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8. 마이니치(每日)신문
획기적 항생물질(抗生物質)을 발견하여, 많은 개발
도상국 사람을 구한 공적으로 의학생리학상을 수상
한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80세) 기타사토(北里)대학
명예교수와, 소립자(素粒子)의 일종인 뉴트리노(중성
미자)에 질량(質量)이 있다는 것을 실증하여 소립자
물리학(素粒子物理学)의 상식을 바꾼 공로로 물리학
상을 수상한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56세) 도쿄
(東京)대학 우주선(宇宙線)연구소장을 인터뷰했다.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의학생리학상>
-이번 수상은 연간 3억 명을 구하는, 실로 세상을 변화
시킨 연구로 평가받았다.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미생물(微生物)로부터
항생물질(抗生物質)을 분리하는 감염증약(感染症藥)
개발의 최초 시작 부분을 담당했을 뿐이고, 그 이후 단
계에서 여러 사람들이 기여를 하여 실제로 복용할 수
있는 형태(약)로 완성되었습니다'
-그 최초 시작이 미생물(微生物)이라는 것이 특이했고,
그 점을 사람들이 인정해 준 것 같다. 
'1981년에 아이버맥틴(상품명:맥티잔)이 발매되고 2년
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약(藥)으로 널리 퍼졌습니
다. 지금은 다른 종류 약도 많이 나왔지만, 그 전에는 세
계 모든 가축(家畜)이 전부 맥티잔을 복용했습니다. 많
은 약이 나왔지만, 아직도 지금까지의 합계로는 압도적
으로 아이버맥틴이 가축업계에 사용되어 오고 있습니다.
애완동물들 대부분 역시 이 약의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기타사토(北里)대학의 유래가 된 세계적 세균학자 기
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 1853~1931) 박사는 1회
노벨 의학생리상 후보였는데…
'기타사토(北里) 선생(先生)께서 하늘나라에서 '이쯤에
서 오무라(大村)를 한번 응원해 주자'는 마음을 먹게 되
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타사토(北里) 선생의 가르침은
'실학 정신'입니다. 연구자는 연구를 즐길 뿐 아니라, 그
것을 실제 응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타사토(北
里)대학에 와서, 이 점을 항상 의식하며 일해 왔습니다'
-기타사토(北里) 선생의 가르침은, 오무라(大村)씨 조모
(할머니)의 가르침과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조모는 항상, '오무라, 사람을 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
다.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해라. 이 점을 마음 깊이
간직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조모의 가르침을 항상 기
억하고 있습니다'
-2004년 온코셀카증(河川盲目症)이 유행하던 아프리카
가나를 방문했는데…
'아이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현지
소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은 도쿄, 저팬 같은 것은
몰라도 맥티잔(아이버맥틴)은 모두가 잘 알고 있었습니
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명하여 앞을 못보게 된 어른 환
자가 '나는 비록 앞을 못보게 되었지만, 병이 아이들에게
옮아가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곳 아이들과 만난 후에 비로서 오기를 잘했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1935년, 야마나시(山梨)県 출생, 1958년 야마나시(山梨)대
학 예학부(芸学部) 졸업. 도쿄(東京) 도립(都立)공업고등
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1963년 도쿄이과(東京理科)대
학 대학원 수료. 1965년 기타사토(北里) 연구소 입소(入所).
1975년 기타사토(北里)대학 교수, 1990~2008 기타사토 연
구소장. 골프장 주변 토양으로부터 기생충(寄生"411)을 죽
이는 항생물질(抗生物質)을 만드는 균(菌)을 발견하고,
미국 제약 빅메이커 머크社와 공동으로 신약(新藥) '아이
버맥틴'을 개발. 아프리카 등에서 연간 3억 명을 구한
공로로 2015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물리학상>
-이번 수상은,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도쿄(東京)대
학 명예교수와 故도쓰카 요지(戶塚洋二) 도쿄(東京)대학
명예교수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은 성과에 따른 것인데,
가지타(梶田)씨에게 있어, 두 명은 어떤 존재인가?
