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포르노': ‘나의 투쟁’ 解禁으로 본 독일인의 집단 트라우마

독일인은 왜 국기를 흔들지 않고 과거에 대해 얘기하는 걸 꺼리는 나라가 됐었나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2월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기사를 썼다. 히틀러 死後(사후) 70년이 지난 지금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를 번역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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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경우 책에 대한 저작권은 책의 작가가 죽은 지 70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투쟁’의 저작권은 독일의 바이에른
州에 있었고 주정부는 여태까지 이 책의 再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독일 내 도서관에서는 일부 복사본을 갖고 있었고 시중에서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1월 1일 이후부터는 재출간에 어떠한 제약도 없다.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나의 투쟁’은 이미 여러 언어로 번역됐으며 인터넷에서도 쉽게 검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독일인의 경우 이 책의 저작권 소멸은 큰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나의 투쟁’이 다시 출간되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의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있다.

‘나의 투쟁(Mein Kampf)’은 히틀러의 자서전 겸 성명서로 그가 1923년 뮌헨 봉기에서 실패한 뒤 비교적 편안한 감옥 생활을 하면서 쓴 책이다. 책은 총 두 권이며 1925년과 1926년에 각각 처음 출간됐다. 책의 제목은 ‘몸부림 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히틀러가 문법과 문체 등에 있어 몸부림 친 것은 명확해 보인다. 한 비평가는 그의 책을 ‘나의 경련(Mein Krampf)’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책 내용은 지금 읽으면 재미도 없고 잘 이해도 되지 않는다.

책에는 사회 다윈주위와 反유대주의, 히틀러의 殺人魔(살인마)적 습성이 담겨 있으며 이는 독일을 비롯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독일인 중 몇 명이나 이 두꺼운 책을 읽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1933년 이후 이 책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1936부터는 독일 지방 정부 차원에서 이 책을 혼인신고를 한 신혼 부부에게 선물로 나눠줬으며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까지 약 1300만 부가 인쇄됐다.

전쟁이 끝난 뒤 이 책을 어떻게 할지는 미국의 결정에 달렸다. 히틀러가 마지막으로 죽은 곳이 미국이 관리하기로 된 뮌헨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제3제국은 막을 내렸고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은 1949년이나 돼야 세워졌다. 미국은 이 책의 저작권을 바이에른州에 넘겼으며 재출간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전쟁 이후 히틀러의 사상을 따르는 독일인이 없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동맹국과 新독일 정부는 나치주의를 없애는 것을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나치 출신 사람들이 요직에서 배제된 것이 이 정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냉전으로 치달으면서 국제사회는 서독이라는 동맹국이 필요하게 됐다. 서독은 대체 인력 부족으로 인해 행정부와 법원, 학교 등에 나치 출신 사람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에 접어들자 독일인들은 히틀러에 대해 논하는 것을 꺼리게 됐다. 히틀러 정권 하에서 수감됐던 많은 남성들이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그리고 전쟁 당시 많은 여성들은 강간을 당했다. 사람들은 강제적으로 移住(이주)를 해야 하기도 했으며 고아와 과부들이 속출했다.

독일인들은 범죄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생겼고 그들이 겪은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꺼렸다. 그들은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경제 기적’과 같은 현실의 일에 집중하는 것에서 심리적 위안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를 믿지 않기도 했다. ‘아돌프 H’라는 책을 쓴 토마스 샌휼러에 따르면 1950년대 당시 서독 인구의 절반가량이 히틀러가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독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1960년대에 들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정부에게 체포돼 사형된 것이다. 이 사건이 홀로코스트를 대중들에게 조금 더 알리게 됐다. 1963년 이후 22명의 전 나치 친위대 소속 독일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저지른 범죄 행위 등에 대해 起訴(기소)됐다.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재판을 보기 위해 2만 명이 법원을 찾았다. 독일 내에서는 처음으로 ‘과거를 직시하자’라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가족끼리도 贊反(찬반)이 갈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자녀 세대는 자신의 부모와 교수들이 나치 범죄의 共犯(공범)이라며 학교와 집에서 시위를 했다.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 심리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1967년에 발간한 책에서 “(부모들은) 슬퍼하지조차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심리학자는 이러한 내부 갈등이 독일인들을 심리적으로 진흙탕에 빠뜨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정부는 두 개의 대응 방안을 내놨다. 동독은 공산당원들이 파시스트를 상대로 계속 투쟁해왔다는 소설을 주창하는 등 과거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으려 했다. 반면 서독의 경우는 과거를 인정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사죄했다.

