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코 親家 가족모임에 참석하다

조인정의 일본 유학기(3)일본 설 음식의 주인공인 오세치 요리(おせち料理)를 맛보고 書藝와 茶道까지 배우며 하루를 보냈다.

조인정(일본 와세다대학 국제관계학부 2학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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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皇 가족의 새해인사

아침부터 텔레비전에서는 일본 아키히토(明仁) 천황과 미치코(美智子皇后) 황후를 비롯한 황실의 가족들이 새해를 맞아 황궁의 유리로 된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 손을 흔들고, 마이크를 들고 시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는 모습이 화면에 주요 뉴스로 방송되었다. 황실 가족과 시민들이 對面(대면)을 하는 이러한 자리는 이날 오전 10시10분을 시작으로, 오후 2시 20분의 마지막까지 총 다섯 번에 걸쳐 시행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하루 황실의 신년 인사회를 보기 위해 약 8만 명의 사람들이 도쿄의 皇宮(황궁)에 모였다고 한다.

천황은 이날 “새해를 시작하며 세계 모든 이들과 국가의 행복과 평온을 빕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더불어 2015년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막을 내린 지 70주년을 맞이하는 중요한 해이기에, 천황은 전날 이미 “전쟁의 역사를 제대로 배워 향후 일본의 방식을 고려하는 것이 지금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힌 것도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오늘은 새해를 맞아 마유코의 친할아버지 댁에서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마유코의 친할아버지 댁은 마유코의 집에서부터 걸어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그리 멀지는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바람은 쌀쌀하게 불어와 몸은 오슬오슬 떨렸지만 하늘은 파랗게 화창한 날이었다. 할아버지 댁에 걸어가는 길목에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울창하게 감싸고 있는 나무며, 여러 가지 모양의 예쁜 화단 주변을 돌고 있었다. 주택단지 안에 위치한 조용하고 아늑해 보이는 그 작은 공원을 걷는데, 그 풍경이 무언가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어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마유코의 친가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사실 이곳에 오기 전 아침부터 마유코와 마유코의 엄마는 내게 몇 번이고 미안함을 전했다.

“정말 미안해. 오늘 친할아버지가 인정이 네게 많은 질문을 하실지도 몰라. 그 질문에 모두 답하는 건 분명 힘들 거야. 하지만 그건 할아버지가 손녀 마유코의 친구인 네가 집을 찾은 것에 반가워서 그러시는 거니까 이해해 주었으면 해.”


마유코 親知들과 일일이 인사 나눠

“오자마시마스(お邪魔します: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나왔다. 낑낑대며 신발을 벗는데, 수수하면서도 고운 마유코의 친할머니가 화사한 미소로 기쁘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1층 거실에는 많은 친지들이 모여 있었는데,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우리를 향해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아케마시테 오메데토-고자이마스(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코토시모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今年も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들어서자마자 서로 절을 하고 새해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마유코는 나와 첫 만남인 친지들에게 일일이 나를 인사시키고 내 소개를 해주느라 정신 없었다. 나도 일일이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소개받고, 마유코와 어떤 관계인지 설명을 들었다.

“하지메마시테(初めまして: 처음 뵙겠습니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잘 부탁 드립니다).”

떨리는 첫 만남에 나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타 들어갔다. 마유코의 친지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고 소개를 들었건만, 긴장감에 도사려 있던 그 상황에서는 누구의 이름도 다시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매치 시키고, 관계까지 기억하는 것은 내 머릿속 한정되어 있는 메모리로는 부족했다. 여하튼 모두에게 첫 대면의 인사를 건네는 것은 성공리에 끝마쳤다.


