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 검찰총장
참조: 대검 중앙수사부장/공안부장
제목: 동아출판 발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북한 교과서 표절의혹 수사 의뢰
요약: 대한민국 헌법(憲法)상 반국가단체(反國家團體)인 북한이 제작한 역사서를 표절(剽竊)한 것으로 판단되는 동아출판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와 관련하여 문제의 도서를 발간한 출판사와 이를 검인정하고, 내용의 수정․권고를 했던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 관련자들을 조사하여 의법처리해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수사 의뢰 사항-
<1> ‘동아출판’의 前身인 ‘두산동아’가 2013년 3월 발간한 《고등학교 한국사(저자 왕현종 外)》교과서에는 ‘북한 정권의 수립(교과서 본문 273페이지)’과 관련하여 1948년 대한민국 국민들이 김일성 정권 수립을 위한 선거에 참여하였다는 역사날조(捏造)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교과서 본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북한은 남한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자…(중략) 남북 인구 비례에 따라 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을 뽑는 선거를 실시하였다. 북한과 남한에서 선거로 뽑힌 대의원들은 1948년 9월 최고 인민 회의를 열어 헌법을 만들고, 김일성을 수상으로 선출, 내각을 구성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두산동아 p273)>
남한의 유권자들이 북한 정권 수립을 위해 투표했다는 위 교과서의 내용은 대한민국 헌법상 반국가단체(反國家團體)인 북한 정권의 수립을 고무․찬양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즉,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은 남한만의 총선거로 수립됐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남북 인구 비례에 의한 선거를 통해 수립되었으므로 ‘더 정통성이 있다’고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사료(思料) 됩니다.
위와 같은 의심을 강화시켜주는 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중학교 4학년이 배우는 《혁명력사1》의 173페이지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북과 남의 전체 인민들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한 사람 같이 떨쳐나섰다. 북반부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선거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남반부에서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가혹한 탄압으로 하여 비밀리에 서명을 하는 방법으로 먼저 인민대표들을 선출하였다. 선출된 인민대표들은 북반부에 넘어와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을 선거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북남총선거가 끝나자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를 여시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혁명역사1, p173)>
두산동아 역사 교과서와 북한 교과서의 내용을 보면 두산동아 교과서가 북한 교과서를 표절했다는 의심이 정당화됩니다. 일례로 북한 교과서는 ‘북남 총선거’라고 했는데, 동아출판 교과서는 이를 ‘남북 인구비례’에 따른 선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이 교과서 筆者들은 어디서 인용했다는 주석(註釋)조차 달지 않았습니다.
두산동아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273페이지 내용과 관련해 2015년 12월4일 동아출판사 ‘교과서 연구소’, 교육부 ‘교과서 정책과’,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 ‘역사교과서편수실’에 공문(公文)을 발송했습니다. 이 공문에는 교과서 제작과정에서 ▲북한 교과서를 참고했는지의 여부 ▲교육부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수정․보완 명령>에 273페이지 내용에 대한 수정․보완 명령이 없는 이유 ▲273페이지 내용을 증명하는 역사적 자료의 유무(有無) 제시 여부 등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동아출판과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는 현재까지 답변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2> 두산동아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 무장 전투’로 허위․날조․과장해 선전하는 ‘보천보(普天堡) 전투’를 두 차례에 걸쳐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동북 항일 연군의 지휘관에는 한인들이 많이 있었다. 한인 간부들은 이념을 초월한 민족적 단결을 이루기 위하여 조국 광복회를 결성하였다. 조국 광복회는 국내의 민족주의자 및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함경도 일대에도 조직을 확대하고, 보천보 전투 등 국내 진공 작전을 여러 차례 단행하였다.(두산동아 p247)> ▲<보천보 전투는 당시 국내 신문에도 크게 보도되었고, 이 작전을 성공시킨 김일성의 이름도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上同)>
보천보 주재소를 습격한 소위 항일 부대(조국 광복회)의 정체와 당시 김일성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學界)에서 그 실체를 두고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로 두산동아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교육부로부터 보천보 전투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 권고를 받았으나, 이를 삭제하지 않고 247페이지에서 “한편, 북한은 이 사건을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하였다”면서 한 문장을 추가했습니다.
북한은 1983년 발간한 역사서인《현대조선역사》등에서 허위사실을 날조해 김일성 주도의 항일활동을 대대적으로 조작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개인숭배적 김일성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설사 북한 선전이 모두 실제였다 하더라도 당시 조국 광복회 수준의 단체 활동은 수천 개에 달했습니다. 조작된 보천보 전투라는 보천보 면소재지 습격사건 역시 단 한 명의 일본군과의 교전도 없었던 주재소와 면사무소 습격이었고, 독립운동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북한 독재자의 개인숭배 차원에서 날조된 역사가 비판되고, 바로 잡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두산동아 교과서는 역사적 가치도 없는 공산당의 활동과 조국 광복회 및 보천보 전투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북한의 역사교과서 《현대조선역사》는 반복적으로 보천보 전투, 조국 광복회, 동북항일연군, 인민혁명군 등 일제시대의 공산주의 활동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무장투쟁이 다양하게 있었던 것처럼 기술하고 그 중심에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북한 정권이 일제시대 항일운동의 중심 세력이었고, 이들 세력에 의해 북한이 세워진 것처럼 인식되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3> 두산동아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해방 직후의 한반도 상황을 기술하면서 김일성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도 연해주에서 항일(抗日)활동을 했던 것으로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은 인민 위원회의 자치를 인정하는 간접 통치 방식을 취하였다. 좌익이 인민 위원회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군 사령부는 여러 방법으로 좌익이 실권을 장악할 수 있게 뒷받침하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소련 연해주를 중심으로 항일 유격대를 이끌고 있던 김일성도 후원하였다.(두산동아 p267)>
김일성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소련 연해주를 중심으로 항일 유격대를 이끌고 있었다”는 두산동아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은 사실과 완전히 배치되는 서술입니다.
