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유코 外家 식구들과 샤브샤브 파티

조인정의 일본 유학기(4)점심을 심각할 수준으로 배가 터질 만큼 먹었던 터라, 저녁 식사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만의 특별 레시피로 만든 요리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은 이미 까맣게 잊혀졌다.

“우리 가족은 이런 음식을 매일 먹고 살아”

 아침식사는 간단히 (크루아상, 스프, 요거트까지 먹었기에 간단히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조금만 먹으려 했다. 왜 조금만 먹느냐? 그 이유는 곧 있을 점심식사가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라는 것! 일본에서 반 년이 넘게 살아온 이 순간까지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일본 정통 샤부샤부를 먹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한달음에라도 레스토랑으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전날은 친가 집과 모임이 있었고, 오늘은 외가 집과 가족 모임으로 점심식사를 함께 할 예정이었다. 마유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마유코 엄마, 마유코, 그리고 나, 우리가 가장 먼저 샤부샤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유코의 친척 가족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친가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 분 한 분 새해인사를 건넸고, 마유코는 나를 소개하느라 바빴다. 식구들이 다 모이니 엄청나게 커보이던 테이블 세 개는 꽉 들어찼다.

 나와 마유코, 마유코 엄마는 마유코 이모와 사촌(이모의 딸)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사촌은 나와 마유코와 같은 1학년으로 예쁜 얼굴에, 현재 어느 여자 대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도코로자와(所沢) 기숙사와 멀지 않은 고다이라(小平) 근처에 살고 있었으므로 괜스레 반갑기도 했다. 

 마유코의 삼촌이 맥주 잔을 높이 들고 새해의 건강과 가족의 화목을 기리며 모두에게 건배를 청했다. 나와 마유코도 오렌지 주스를 담은 잔을 들고, 다시 한 번 새해의 바람을 큰 소리로 함께 외쳤다. 그리고, 드디어 샤부샤부가 등장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맛있는 주인공이 테이블이라는 무대 위에 등장을 한 것이다! 마치 슈퍼스타가 눈앞에 나타난 듯, 아니 그보다 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모두가 우와~하고 탄성을 자아냈다. 

 테이블 가운데 놓여진 커다란 냄비 안에 샤부샤부 육수가 보글보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했고, 풍겨지는 냄새는 빨리 옆에 등장한 고기를 풍덩 빠뜨려 먹고 싶은 생각에 내 마음을 조리게 했다. 웨이터는 계속해서 사이드메뉴를 내놓았는데, 닭튀김부터 감자튀김, 스시, 대두(豆) 등 커다란 상 위는 금새 빽빽하게 음식들로 가득 채워졌다. (하단 사진1)

 “우리 가족은 이런 음식을 매일 먹고 살아. 이런 음식은 뭐 기본 아니겠어?” 

 능청스런 농담을 던지는 분은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계시던 마유코 외할머니의 남동생 분이셨다.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의 할아버지인 그 분은 나를 기쁘게 맞이해주셨다. 가족들만이 모이는 자리에 괜히 무례하게 끼었나 하고 느꼈던 나의 부담감과 죄송함은 그분의 반가운 환영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부터 시작된 그의 말은, 정말이지 어딘가에 따로 메모해 다음에 내 친구들에게 따로 쓰고 싶을 정도로 위트 있었다. 

 “게스트에게 이런 대접을 하는 건 우리 가족의 특징이지. 대신 말이지, 너는 이 모든 것을 꼭 기억해 두었다가 내가 한국을 찾게 되면 그 때 두 배로 갚아야 해!”

 나를 쳐다보시며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그 분에게 나도 “네! 전부 기억할게요”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물론, 그 분께서 말씀하신 것이 농담이란 것을 알고 있었고, 친척들도 내 옆에서 “우스갯소리로 그러시는 거 알지?”라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가족들만이 모인 자리에 이방인인 나를 초대하고 가족처럼 편안하게 대해주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감사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그분께서 한국에 오시면, 말씀하신 대로 두 배, 세 배는 더 잘 대접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키타 방언: “이게 정말 일본어에요?”