알록달록 화려한 새해 음식, 오세치 요리

곧 저녁 만찬 시간이었다. 식탁 위에 놓여진 음식은 그 가짓수뿐만 아니라, 정갈하게 장식까지 되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그 멋진 음식들의 향연을 본 순간 정말 입이 떡 벌어졌고, 저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일본 최대의 수산물 도매 시장인 츠키지 어시장(築地市場)에서 사온 싱싱한 참치회를 비롯해, 친할머니만의 비밀 레시피로 만든 스프링롤 튀김 등 할머니의 훌륭한 요리솜씨로 태어난 요리들이 내 시선을 완전히 압도함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맛도 역시 보는 것만큼이나, 아니 보는 것보다 몇 배 더 맛있었다. 싱싱함, 고소함, 담백함, 부드러움, 달콤짭짜름함 등 차마 세상에 존재하는 맛에 관련된 형용사 중 이 맛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먹는 순간 내 엄지 손가락이 저절로 치켜세워지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진수성찬으로 한 상 부러지도록 차려진 음식들 중,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내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으며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최고의 예술을 한 그릇 가득 펼쳐낸 것이 있었으니, 일본 설 음식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세치 요리(おせち料理)가 그 것이었다. 찬합에 일본 특유의 정갈함으로 가지런하게 담겨 있는 열 몇 가지의 요리는 그 맛 또한 일품이었다.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놀라고, 먹어보면서 더 놀라게 되는 오세치 요리는 정말 감동이었다. 더욱이, 오세치 요리는 일본인들이 바라는 무병장수, 자손번영, 풍작기원의 여러 가지 소원들을 의미한다고 마유코가 설명해 주었다.

일본 전통에 따르면 새해에는 어떤 음식도 조리하지 않는데, 이 때문에 오세치 요리는 새해 전날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1월 1일부터 3일간 먹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오세치 요리에 쓰이는 대부분의 재료는 건조품이며, 조리 시 다량의 설탕 또는 식초가 함유되어 새해를 지내는 며칠 간 상하지 않게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색이다. (사진1)

오세치 요리는 한 가지의 요리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찬합에 담긴 여러 가지 소원을 의미하는 다양한 음식들을 통칭한 것이다. 그 중, 쿠로마메(검은콩:くろまめ)는 달콤짭조름하게 설탕과 간장으로 양념되어 간이 깃들어 있었는데, 식사 메뉴라고 하기에는 좀 달짝지근한게 전통적인 간식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달콤한 팥죽의 팥알을 먹을 때처럼 검은 콩을 젓가락으로 끊임없이 한 알 한 알 집어 먹고 또 먹었다. 사실 일본어로 ‘콩’을 뜻하는 마메(豆:まめ)는 그 발음이 ‘부지런함, 몸이 건강함’을 뜻하는 마메(忠実: まめ)와 같아서, 새해의 건강함과 성실함을 소원하는 마음에서 새해의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달콤한 멸치 볶음인 타즈쿠리(たづくり:田作り) 또한 굉장히 맛있어서 많이 먹었는데, 그 맛은 한국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멸치 볶음보다 약간 더 달콤했다. 타즈쿠리를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타(田, た:밭)와 ‘즈쿠리(作り, つくり:만듦)’를 합한 말로, 옛날에 ‘멸치류를 비료로 썼을 때 5만 섬 이상의 쌀을 수확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근원이 되어 말린 멸치의 새끼를 일컫는 ‘고마메(田作, ごまめ)’가 ‘오만미’를 뜻하는 같은 음 다른 한자인 ‘고마메(五万米)’로 쓰이면서 「새해의 풍족한 수확」을 소망하는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진 생선과 달걀을 섞은 다테마키

롤 케이크처럼 돌돌 말려진 계란 음식인 다테마키(だてまき)는 다진 생선과 달걀을 섞어 두껍게 말아 부친 음식인데, 마유코와 내 또래의 마유코 친척들은 “우리는 별로 이 맛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한 번 먹어봐”라며 내게 권유했다. 무슨 맛이길래 그러는 것일까? 음…처음은 스폰지 케이크처럼 폭신폭신한 식감에 달달했지만, 뭐랄까 뒷맛은 생선이 슬며시 차고 올라오는데 굉장히 독특했다.

