 다나카의 이러한 정치적 몰락이 중국 공산당과의 수교를 통해 미국의 세계전략에 타격을 가한데 대한 일종의 응징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親中 외교를 보면 과거 일본이 했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듯 하다. 歷史는 늘 반복된다. 그리고 변곡점(變曲點)에 이르러서는 모든 惡材가 맞물려 돌아간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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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쥬드 2015-09-11 오후 12:08

    그나마, 한반도 영토를 탐하지 않은 우방은 오직 한 곳..
    미국뿐 이다.
    한반도 주변을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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