서독은 동맹국들의 영웅심리와 달리 일종의 평화주의를 추구했다. 서독은 自國 國旗(국기)를 거의 걸지 않았으며 스포츠 경기에서도 國歌(국가)가 흘러나오면 따라 부르는 시늉만 했다. 젊은 세대는 자신을 독일인이 아니라 출신 지역, 즉 독일의 ‘스와비아 사람’이라는 식으로 인식했다. 혹은 자신을 유럽인의 일원이라고 봤다.

1970년대에 들어 다시 히틀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두 권의 자서전과 다큐멘터리 한 편이 나왔다. 1979년 독일은 미국 방송국에서 만든 ‘홀로코스트’라는 프로그램 시리즈를 방영했으며 많은 독일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당시 대통령과 비슷한 관점을 갖게 됐다. 바이츠제커는 독일 항복 40주년을 맞는 1985년에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1945년 5월8일은 독일의 패배나 몰락이 아닌 민주화를 이룬 날이라고 했다.

독일이 통일되고 냉전이 막을 내린 1990년에 들어 독일인들은 히틀러에 대한 연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1990년대에 들어 16차례나 히틀러를 표지 사진에 사용했다. 대니얼 골드하겐의 ‘히틀러의 자발적 학살자들’이라는 책이 나오자 큰 히트를 쳤다. 독일의 한 전쟁기념관에는 나치 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군인들도 홀로코스트에 참여했다는 내용물이 전시됐고 독일인들은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독일인들은 이러한 현상을 ‘히틀러 포르노’라고 부른다. ‘히틀러 포르노’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총통’이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 된 것이다. 1970년대에 스템이라는 잡지가 히틀러의 일기장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썼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 기사는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1990년대에 들어 독일의 역사 방송들은 히틀러의 여자, 心腹(심복), 마지막 날, 질병, 식탁 그릇, 블론디라는 이름의 셰퍼드종 개 등에 대해 연일 방송했다. 칫솔 모양 같은 수염이 달린 작은 남자의 영상이 나오면 대중들이 몰렸다. 어떻게 보면 히틀러는 대중의 관심을 끌어드릴 미끼, 즉 ‘섹스’와 ‘폭력’과 같은 이미지가 된 것이다.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제 히틀러를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시대 변화가 ‘풍자’라는 새로운 장르로 이어졌다. 그가 살아 있을 때 히틀러를 풍자한 건 독일의 敵(적)들이었다. 찰리 채플린이 나오는 1940년대 영화 ‘위대한 독재자’ 같이 말이다. 1998년 독일인으로는 최초로 발터 뫼르스라는 사람이 ‘아돌프, 나치 돼지’라고 히틀러를 풍자하는 제목의 만화를 연재했고 큰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영어로 번역된 티무르 베르메스의 ‘그가 돌아왔다’라는 책이 최근 관심을 받고 있다. 히틀러가 환생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코미디언 취급을 받게 되는 내용의 책이다.

위 책에서 비쳐지듯 젊은 독일인들에게 있어 ‘총통’은 이미 과거의 존재이다. 매력적이기보다는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전쟁이 끝난 뒤 히틀러를 연상시킬 만한 행동들은 모두 금기시됐다.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 둘씩 다시 등장하고 있다.

국기를 흔드는 것이 한 예다. 이 커다란 변화는 독일이 2006년 월드컵을 개최하며 생겨났다. 전쟁 이후 처음으로 검은색과 빨간색, 금색으로 이뤄진 국기가 아파트 베란다나 유모차, 자동차와 비키니 등 곳곳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다른 참가국들의 국기도 함께 휘날렸고 독일은 하나의 파티 장소가 됐었다. 개최국과 참가국 모두 이 모든 상황을 즐길 뿐이었다.

