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한국유격부대(일명 켈로부대) 戰死者 합동 위령제

대·소규모의 전투 4445회를 감행, 약 7만의 敵을 살상한 계급도, 군번도 없이 ‘자유의 의병’으로 활약.

                      

 이름도, 계급도, 군번도, 보수도 없이 ‘자유의 의병’으로 반공의 일선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낸 국제연합한국유격부대(8240부대, 일명 켈로부대) 전사자 합동 위령제가 한국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 주최로 관계자 및 유가족, 특전사령부 장병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서울국립현충원 내 유격부대전적위령비 앞에서 열렸다.

이날 한국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 박충암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먼저 애국정신으로 이름도 확인되지 않은 채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다 산화한 대원들의 넋을 위무하며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있음을 자부했다.

박 회장은 또 당시 유격부대원들의 활약상을 회고하며 역사적 관점에서 유격대원의 정신이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했던 3·1정신에 버금가는 눈물 나는 희생이었다고 평가했다.

 ▲ ‘자유의 의병’으로 반공의 일선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낸 국제연합한국유격부대 전사자 합동 위령제가 한국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 주최로 18일 오전 동작구 서울국립현충원 내 유격부대전적위령비 앞에서 열렸다. ⓒkonas.net


국제연합한국유격군은 6·25 전쟁 기간 중 북한지역과 38도선 접경지대에 거주하던 청년학생들이 ‘반공’의 기치 아래 ‘자유의 의병’이란 자생적인 유격부대를 조직하여 적치하의 북한 내륙과 동·서해 연안, 도서 등의 지역에서 게릴라전을 비롯해 특수공작, 첩보, 심리교란, 양민구출 등을 전개했다.

군번도 없이 무려 3만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출생연고지를 중심으로 약 30개의 단위부대를 편성했는데 처음에는 미8군사령부와 연계하여 유격작전을 펼치다 이후에는 美극동군사령부와 유격작전을 함께했다.

이어 1953년 7월27일 휴전 성립과 함께 유엔군의 보급지원 종료에 따른 철수지시로 각부대가 남한으로 이동 철수하여 대기하던 중 한국정부와 유엔군사령부와 협약에 따라 1954년 2월22일 국방부 제8250부대로 통합된 후 다시 육군으로 분산 편입됐다.

이 시기에 유격군간부 중 753명이 현지임관(소위~소령)되었고, 대원 중 약 12000명이 하사관 및 사병으로 현지 입대했다.  그러나 국제연합한국유격부대에 대한 활동에 대해서는 당시 군사기밀로 취급되었고 휴전 이후에도 美군 당국이 2급 비밀로 분류 관리돼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그 기록문서가 1984년에(휴전 후 30년 경과) 비밀등급 하향으로 일반문서화 되고 공개됨으로써 ‘국제연합한국유격군’의 실체가 햇빛을 보게 되었는데, 美 육군성 기록에 의하면 전쟁기간 중 한국유격군은 대·소규모의 전투 4445회를 감행하였고, 약 7만의 적을 살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국제연합한국유격군’은 9.18인천 상륙 작전 당시 KLO부대원들이 팔미도를 기습 점령 팔미도등대를 수동으로 가동함으로써 유엔군 상륙작전 함대가 인천항으로 진입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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