다테마키는 그 모양이 돌돌 둥글게 만 종이인 두루마리를 닮았다고 하여, 학문의 정진과 문화발전을 기원하는 새해 음식이다. 다테마키와 더불어, 예전에 엄마가 사주셨던 다시마 사탕을 즐겨 먹었던 나로서 굉장히 잊을 수 없었던 다시마말이 ‘콘부마키(昆布巻き, こんぶまき)’ 또한 한국에서는 감히 찾아볼 수 없었던 색다른 맛이었다. 다시마가 청어를 돌돌 휘감고 있는 독특한 형태이기도 했다. 새해에 콘부마키를 먹는 것 또한 일본어의 비슷한 발음에서 시작되었는데, 다시마의 ‘콘부(昆布, 昆布)’가 ‘기뻐하다’를 뜻하는 ‘요로코부(喜ぶ, よろこぶ)’에서 ‘코부’와 그 음이 비슷해서 기쁘고 즐거운 일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먹는 새해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붉은색과 흰색의 반달모양 어묵 ‘카마보코(蒲鉾, かまぼこ)’는 인스턴트 컵라면에 자주 등장하는 재료로 내게 익숙했다. 하지만, 이날의 카마보코는 라면 건더기스프 안에 작게 썰려 말라 있는 형태가 아니라, 두툼하게 썰려 그 탱글탱글함을 보이는 일본 오리지널 어묵이다 보니 나로서도 감회가 남달랐다. 하지만 그 맛은 사실 일반 어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물론 의미심장한 뜻을 갖고 있었다. 카마보코는 그 모양이 떠오르는 해와 닮았다 하여 ‘새해’의 의미로 먹는데, 이 때 분홍색의 카마보코는 ‘나쁜 기운과 악령을 쫓는 부적’의 의미로, 흰색 타마보코는 ‘순백의 깨끗함’을 반영한다고 한다.

이날은 먹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오세치 요리가 있는데, 긴 수염과 허리가 굽은 모양 때문에 바다의 노인이라고 불리는 새우 ‘이세에비(伊勢蝦, いせえび)’ 등도 전형적인 요리 중 하나이다. 이토록 오세치요리는 시각과 미각을 넘어 재료 하나하나에 깃들어진 나름의 특별한 의미가 존재했고, 요리 그 자체가 일본의 문화를 듬뿍 담아 보여주는 듯했다. 나 또한 이러한 의미를 마유코와 친척들로부터 듣고 깨달으며 일본 사회와 일본인들의 생각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2)


書藝에 도전하다

“인정아, 書道(서도) 한 번 해볼래?”

우리가 알고 있는 서예(書藝)를, 일본에서는 書道(しょどう), 중국에서는 서법(書法)이라고 칭한다. 해방 이후 일제시대로부터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되찾는 조치로 진도 출신의 서예 대가 소전 손재형(素荃 孫在馨) 선생께서 서예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셨다고 한다.

배가 복어처럼 빵빵하게 불러올 때까지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은 내게 마유코 엄마가 말씀했다. 서예?

“내 친척동생 학교 숙제가 서예를 해 가는 건데 너도 한 번 해봐!”

옆에서 마유코가 내게 말했다.

그날의 서예 선생님은 마유코 엄마였다. 실제로 마유코 엄마는 오래도록 취미로서 서예를 배우고 연마하고 계셨는데, 듣자 하니 그 실력은 대단한 듯싶었다. 이미 마유코의 가족들 사이에서 그녀는 훌륭한 서예 선생님으로 통하고 있었다. 마유코의 친척 동생은 학교숙제로 어떤 좋은 문구(文句어려운 한자로 쓰여 있어서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를 기다란 화선지에 위에서 아래로 적고 있었는데, 무릎을 꿇은 바른 자세로 앉아, 한 번 틀리면 수정이 불가능한 먹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였다.

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수업시간에 한두 번 내 이름을 써보았던 것이 서예로 말할 것 같으면 전부였던 나였기에, 나는 한자(漢字)를 쓸 때 어떻게 한 획을 쓰는지 그 방법도 전혀 몰랐다. 그러나 마유코 엄마의 조언에 따라 나는 일단 검은 옷으로 갈아 입었고, 신문지 위에 연습 삼아 漢字를 쓸 때 필요한 기본 획부터 차근차근 배워갔다. 무릎을 꿇은 다리는 점점 저려와 감각을 잃는 듯 했고, 연습을 하는 것이었지만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손은 긴장이 되어 덜덜 떨려 글씨체는 진동을 했다. (사진3)

“아라시(嵐)는 어떨까요?”

“어떤 글을 쓰고 싶니?”

내 앞에 기다란 화선지를 준비해주시며 마유코 엄마가 내게 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멋있는 한자 문구를 미리 생각해 왔을 것을! 내 이름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할 찰나, 설 연휴 매일같이 방송 프로그램에 MC로, 특별 게스트로 등장하는 일본 인기 아이돌 그룹 ‘아라시(嵐)’가 퍼뜩 생각났다. 내가 아라시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은 그들이 텔레비전에 등장할 때마다 환호하는 내 모습을 본 마유코와 마유코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두 사람도 아라시의 콘서트 DVD를 소장할 만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아라시(嵐)’를 서예로 써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라시(嵐)’는 어떨까요?”