정책조사기관 유거브(YouGov)가 최근 독일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독일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를 물은 결과 ‘폭스바겐’이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이는 최근 배기가스 조작 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도 독일인들이 폭스바겐을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상외의 결과였다. 괴테와 앙겔라 메르켈, 國歌(국가), 축구대표팀, 빌리 브랜트 전 총리가 뒤를 이었다. 히틀러는 많이 뒤처진 7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같은 조사에서 독일인의 70%는 자신들의 國家(국가)가 자랑스럽다고 답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독일을 민주주의와 관용의 모범이 되는 국가로 생각했으며 더 이상 죄의식을 갖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75%의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독일이 ‘正常(정상)’ 국가가 될 수는 없고 국제사회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조사의 핵심은 독일인들이 자부심과 속죄의 마음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상관이 없더라도 이러한 내부적 갈등을 풀기 위한 노력이 현재의 독일 문화를 만들어냈다.

우선 政治(정치)를 보더라도 프랑스와 영국, 미국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독일인들은 독일 정부나 외국 정부 기관에 의한 감시체계를 매우 두려워한다. 이는 나치 시절의 게슈타포와 동독의 슈타지 등 비밀 경찰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독일인은 또 이스라엘에 대해 특별한 부채 의식을 느끼고 있다. 독일 내 모든 정당은 성향을 불문하고 모두 평화주의를 추구한다.  

독일인들은 권력에 대한 반항심이 강하다. 자국 내에서건 외국에서건 권력보다 정의를 우선시하는 습성이 있다. 그리스 파산 위기 등 유로 사태 당시에도 독일인들은 규정과 법률에 심한 집착을 보였다. 동맹국 사이에서 독일이 소위 ‘총대’를 메야 한다는 요구도 계속해 거절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이 EU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인가”라는 질문에 총리실 대변인은 펄쩍 뛰며 “생각해보지도 않는 일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독일인들은 계속해서 히틀러 색을 지우길 원하고 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직 大選(대선) 후보였을 당시 독일을 방문했을 때 수천 명의 독일인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열렬한(?) 환영을 절대 자국 정치인에게는 하지 않는다. 히틀러 시절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독일학을 연구하는 티모시 가튼은 “히틀러 때문에 현재 독일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표현이나 용어가 너무 단순하고 조심스러우며 지루하다”고 했다.

1949년 만들어진 戰後 헌법은 히틀러가 갖고 있던 세계관을 배척한 것으로 현재 독일인들의 애국심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 헌법의 1조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될 수 없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독일의 감옥은 저렴한 호텔 수준 정도로 상대적으로 좋으며 망명 신청자들을 가장 환영하는 국가 중 한 곳이다.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소파 위의 독일’이라는 책의 저자인 스테판 구른워드는 “히틀러 때문에 독일이 더 이상 방대한 꿈을 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다시는 무릎을 꿇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거대한 꿈을 꾸거나 흥분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일을 무관심하게 대한다는 설명이다. 독일인들은 도덕적으로 애매하지 않은 대체 에너지 등에 대한 정부의 대규모 개혁 등만을 지지하는 수준이다. 스테판에 따르면 독일인 중 일부는 세계의 파괴자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에서 세계의 구원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꼭 히틀러 때문에 독일인들이 지루한 사람들이 됐다는 것은 아니다. 국제 사회는 독일인들을 여전히 정확하고 신뢰가 가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한 심리학자는 독일인들이 취미생활 등을 매우 다양하게 즐기며 고정 관념과는 달리 매우 괴짜들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중장년층 독일인들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다. 1928~1947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독일에서는 ‘전쟁 당시에 태어난 세대’로 부른다. 1955~1970년 즈음에 태어난 세대는 ‘전쟁의 손자 손녀 세대’라고 칭해진다.

