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육성 증언」⑥

‘6·29시나리오’를 일러주다

1987년 6월28일 일요일 아침 9시 50분 全斗煥 대통령은 나를 청와대 식당으로 불러 약 50분 동안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담화문 작성에 참고하도록 6·29선언의 내용과 후속 일정을 미리 구체적으로 일러주면서 직선제 수용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盧 대표가 내일 직선제를 받자고 터뜨린다

대통령: 盧 대표 의견도 그렇고… 직선제로 나가야겠어. 지식층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그걸 원하고 있어. 우리가 직선제를 안 받을 이유가 없다. 선진국에서도 직선제를 하는 나라가 거의 없고 또 직선제는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승복을 안 해서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에 내가 그 동안 안 받았는데 직선제를 하지 않음으로해서 야기되는 혼란보다는 적을 것 아니냐. 국민이 원하면 해보자.
내가 지금까지 그걸 안 받은 게 민정당이 약하다고 해서 그런 건 아니다. 金大中, 金泳三의 지지가 많은 건 아니야. 직선제를 해서 나라가 망하는 일이 생기면 불행하지만 중산층이 혼란을 원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주장해온 대로 대통령선거법을 고쳐서 직선제에 가까운 간선제를 할 수 있지만 국민들이 직선제를 하자고 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시끄러워서는 평화적 정부 이양도 안 될 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우리가 약속한 올림픽도 안 될 것 같아.
내 소신은 정권이 민정당에서 떠나도 올림픽은 성공시켜야 되겠다는 거야.
그게 나라가 잘 되는 길이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데 내일 민정당에서 盧 대표가 건의하는 식으로 하기로 했다. 오전에 中執委(중집위)를 모아서 盧 대표가 모든 공직을 걸고 당에서 직선제를 받자고 터뜨린다. 갑론을박 나오지 싶다. 중집위가 오전에 열리면 오후에 의원총회를 하고 여기서 의견이 결집되면 盧 대표가 30일 정도에 오전 중으로 청와대로 와서 나한테 건의한다. 그러면 나 혼자서 결정하는 것보다 신중을 기한다는 뜻에서 30일 오후에 黨政閣僚會議(당정각료회의)를 하고 7월1일에는 국정자문회의를 해서 의견을 묻고 7월2일 오전에 내가 특별담화를 발표한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호소력 있게 문안을 준비해야겠어.

金大中이나 金泳三이나 대선에 안 나올 리 있나

대통령: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나서 닷새 후에 7월7일 당 총재직을 사퇴함으로써 정치인과 지식인층, 그리고 국민들한테, 사심 없이 해온 내 이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金大中은 직선제가 되면 대통령 선거에 안 나가겠다고 했지만 안 나올리가 없다. 金泳三도 마음을 비웠다고 했지만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런 말은 안 하지만 행동으로 사심이 없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확실히 하는 거야.
당 총재직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영구 집권이라고 하고 또 현실적인 권력 구조로 볼 때 다음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분명해지게 된다.
전국민과, 전세계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던지고 프리(free)하게, 페어플레이(fair play)하는 거다. 당에서는 자율적으로 총재를 선출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金泳三과 대화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가 국가원수에 대해 면담 신청을 해야 하게 된다. 그가 나와 회담하자는 소재가 없어진다.