장난스런 웃음을 머금고 내던진 나의 말에, 마유코 엄마는 웃으면서 화답했다.

결국 나는 아라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멤버이며, 나의 일본어 선생님이기도 한 ‘사쿠라이 쇼’의 이름 쓰기에 도전해보기로 결정했다(물론 나는 팬으로서 그가 단순히 좋아서 그가 등장하는 쇼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보는 것도 있었지만, 일석이조로 이들을 시청하면서 일본어를 익혔다). 이름을 쓰기부터 왠지 긴장이 앞섰지만, 그보다 더 골치 아팠던 건 그의 이름 櫻井 翔(사쿠라이 쇼)이 굉장히 복잡하게 생겼다는 데 있었다.

한 획, 또 한 획, 천천히 마유코 엄마로부터 방금까지 배운 기본적인 중요한 포인트를 기억하면서 써내려 갔다. 온 정신을 붓 끝에 집중하며 쓰고 있는 동안에는, 신기하게도 내 주변의 모든 것에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듯 어떠한 소리, 움직임 하나도 내게는 들어오지 않고 고요하기만 했다. 마음을 다스리고 집중시키는 서예의 마법이 그 주문을 발휘한 것이다. 큰 붓으로 櫻井 翔를 쓰고, 왼쪽 하단부에는 조그맣게 작은 붓을 이용해 내 이름을 한자로 적었다. 하지만 내 이름 석자 曺認桯(조인정)을 쓰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어려웠다.

“해냈다!”

마지막 한 획을 기쁜 마음으로 마무리하며, 드디어 참고 있었던 숨을 편하게 내쉬었다.

“우와~ 정말 잘했다! 처음 치고 이 정도로 쓰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

내가 쓴 글씨를 살피며 마유코 엄마는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내 옆에 있던 마유코의 친척 동생도 마유코 엄마의 조언대로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쓰다가 마침내 마치 서예 전문가가 쓴 것 같은 멋진 완성작을 내놓았다. 같은 방에서 귀여운 유치원생, 또 다른 마유코의 사촌 남동생 류스케가 강아지 뒤를 졸졸 좇으며 마치 자신이 강아지인 것 마냥 따라 하는 귀여운 행동들을 보며 우리는 모두 폭소했고, 류스케와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그림을 함께 그리고,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 엉망진창으로 연주하는 그의 실로폰 연주를 들으며 왁자지껄한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할머니의 실수

거실에서는 여전히 가족들의 시끌벅적한 유쾌한 수다가 끝없이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식탁에 달콤한 디저트가 차려졌다. 오늘의 메뉴는 맛차 스폰지 케이크! 맛있는 것이 보이자 누구 한 명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모두 다시 한 번 식탁 앞에 착석했다.

“생크림을 올려 먹는 게 훨씬 더 맛있는데….”

포크로 맛차 향이 듬뿍 담겨있는 초록빛 케이크를 하나 집어들며 마유코가 말했다. 운이 좋게도, 할머니 댁 냉장고에는 우유팩에 담긴 생크림이 있었다. 5분 이내로 부드러운 생크림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마유코는 커다란 사발에 얼음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 얼음 위에 또다른 금속 보울을 놓고, 그 안에 우유팩에 들어 있던 생크림을 탈탈 부어냈다. 할머니께서는 그 생크림에 설탕을 몇 스푼 넣으셨고, 마유코는 거품기로 생크림이 더 잘 오를 수 있도록 젓고 또 저었다. 혼자서 젓기에는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은근히 힘들었기 때문에 식탁에 앉아 있는 우리는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저었다. 어느새 생크림은 뭉게구름처럼 하얗게 몽글몽글 부풀어 올랐다. 마유코가 손가락으로 크림을 살짝 찍어 맛보았다.

“할머니!!!”

그녀의 일그러진 표정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달콤한 생크림이 완성되기를 바라보던 친척 동생들은 모두 왜? 하며 손가락으로 찍어 그 맛을 보았다.

“읍… 짜다!”

결론은 그랬다. 방금 전 할머니는 실수로 설탕 대신 소금을 넣고 만 것이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만드는 중 설탕과 소금을 실수해서 넣었다는 어느 일본 가수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었기는 했으나, 실제로 이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니 그 황당함에 모두들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이 나왔다.