 외할머니 가족은 대설(大雪)지역으로 유명한 혼슈(本州)의 북서부에 위치한 아키타현(秋田県)이 고향이었는데, 매일 밤마다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맛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 중에 할머니는 아키타에서 겪었던 옛 추억들을 들려 주시곤 했다. 나는 할머니께 아키타현의 방언을 배우기도 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아키타 방언은 전라도 방언 같기도 한 것이, 이를 배우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아키타 방언은 표준 일본어와 그 형태가 굉장히 달라서, 완전히 다른 언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중 내 머릿속 강한 인상을 남겼던 아키타만의 특별한 말들이 있었다. 표준 일본어로 ‘드세요’를 뜻하는 ‘타베테 쿠다사이(食べてください)’는 아키타 방언으로 ‘케(け)’라고 했고, ‘먹읍시다’라는 의미의 ‘타베마쇼우(食べましょう)’는 ‘코(こ)’라고 했는데, 이처럼 아키타에서는 아주 짧은 단어로 그 의미가 통했다. 

 이렇게 배운 방언을 나는 레스토랑에서 할머니 동생분께 자랑스럽게 써보며, 그 분에게 “일본어 잘하네!”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분은 내가 방언을 쓰는 것에 엄청 즐거워하셨는데, 아마 한국 사람들이 부산 사투리를 쓰는 외국인을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 분께서는 내게 또다른 방언을 몇 개 더 알려주셨다.  

 여기서 잠깐, 일본의 재미난 방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본어는 세계의 많은 언어들 중 짧은 단어만으로 어떤 뜻과 그 어감을 잘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아키타현의 방언은 유독 특별한데 예를 들어, 오로지 ‘네(ね)’라는 단어만을 가지고 많은 의미를 표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표준 일본어

아키타 방언

나이 (ない: 없다)

네(ね)

나이쟌 (ないじゃん: 없잖아)

네네(ねね)

네나이쟌 (寝ないじゃん: 자지 않잖아)

네네네(ねねね)

네레나이쟌 (寝れないじゃん: 잠이 오질 않잖아)

네레네네(ねれねね)

네나캬 (寝なきゃ: 자야 해)

네네바(ねねば)

네나캬이케나이 (寝なきゃいけない: 자지 않으면 안 된다)

네네바네(ねねばね)

네나캬이케나이쟌 (寝なきゃいけないじゃん: 자야 하잖아)

네네바네네(ねねばねね)

네나캬이케나이노니네레나이쟌 (寝なきゃいけいのに寝れないじゃん: 자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잠이 오질 않잖아)

네네바~네노니네레네네~ (ねねば~ねのにねれねねぇ~)


 ‘네’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그 소리에 나와 마유코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더욱이, 같은 단어를 반복하여 쓰는데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게 된 일본 방언 중 단연 귀엽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혼슈 북동부 태평양에 면한 현인 미야기 현(宮城県)의 방언 중 ‘양말에 구멍이 남’을 칭하는 말이었다. 표준 일본어에는 구멍이 뚫린 양말을 뜻하는 특정한 단어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미야기 현에서는 존재했다. 미야기 현에서만 통하는, 들으면 들을수록 귀여운 그 단어는 이랬다.

‘오하요우 쿠츠시타 (おはよう 靴下: 안녕 양말<아침인사의 ‘안녕’>)’

 미야기 현의 사람들은 이 단어가 발가락의 관점에서 볼 때, 특히 엄지 발가락이 양말 안에 숨어있다가 ‘안녕~’ 하면서 튀어나오는 그 기분을 나타내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안녕~하고 세상의 빛을 본 구멍이 난 양말은 곧 ‘사요나라 쿠츠시타(さよなら 靴下 (안녕 양말 (헤어짐의 ‘안녕’))’하며 세상과 작별한다고 하는데, 정말 한 편의 새드 엔딩(sad ending)의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배가 터지기 전까지 먹을게요!