이는 이제 80대가 된 헬멋 레이드볼드라는 심리학자가 만든 개념이다. 전쟁 당시에 태어난 세대인 그는 베를린에 폭탄이 떨어지고 러시아에 의해 점령됐을 때 베를린에서 도망을 나왔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건초 더미에 땅을 파고 들어간 뒤 어린 헬멋을 자신의 배 위에 눕혀 몸을 숨겼다. 발견되면 강간을 당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이 심리학자는 자신과 同세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심리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들의 질병이 전쟁과 관련됐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세대는 말 그대로 “슬퍼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세대”였다. 그는 “나 역시도 혼자 우울해져 울기도 했다. 자꾸 당시의 기억들이 나를 덮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이러한 현상을 다룬 책을 쓰고 있다.

헬멋은 장년층 독일인들에서 가끔 보이는 이상한 행동은 모두 이러한 억눌린 기억에 있다고 분석했다. 왜 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음식이 충분한데도 감춰서 보관할까? 왜 이들은 폭죽놀이나 사이렌 소리를 두려워할까? 왜 노양원에 있는 할머니들은 남자 직원이 기저귀를 갈아주려 오면 막 소리를 지를까?

헬멋은 이러한 모든 상황이 과거의 트라우마가 계속 떠올라서라고 한다.

하지만 전쟁 후 태어난 손자 손녀 세대는 다른 삶을 살아왔고 그들만의 고민이 있다. 그들이 자랄 당시 그들의 부모는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 작가인 사빈 보드는 이 부모 세대가 침착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쟁에서 헤어나왔다고 설명했다. 자녀들은 이러한 가정 환경에서 어떤 말은 해도 되고 어떤 말은 하면 안 되는지, 부모들의 한숨에 섞인 의미는 무엇인지를 추측하며 지냈다. 자녀들 역시 부모의 트라우마를 이어받게 된 것이다. 이들이 성인이 되자 그들은 부모에게 묻는다. “왜 우리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었나요?”

최근 이러한 손자 손녀 세대의 모임 단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헬멋에 따르면 독일 중년층 40%가 이러한 세대를 넘나드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독일인은 법을 존중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는 고정관념은 이런 현상에서 비롯됐다. 사빈 보드는 손자 손녀 세대는 삶에 대한 활력이 다른 세대보다 적다고 분석했다.

‘나의 투쟁’에 대한 저작권이 만료되는 등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독일 사회는 다시 한 번 복잡해지고 있다. 독일인 5명 중 1명은 이민자이며 히틀러 시대를 직접 겪은 친인척도 없다. 대다수의 젊은 세대는 어느 정도는 역사 교육을 받아 히틀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수인 신나치주의자들은 콘서트 등에서 ‘Sieg heil(승리 만세)’를 외치기도 한다. 다른 독일인들은 더 복잡한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과도하게 친절함을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난민들을 돕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람들의 예다.

독일은 집착증 환자 정도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독일 주정부들은 자동차 번호판에 히틀러를 상징할 수 있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히 막고 있다 (HH 88과 같은 번호판을 예로 들면 Heil Hitler(히틀러 만세)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금지된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나의 투쟁’이 공개적으로 재출간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바이에른州는 2012년에 유대인과 집시들의 대표를 불러 회의를 했다. 이들은 바이에른州가 연구비용을 지원해 極右(극우)주의 성향의 출판물들을 서점에서 판매되지 않도록 하고 ‘나의 투쟁’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쉽게 설명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합의했다. 주의회는 이러한 방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한 민간 연구소가 선정돼 작업을 시작했으나 이스라엘 피해자 단체와의 갈등으로 인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독일 16개 연방주의 법무부장관들은 ‘나의 투쟁’을 국민을 선동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기소하겠다고 밝혔다.

어떠한 국가를 좋은 국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지금의 독일이 그 중 하나다. 독일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독일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다면 그들 총리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에 히틀러 수염을 그려 넣기도 한다.

독일의 타블로이드지 블리드는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협박을 당하는 것을 지긋지긋해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유로 사태 당시 그리스가 뜬금없이 독일에 나치 범죄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등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온 것에 대한 기사였다. 한편 다른 좌파 독일인들은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自國 이익을 위하려 노력하는 등 새로운 민족주의가 등장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가들은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을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일에게 세상은 아직 매우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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