'고시바(小柴) 선생은 생각하는 스케일이 크고, 제가 항
상 존경하는 대상입니다. 먼저 가신 도쓰카(戶塚) 선생은
그야말로 '선생(先生)'이셨습니다. 실험의 세세한 것까지
빠짐없이 머리 속에 간직하고 계셨고 모든 면에서 제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도쓰카(戶塚) 선생의 노력으로 인
해 수퍼카미오칸데 장비가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수퍼
카미오칸데가 없었다면, '뉴트리노(중성미자) 진동(振
動)'의 발견은 없었을 것입니다. 도쓰카(戶塚) 선생이 존
재했기 때문에 현재의 성과가 있는 것이므로 정말 감사
할 뿐입니다'
-일찍이 1980년대에 뉴트리노(중성미자) 진동(振動)의
존재를 알아내고 학회에서 한 번 발표한 적이 있는데...
'당시부터 '뉴트리노 진동'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초기 가능성의 단계였습니
다. 당시 '대기(大気) 뉴트리노가 이상하다. 데이터가
예상과 부합하지 않고 있다. 뭔가 상당히 중요한 의미
를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대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떤 기분으로 연구에 임했나?
'처음 마음 먹은 대로였습니다. 어떠한 각도(角度)에서,
어떠한 데이터를 보아야 하는지 등을 항상 생각하면서
연구했습니다'
-처음에는 '뉴트리노 진동'에 대해 다른 학자들이 인정
을 해주지 않았는데…
'다른 종류 실험에서 '뉴트리노 진동'을 지지하는 결과
가 안나왔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순간이었지만, 확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구를 이어나간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제가 옳다는 확신을 버린 적이 한번도 없습니
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1998년 국제학회의 발표로 이어
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전 10년간 비판적 시각으로 보아오던 학자들이 많았
기 때문에 당시 학회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고 예상하고(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장(会場)
전체가 '이것이 바로 뉴트리노 진동'이라는 반응을 보여
주게 되어 오히려 제가 놀랐습니다. 의문(비판)과 질문
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대비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
람들이 믿어주었습니다. 당시 회장內 박수가 정말 오랫
동안 이어졌습니다'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1959년, 사이타마(埼玉)県 히가시마쓰야마(東松山)市 출
생. 1981년 사이타마(埼玉)대학 문리학부(理学部) 졸업.
도쿄(東京)대학 대학원에서 물리학 전공(1986년 박사학
위 취득). 2008년부터 도쿄(東京)대학 우주선(宇宙線)연
구소장. 소립자(素粒子)의 일종인 '뉴트리노'에 질량이
있다는 것을 기후(岐阜)県 지하에 설치한 대형관측장비
'수퍼카미오칸데'로 실증하여, 1998년에 국제학회에 발
표. 그 동안 뉴트리노에는 질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
제(前提)로 이어져온 소립자(素粒子)물리학의 '표준이론'
(標準理論)의 수정을 이끌어낸 성과가 인정되어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80세), 의학생리학상
   오무라(大村)씨가, 교원으로 근무할 당시 1960년대경 가족사진.
   左로부터 남동생 다이조(泰三)씨, 오무라(大村)씨, 모친 후미코
   (文子)씨, 여동생 마치코(真智子)씨, 조모(祖母) 시케(しげ)씨,
   누나 준코(淳子)씨.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56세), 물리학상
   '뉴트리노'에 질량이 있다는 것을 실증한 대형관측장비
   '수퍼카미오칸데' 내부 모습. 수 많은 광전자(光電子)
   증폭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 기후(岐阜)県
<일본 노벨상 수상자 현황> 
      https://youtu.be/_x6vqS_V5Og












이분들의 공로에 고마운 마음을 보냅니다. 또한
학자들이 의문을 갖고 질문할 때 "또라이"라고 비난하는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답니다. -양승오 박사를 비난하는 분들께-
우리나란 앞으로 "친일파"니 뭐니 떠드는 자들은
반일 선동가로 처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