盧 대표의 건의안 내용 골자를 조목조목 읽어주다

대통령: 나는 국가원수로서 외형상 초월한 입장을 가지는 거다. 그렇게 해야 민정당이 좋아지고 내가 섭정을 한다느니 하는 말이 없어진다. 盧 대표를 대통령후보로 뽑았는데 내가 밀어주어야지.
우리가 밀려서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게 나도 입장이 떳떳하고…. 내가 총재까지 계속 맡으면 완전히 민정당 보스로서 金泳三과의 회담을 회피할 수 없다. 盧 대표가 내일 건의할 내용은 (종이를 호주머니에서 꺼내서 보면서 구술),
· 조속한 시일 내에 직선제 개헌을 여야 합의로 한다.
·새로운 선거를 통해 평화적 정부 이양을 한다.
· 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으로 확인해서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민정당으로서 내각제 소신은 변함 없다.
대통령선거법 개정 및 공정선거관리, 인신 공격, 선동, 지역감정 추방 정치는 정책 대결의 場(장)이다.
·반목·대결 제거, 국민적 화해 단합을 위해 金大中을 위시, 대폭적 사면 복권을 건의한다. 시국관련사범 중 살상 파괴, 방화범 제외, 극소수 인원을 제외하고 대거 석방한다.
·인권을 최대한 신장하고 구속적부심 전면 확대, 기본권 보장, 인권단체 회합을 통해 침해 사례 개선, 정부가 그런 사례 없도록 유의한다.
· 언론자유 창달-언론기본법 개정·폐지·논의. 폐지할 경우는 다른 법으로 대체. 지방주재 기자 부활, 프레스 카드 제 폐지, 지면증면 등 언론 자율에 맡긴다.
· 사회 각 부문의 자치 자율 최대한 보장. 지방의회 구성은 예정대로, 시도 단위 의회 구성도 추진.
· 대학의 자율성, 교육자치의 실현, 예산자율, 입시·졸업제도 개선, 우수학생 장학금 예산 반영
· 정당의 건전활동 보장, 대화와 타협 풍토 마련, 국리민복 위한 건전한 활동 보호, 국법질서 준수, 국론통일을 위한 정치, 폭력 통한 의사 관철에는 여당은 한 발짝도 양보 할 수 없다.
· 과감한 사회 정화 조치. 잔존 비리, 유언비어 추방.
· 평화적 정부 이양과 세계인에 대한 우리 국민의 약속인 88서울올림픽을 어떤 일이 있어도 성공적으로 완수.
· 모든 정당은 차기정권을 책임지려면 국민 앞에 정책을 내놓고 심판을 받아야한다. 폭력을 쓰면 안 된다. 귀한 남의 자식을 선동하여 제물로 삼지 말자.
이상이 건의안 내용의 골자다.

군대가 나오면 쿠데타 위험…. 나라가 어찌되겠나

대통령: 나는 평화주의자, 민주주의자다. 힘으로는 간단하다. 군대가 나오면 항상 쿠데타 위험이 있어. 그러면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오늘부터 수고해야겠어. 각계 각층 50명 정도로 黨外律士(당외율사)도 동원해서 뒤에서 팀을 만들어 선거를 치르는 아이디어와 홍보 방안도 연구하도록 해봐.

歷史가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듯

나는 토요일인 27일에 대통령으로부터 직선제를 수용하는 특별 담화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고 나서 작업을 시작했지만 골격을 짜는 정도였다. 27일에 全 대통령은 盧 대표가 건의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린다고 했으므로 盧 대표의 건의가 나와보아야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작업은 그 이후로 미루고 있었다. 그때까지의 개헌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89년 이후 개헌 논의(86.2.24), 여야합의에 의한 임기내 개헌 수락 용의(86.4.30), 민정당의 내각책임제 당론 결정, 개헌 논의중단 선언 및 당시 헌법에 따른 정치 일정 추진(87.4.13) 등의 변화 과정을 밟아왔었다. 이것이 다시 직선제 수용으로 바뀌는 데 따른 논리와 일관성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실무적인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문제를 놓고 그 동안의 담화문을 검토하고 있던 28일 일요일 아침 나는 대통령 부속실로부터 오전 9시 반까지 본관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일요일이었으므로 대통령의 집무실이 아닌 본관의 대식당으로 쓰는 방으로 안내되어 조금 있으니 全 대통령이 콤비차림에 밝은 표정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활기찬 음성으로, 담화 작성에 필요한 배경으로 직선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면서 ‘6월29일 오전 盧 대표 선언, 6월29일 오후 의원총회, 6월30일 오전 盧 대표가 全 대통령께 건의 전달, 6월30일 오후 당정각료회의 소집, 7월1일 직선제 수용의 국정자문회의, 7월2일 대통령 특별담화 발표’라는 시나리오를 일러주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그것을 보면서 6·29선언의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구술해 주었다. 며칠 전부터 직선제로 방향이 선회되는 느낌을 받고있었고 하루 전에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들었기 때문에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구체적인 내용을 듣는 순간 나는 역사가 큰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듯한 충격과 흥분으로 잠시 멍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우선 대통령이 민의를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점과 시국을 이상한 극한 상황으로 몰고가지 않고 지극히 정상적인 방향으로 끌고가고 있다는 점에 안도감을 가졌다.
그 다음으로 생각이 미친 것은 모든 국민이 소망하는 이 좋은 소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내놓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全 대통령을 위한 홍보 고려 없어