쌉싸름한 녹색의 은은한 부드러움

맛차 케이크는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그 많던 맛차 케이크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역시 사람 수가 많으니 음식이 금새 동났다. 그리고 나는 또다른 일본 문화를 체험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접했던 ‘다도(茶道, ちゃどう)’가 바로 그것이었다. 마유코의 친할머니는 실제로 다도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시라고 했는데, 한 번도 다도 체험을 해보지 못했던 내게 차근차근 그 방법을 알려주셨다. 5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오며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의 다도 문화는 그 복잡한 순서와 정해진 예의범절을 자세하게 따지려면 끝이 없기에, 할머니는 내게 가장 간소화된 다도를 보여주셨다.

제일 먼저 나는 할머니께서 내주신 조그마한 화과자(和菓子, わがし)를 먹었다. 달콤한 화과자는 맛차의 씁쓸한 맛을 완화시키며 단맛과 쓴맛의 조화를 위해 먹는다고 한다. 할머니의 수제자답게 마유코는 찻종에 맛차 파우더를 넣고 차선(茶筅, ちゃせん)으로 휘휘 저어 거품이 일게 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페트병에 들은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맛차와 기숙사 식당에서 매일 티백의 맛차를 마신 것이 전부였던 나였기에 마유코는 묽은 차인 우스차(薄茶)를 만들어 주었다.

다도에서는 맛차와 물의 양, 차선의 종류와 젓는 방법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데, 이는 ‘묽은 차’인 ‘우스차(薄茶)’와 ‘진한 차’인 ‘고이차(濃い茶)’로 나뉜다. 부드러운 우스차에 맛차가 두 스푼 사용된다면, 씁쓸한 맛이 좀더 강조된 고이차에서는 맛차가 3~4스푼 정도 들어간다. 재미있는 건 차선을 젓는 방법인데, 우스차는 W모양으로 손목을 이용해 빠르게 저어 거품을 내는 반면, 고이차는 천천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360도로 저으면서 진한 농도의 차를 완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4)

할머니와 마유코의 가르침대로 나는 고운 녹색에 거품이 적당히 올려져 있는 맛차가 담긴 차왕(茶碗, ちゃわん: 찻잔)을 오른손으로 들어 왼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 차왕을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렸다. 마실 때에도 3회에 걸쳐서 마시는 것이 관습이라고 하여, 적당한 양을 눈대중으로 재며 마셨다. 또, 마지막 모금에서는 차를 내어준 할머니께 차를 감사히 즐겼다는 뜻으로 후루룩 소리를 내며 차왕을 다시 내려놓았다(마지막에 이토록 소리를 내서 들이마시는 것 또한 다도의 예의범절 중 하나이다).

마유코가 옆에서 알려주는 대로, 입을 닿았던 차왕의 부분은 오른손으로 닦아내고 차왕은 다시 방금과는 정반대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려 내려놓았다. 일본의 중요한 문화를 하나 더 체험했다는 데에서 왠지 모르게 나는 굉장히 뿌듯했고,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입안에는 쌉싸름하지만 향긋한 맛차의 맛과 내음새가 여전히 부드럽게 감돌며 남아 있었다. (사진5)


마유코 親할아버지와의 만남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할 것이다. 오래간만에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나고, 케케묵었던 빛 바랜 추억들을 다시금 꺼내 이야기하고, 웃고,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내고, 먹고, 이날만을 위해 찻장 안 고이 모셔두었던 술을 마시며 흥을 돋운다. 이것이 바로 명절의 묘미일 것이다.

한 잔 걸쭉하게 들이키신 마유코의 친할아버지께서는 나와 마유코가 앉아 있는 식탁으로 다가 오시더니, 영어로 내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러한 시간이 올 것이라는 건 이미 들어 예상하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친할아버지 댁을 향해 걸어갈 무렵, 마유코 엄마와 마유코는 분명 할아버지께서 내게 많은 질문을 하실지도 모른다는 걸 알려두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일본 생활은 어때요?”라고 내게 물으며 시작된 대화는 할아버지와 나의 간략한 인생사를 말하는 대로까지 계속되었다. 할아버지는 대단한 엘리트이셨는데, 젊은 시절 무역업에 종사하시면서 일 특성상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고 살기도 했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유창한 영어 회화가 가능하셨고, 나와는 영어로 대화하셨다.

“한국에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어.”