 빨갛고 기다란 게 다리 위에 잘게 다져서 채워져 있는 게 맛살을 보글보글 끓고 있는 샤부샤부 육수 안에 넣었다. 그러자 어느새 냄비 안은 향긋한 바다의 맛이 담뿍 담긴 육수로 재탄생했다. 곧 찬합 안에 얇게, 곱게 썰려져 있던 고기들을 육수 안에 퐁당퐁당 빠뜨렸다. ‘샤부샤부’ 라는 음식의 어원이 본래 ‘찰랑찰랑 또는 살랑살랑’에서 온 것처럼, 분홍빛 고기가 육수 안에서 살랑살랑 춤을 추다가 금새 노르스름해지면 얼른 건져 내어 특제 소스에 찍어 입 속에 쏙 넣었다. 

 “오이시이~ (おいしい: 맛있다)”

 정말 맛있었다! 사실 몇 시간 전 아침을 예상 외로 많이 먹어서 공복 상태도 아니었건만, 샤부샤부의 맛에 완전히 중독되어 젓가락은 데쳐진 고기와 야채들을 입 속으로 나르느라, 그리고 내 입은 그 음식들을 씹어 넘기느라 바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먹고,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이날 우리는 노미타베호다이<'154み食べ放題:음료 무한정 서비스 ‘노미호다이('154み放題)’와 음식 무한정 서비스 ‘타베호다이(食べ放題)’의 합성어>였기 때문에, 음료도 샤부샤부 고기도 정해진 2시간의 제한 시간에 끊임없이 주문해 먹었다. 먹는 내내 할머니 동생분의 농담에 폭소하고, 즐거운 수다를 나누면서, 웃음꽃은 끊이질 않았다. (하단 사진2)

 레스토랑을 나오기 전에 할머니 동생분께서는 다시 한 번 내게 “마유코의 친구로 이 자리에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내게 전하셨고, 나는 그 분께 또 오토시다마(お年玉: 세뱃돈)를 받았다. 마유코의 부모님에서부터, 외조부모, 친조부모, 그리고 이제는 친척분까지 모두에게 세뱃돈을 받으면서 ‘대학생인 내가, 마유코의 친구인 내가 세뱃돈을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죄송한 생각마저 들었다. 

 집에 돌아온 저녁에는 할머니가 해주신 바질 파스타와 사시미(さしみ: 생선회)를 먹었다. 점심을 심각할 수준으로 배가 터질 만큼 먹었던 터라, 저녁 식사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만의 특별 레시피로 만든 요리를 보고 있자니 그러한 생각은 이미 까맣게 잊혀졌다. 치즈 파우더를 솔솔 올려 먹는 바질 파스타, 아보카도가 잔뜩 올려진 신선한 샐러드, 거기에 야들야들한 살의 참치 회까지 또 먹고 말았다. 정말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먹는 것 같았다. (하단 사진3)

 “무리하지 말고 먹을 수 있는 데 까지만 먹어도 돼.”

 할머니와 마유코 엄마께서 내 옆에서 말씀하셨지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열심히 먹어 볼게요!”

 매일 매일 외가, 친가를 만나면서 나는 점점 더 내 친구 마유코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일본인 가족들이 생긴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어떻게 감히 그들에게 표현할 수 없는, 이 넘쳐나는 감사함을 보답할 수 있을까? 나는 분명 행복했지만, 이 난감한 고민을 직면했다. 며칠 후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화상전화를 했는데, 엄마와 아빠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마유코와 더 잘 지내면 되는 거야. 그리고 큰딸이 나중에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면, 그때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 거야.”

 부모님 말씀대로, 지금은 마유코의 가족 모든 분들을 위한 나의 고마움은 마유코와의 더 끈끈한 우정으로 갚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기를! 감사에 겨운 행복한 고민과 함께 오늘 하루도 아름답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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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안 샤부샤부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끓었고 맛있는 냄새는 후각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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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코 외가 집의 가족모임은 맛있는 음식 그리고 유쾌한 사람들과 함께여서 더욱 즐겁고 행복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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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터질 정도로 샤부샤부를 먹었음에도 할머니가 해주신 바질파스타와 사시미를 저녁으로
또 먹을 수 있었던 내 자신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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