나중에 이 대목을 읽어보고 이 때 이미 全 대통령이 두 金씨가 각기 출마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는 데에 놀라움을 가지긴 했어도 이 당시에는 과연 그럴까 하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보다는 全 대통령이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이 결단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자신의 홍보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더 컸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이 하는 말을 받아 적으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가질 수 없었으므로 대통령의 지침을 받는 것으로 그 자리를 물러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대통령이 내리는 지시에 대해서 본질적인 내용을 놓고 질문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고, 또 대통령의 지침은 담화 준비에 필요한 내용에 관한 한 충분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만난 뒤 나는 李鍾律 공보 수석비서관의 집으로 가 대통령이 한 말을 알려주고 李 수석으로부터 담화문의 구체적인 내용과 골격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李 수석과의 얘기를 마치고나서 나는 담화 작성에 필요한 좀더 좋은 생각을 구하고 대통령이 말하는 직선제 시나리오의 의미와 앞으로의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고싶은 생각에서 나의 전임자로 있었던 崔모 당시 K신문사 사장을 찾았다.
대통령께는 이미 오전에 담화문을 쓰는 데에 崔 사장과도 협의하겠다는 생각을 말해두었으므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대통령의 홍보를 다루는 참모의 입장에서 崔 사장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는 두 가지였다. 그 무엇보다도 이 시나리오가 全 대통령의 홍보를 고려하는 바탕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는 분석 아래 첫째는 5공화국의 출범 과정에 있었던 문제 등으로 인해서 대중적인 인기가 없고 심지어는 상당 부분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全 대통령으로서는 당시 모든 국민을 환호하게 할 폭탄적인 이 홍보의 好材(호재)를 놓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통령 재차 면담 신청

이 선언을 全 대통령의 이름으로 함으로써 그가 묶었던 역사의 매듭을 풀면 그에 대한 원한과 증오 같은 것도 재임 중에 씻어 흘려보낼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에 국민과 새롭게 친해 질 수 있는 절대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둘째는 실무적 차원에서만 볼 때 盧 대표의 6·29선언과 全 대통령의 수용조치가 발표될 7월2일까지의 시간적 간격이 너무 크다는 점이 홍보 효과면에서 全 대통령의 입장이 부각되게 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盧 대표의 선언이 나가게 되면 모든 언론보도매체는 그 뉴스로 뒤덮게 괴는데 대통령이 그런 당연한 일을 놓고 이틀 동안이나 새삼스럽게 회의를 해서 의견을 구한다는 것도 우습고 이틀 동안에 언론매체는 6·29 이후의 문제를 가지고 보도할 것이므로 7월2일의 결단은 언론으로부터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 아래 6·29를 全 대통령의 선언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6·29를 하루 연기해서 담화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벌고 최소한 오전에 盧 대표가 발표하면 全 대통령이 오후에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담화를 발표해서 오후에는 나란히 보도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나서 나는 오후에 청와대로 다시 가서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다. 대통령께 직접 건의하기 전에 나는 全 대통령의 장남 宰國씨를 만나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대통령을 설득하거나 보고해달라고 말했다.
宰國씨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어제 이미 두 분 사이에 모든 문제가 다 얘기가 됐는데 그것을 바꾸려 하시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내각 생각한 것은 이 시나리오를 만들 때 이미 그러한 홍보 측면의 고려를 한 것이라면 할 수 없지만 그런 것을 검토하지 않았다면 직전에라도 일단 그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6월28일 오후에 대통령을 다시 만나서 직접 건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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