할아버지는 몇십 년 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 문제로 한국에 가보신 적이 있다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먹었던 음식 등 잊지 못할 추억들을 하나씩 찬찬히 내게 들려주셨다. 내가 알지 못했던 오래 전 한국,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그 당시 한국의 모습을 일본인 할아버지께 듣고 있자니 기분이 남달랐다. 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몇 번이고 사양하는 내게 세뱃돈인 오토시다마(お年玉, おとしだま)까지 챙겨주셨다.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순간까지 할머니는 가져가서 먹으라며 귤을 한 봉지 가득 싸주셨다. 그리고 대문 밖까지 나오셔서 마유코 엄마, 마유코, 그리고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하셨다. 이게 바로 가족을 사랑하는 진심 어린 할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포근한 사랑과 할머니께서 내게 건네신 따뜻한 말 “자주 놀러 오세요!”는 내 가슴을 따스하게 밝혔다. 외국에서 이토록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진정한 가족애를 느끼며, 값진 추억을 만들고, 일본이라는 나라, 그리고 이 곳의 문화에 조금 더 가깝게 보고 들으며, 젖어 들을 수 있었던 이 기회를 행운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삶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

새까만 밤하늘에 달 하나만이 가로등보다 더 밝은 빛을 어둠 안에서 환희 비추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 어느 낮은 건물 앞에 꾸며져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 장식 같은 무언가를 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삼각형 모양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했으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니 파란색 전구로 장식이 되어있는 것도 그렇고, 이미 지나버린 크리스마스를 위한 장식은 아닌 듯싶었다.

“후지산이다!”

핸드폰 카메라로 담장 너머 있는 그 건물의 장식을 찍기 위해 마유코 엄마는 한 발 짝 더 담장에 다가서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파란색 삼각형은 일본의 자랑스런 상징이자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후지산’이었다. 또 후지산 옆의 붉은 원 모양 조명 장신구는 2015년 밝게 떠오르는 해를 의미하는 듯했다. 그 일본적인 모습을 나도 핸드폰에 담았다.

“타다이마(ただいま: 다녀왔습니다).”

집 문을 열고, 신발을 벗자마자 우리는 외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는 1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했을까 궁금했을 두 분께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모두 다 풀어놓았다. 밤마다 이곳 식탁에 둘러앉아 할머니께서 따뜻하게 내주시는 맛차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풀어내는 이 시간이 나는 가장 좋았다. 그리고 이는 마유코 가족에게서 내가 본받을 점이었다. 누가 이렇게 하라고 꼭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마유코 엄마와 마유코는 항상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주제는 친척 누구에게 전화가 왔다던가,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들었다던가, 어떤 친구와 어디를 갔다던가, 이웃 집 누구와 마주쳤다던가 등 시시콜콜한 일상의 소식이었는데, 나는 이런 일상생활을 들으면서 삶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알아갔다.

마유코의 친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외할아버지도 굉장한 노력파에 공부벌레셨다. 특히, 영어 공부에 굉장히 열심이셨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일주일에 몇 번씩 직접 영어 수업을 들으러 다니신다고 했다. 할아버지 옆에는 항상 전자사전이 있었다. 아직은 일본어가 유창하지 못한 내가 가끔씩 일본어 대화 중 모르는 단어를 영어로 대신해 말하는 경우가 있으면, 그 英단어를 직접 사전에서 찾아보시며 따로 메모해 두시기도 했고, 내게 어떤 영단어의 함축적 의미나 용법 등에 대해 여쭤보신 적도 더러 있었다. 친가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에 대한 우리의 대화는 어느새 한국, 미국, 일본 속담에 대한 주제로 퍼져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그렇게 다정한 사람들과의 따스한 대화로 또 하루는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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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코 친할머니의 솜씨로 태어난 예술 같은 음식들. 찬합에 담긴 알록달록한 오세치 요리를 먹으며
새해의 소원들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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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식탁 앞에 둘러앉은 마유코의 친척들과 나.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들의 유쾌한
대화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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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나의 서예 선생님이었던 마유코 엄마는 제일 먼저 내게 기본적인 획 쓰는 법을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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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종에 맛차 파우더를 차왕에 넣고 차선을 이용해 W 모양으로 휘휘 저어 거품을 내면 묽은 차인 ‘우스차’
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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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맛차가 담긴 차왕을 오른손으로 들어 왼손바닥에 올리고,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린 후 세 번에
걸쳐 전부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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