김일성은 1940년 소련의 하바로프스크로 떠나 소련군에 입대, 소련군 특무요원으로 훈련을 받은 뒤 소련군 장교가 됐습니다. 이후 소련군 대위가 되어 극동군 제88국제여단에 배속되어 군사교육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원래 중국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김일성은 1941년부터 일본과 중립조약(불가침조약)을 일본의 대미(對美) 전쟁을 간접 지원했던 소련군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독립투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울러 김일성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 이후인 1945년 8월9일부터 6일간 펼친 소련군의 유일한 대(對)일본 전쟁 때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사에서 김일성의 활동은 역사적으로 전혀 의미 없는 수준이었기에 한국사 교과서에서 서술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동아 교과서는 날조된 내용을 바로잡지 않고, 북한이 주장하는 허위사실을 변용(變容)하여 고교생들로 하여금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로 각인(刻印)시키고 있습니다.
<4> 두산동아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교과서 267페이지 <자료로 보는 역사: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다>에서 그 출처가 불분명한 ‘치스차코프 호소문’을 ‘맥아더 장군의 포고문’과 함께 병렬 배치해 놓아 교과서를 읽는 학생들로 하여금 소련을 해방군, 미군을 점령군이란는 인식을 갖도록 기술했습니다.
치스차코프 호소문(두산동아 교과서는 '치스차코프 대장 포고문'으로 기술)과 관련해 역사․정치학자들의 입장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한국현대사학회 초대회장을 지낸 권희영(權熙英)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소련군이 북한 지역을 점령한 뒤 뿌려진 일종의 ‘삐라’로 볼 수 있을 뿐, 정식 포고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정경희(丁慶姬) 영산대 교수는 2014년 1월 <조선PUB>과의 인터뷰에서 맥아더 포고령과 치스차코프 호소문이 교과서에 나란히 게재된데 대해 “학생들에게 소련(러시아)에 우호적이고, 미국에 비판적인 시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 교수는 “美軍의 포고령은 구체적인 방침이 담긴 딱딱한 법령(法令)이고, 소련군의 포고문은 추상적인 원칙을 나열하고 있는 문건인데, 그걸 나란히 실어놓고 비교하라는 과제를 내주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 서술을 보면서 ‘필자들이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인식을 학생들한테 전달하기 위해서 참 연구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북한의 역사서 《조선통사》下권을 보니까 치스차코프의 포고문과 맥아더의 포고령이 순서만 바뀌었을 뿐 나란히 실려 있더군요. 그리고 이 두 문건을 근거로 소련군은 ‘해방군’이고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강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의 현실입니다. 역사용어나 해석뿐 아니라 서술방식까지도 북한 역사책과 닮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학자인 金光東(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는 치스차코프 호소문의 출처와 관련해 “原자료는 현재까지 알려진 게 없다. 현재까지 가장 많이 피인용 된 게 1958년 북한이 발간한 《조선통사》이다. 이 책 하(下)권 288~289페이지에 치스차코프 포고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정확한 날짜는 나와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두산동아의 교과서는 2차 대전 막바지에 6일간 대(對)일본 전쟁을 수행한 소련군의 포고문(치스차코프 호소문)을 거론하며, 일본과 4년 동안 전쟁을 치러 일본을 패망시킨 맥아더 사령관의 성명서를 병렬 비교해 소련을 해방군으로 둔갑시키고,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낙인찍은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 서술 방식은 북한의 전형적인 정치선전 방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5> 위에서 언급된 <1>~<4>항의 내용으로 종합해볼 때 두산동아 발간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 헌법(憲法) 체계에 의거한 교과서로 볼 수 없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과 보완, 교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여전히 북한 역사서의 표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의 정통성을 조작하기 위하여 김일성에게 불리한 사실은 숨기고 유리한 사실은 과장․조작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이적(利敵)도서나 다름없는 역사 교과서를 발간한 출판사와 이를 검·인정하고, 내용의 수정․권고를 했던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 관련자들을 조사하여 의법처리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수사의뢰인-
서정갑(徐貞甲):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주소:
주민등록번호:
-첨부자료-
1. 북한 역사서 원문(原文) 자료: 《혁명력사1》
2. <조갑제닷컴> 발간 교과서 분석 도서: 《증거를 잡았다》
3. <해맞이미디어> 발간 북한 역사서 분서도서: 《북한 교과서 대해부》
-관계법조문-
국가보안법(국보법) 제7조(찬양․고무 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1·5·31>
② 삭제  <1991·5·31>
③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1·5·31>
④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1·5·31>
⑤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개정 1991·5·31>
⑥제1항 또는 제3항 내지 제5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개정 1991·5·31>
⑦제3항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1·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