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魔)의 종합주가지수 1000


1929년 어느 날, 조지프 케네디(Joseph Kennedy 1888-1969)는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닦다가 얼른 달려가서 주식을 깡그리 팔아치웠다. 경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구두닦이들이 뮤추얼 펀드(mutual fund)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을 보고는 주식이 상투를 잡았음을 직감했던 것이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1929년 10월 28일 미국의 월요일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Black Monday). 그 어둠은 무려 4년간이나 미국 전역을 뒤덮었다. 그 4년간 제다이(Jedi)의 기사들이 몰락한 신세계는 시쓰(Sith)의 무리들에게 온통 지배되었다.

그러나 세상을 읽을 줄 알았던 조 케네디는 파국 직전에 유유히 빠져나가 신세계만이 아니라 신구(新舊)세계를 통틀어 누구 못지 않은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는 그 부를 배경으로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여 한 아들은 대통령으로, 또 한 아들은 상원의원에 이어 법무장관으로, 막내아들은 상원의원으로 키웠다.

종합주가지수가 2005년에 다시 1000을 돌파했다. 이번에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며, 증권전문가들과 증권투자가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다. 단기간에 한 해에 두 번이나 1000을 돌파한 것이 예사롭지 않단다. 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에 또 다시 1000을 하향 돌파할 기세가 보이자, 고유가, 원화 절상, 수출 감소, 투자 부진, 내수 침체, 부동산 매력 등을 내세워 조심스런 예상을 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종합주가지수는 6공화국 헌법이 발효한 이후 4정권에서 2년차 또는 3년차에 한 번씩 도합 4번 1000을 돌파했다. 1989년, 1994년, 1999년, 2005년이 바로 종합주가지수 1000의 해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994년의 희망은 1995년에도 잠깐 고개를 내밀었고 1999년의 장미꽃은 시든 줄 알았지만 2000년에 다시 잠깐 피었다. 그러나 가장 오랫동안 태평가를 불렀던 김영삼 정부도 90일을 간신히 넘겼는데, 그것은 1997년 외환위기의 쓰나미를 만나면서 한국판 검은 월요일로 마감했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비극으로 끝난 셈이다. 노태우 정부는 4일 천하, 김대중 정부는 18일 천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일단 10일은 넘겼다.

시가총액이나 주도종목, 외국인 비중(40.9%) 등을 감안하면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경제의 가장 객관적인 지표인 주식의 그래프를 보면, 1989년 이후 한국의 역대 정부는 경제 부문에서 전혀 기여한 게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착오적 애국심으로 열심히 경제의 발목만 잡은 셈이다.

몇 년 전에 나는 ‘주식시장은 시장경제의 꽃’이라는 글을 통해, 한국의 증시에 대해 희망을 갖지 말라고 했다. 한국이 선진경제권으로 발돋움하려면 박정희 식 정부 주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시장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황제적 대권과 더불어 저마다 민주주의를 독점한 6공화국의 각 정부는 개혁의 완장을 차고 박정희 때보다 못한 반시장적 정책을 다투어 쏟아내는 걸 보고, 주식시장이 더 이상 클 수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저금리와 기업의 재무구조개선, 경쟁국의 반밖에 안 되는 주가수익률(PER) 등 기계적인 경제지표만을 보면,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넘어 2000을 돌파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시장은 정직하다.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경제는 자꾸만 흔들거리다가 여차하면 와르르 무너진다.

한국 경제호가 나아가는 길에는 큰 암초들이 가로막고 있다.
첫째, 개혁의 가면을 쓴 사회주의적 정책들.
둘째, 독재정권의 전투경찰을 연상시키는 노조가, 고작 10%의 노동자를 대표할 뿐인 노조가, 부패한 권력집단에 지나지 않는 노조가 지배하는 노동 시장의 경직성.
셋째, 북핵과 북한인권을 둘러싼 남남 갈등의 심화와 남북 관계의 예측불가능성.
넷째, 정부의 의도적 부추김으로 날로 커지는 국민의 반기업 정서와 그에 따른 기업가 정신의 실종.
다섯째,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농민의 불안을 악용하는 정부여당과 어용 시민단체의 아마추어리즘.
여섯째, 개미군단의 몰락(50%를 상회하던 것이 이제 20% 이하의 비중으로 떨어짐)에 이어 그보다 나을 게 없는 각종 소규모 주식펀드의 난립.
일곱째, 외환위기의 구세주로 등장한 외국투자가의 과도한 비중. --지배구조개선이란 미명하에 대기업의 최대주주들과 그 우호 세력을 위축시킴에 따라, 외국인 투자가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우량 주식을 입도선매하여 거의 한국 증시를 장악했지만, 이들은 경제위기나 안보위기 시 언제든지 떠날 게 명약관화하다.

1995년처럼 삼성을 비롯한 몇몇 대기업의 선전(善戰)으로 좌초하지 않고 간신히 제자리에서 맴도는 한국 경제호가 위에서 언급한 7개의 거대한 암초를 피해 선진경제의 해양을 마음껏 누비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낙관하는 자는 공산주의 혁명 60년 동안 날마다 ‘내일은 천국’을 약속하는 북한 정권을 철석같이 믿는 순진무구한 사람들과 죽이 상당히 잘 맞을지 모르겠다. 머잖아 그들과 죽이나 제대로 끓여 먹으려나.

경제는 기적이 없다. 뿌린 대로 거두고 가꾼 만큼 거둔다. 그리고 주식은 한 발 앞선 미래의 언덕에서 경제를 곧이곧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200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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