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은 목표로 하던 4강에는커녕 16강에도 들지 못했다. 박주영 때문에 꿈에 부풀었다가 박주영 때문에 꿈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언론의 호들갑과 국민의 냄비 근성으로 축구 천재 박주영을 성인축구 무대에 특별 출연시켜 불꽃보다 화려한 그 연기를 바라보며 5천만이 잠시 열광했지만, 강철과 전자회로로 만들어진 축구 로봇이 아닌 축구 선수의 체력이 고갈되면서,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그의 체력이 고갈되면서 한국은 브라질에 완패, 전 국민이 한바탕 봄꿈에서 깨어나 차가운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설기현 선수의 말대로 박주영 중심으로 짜진 작전계획은 치명적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그를 교체 한 번 않고 계속 뛰게 했던 것이다. 나이지리아전에서 팔이 빠진 상태에서도 박주영은 이를 악물고 뛰어 이른바 ‘박주영 타임’에 기적 같은 동점골을 뽑아내고 역전골을 유도했지만, 강력한 우승후보 對브라질전에서는 불굴의 그 정신력과 확신에 찬 그 기도도 솜처럼 피곤한 그 몸을 이끌어갈 수가 없었다. 기적은 종료 휘슬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기적은 2번 일어나지 않는 법!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박주영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긴 적이 있다고 하지만, 진검 승부에서 한국은 요행을 바라고 상대 문전에 공을 길게 차는 것 이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수비에 이은 역습을 노린다는 작전에 의해 박성화 감독은 외팔이 박주영을 수비에도 적극 가담시키는 바람에 마라도나처럼 드리블하여 펠레처럼 골인 시킬 것 같은 박주영의 신기는 상상 속에서만 화려하게 꽃필 수밖에 없었다.
4년간 청소년 대표팀을 조련한 박성화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과 이를 적극 후원한 축구협회는 크게 칭찬 받아야 한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히딩크 감독과 그를 적극 지원한 그 당시의 축구협회 이상으로 둘 다 훌륭한 일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마(魔)가 끼었다. 호들갑 여론의 마가 끼었다. 히딩크 같았으면 단호히 눈에 선히 보이는 그 마를 뿌리쳤을 것이고, 히딩크 같았으면 국민도 냄비 기질을 발휘하지 않았을 것이고, 거액을 들인 외국인 감독이었으면 축구협회도 돈이 아까워서라도 중심을 잡았을 것이다.
일본이 ‘괴물’ 히라야마 선수를 보호했듯이 박주영을 보호하여 K리그와 월드컵 예선에 차출하지 않았으면, 박주영은 브라질의 골문을 부수진 못했어도 한 번 정도 출렁거리게 했을지 모른다. 지더라도 2:1 정도로 졌을 것이다. 아니면 비겼거나. 대신 스위스전은 2:1로 지지 않고 2:1로 이겼을 것이다.
나는 박성화 감독이 박주영을 세 경기 모두 후반전에 기용하길 바랐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그의 비중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브라질에 완패하는 것을 보고, 나는 한 손을 들어 만세를 불렀다. 이겼어도 한 손만 들고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비록 16강, 8강, 4강의 꿈은 깨어졌지만, 박주영 선수를 살렸다는 데서 한 손만의 만세를 부른 것이다. 이겼어도, 박주영의 선수 생명을 아주 위태롭게 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차마 두 손을 들어 만세를 부르진 못했을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전후반을 다 뛰어야 했다는 데서 박주영은 동료 선수와 기량 차이가 현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명이 뛰는 경기에서 이것은 치명적 약점이다. 4년간의 한솥밥으로도 세계무대에도 통하는 스타를 한 명밖에 못 키웠다는 것은 선수 양성 방법을 전면적으로 되돌아보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타만큼은 빛나지 못해도 예비 스타가 대여섯 명은 빛을 발해야 된다. 그래야 스타가 부상으로 잠시 뛰지 못해도 비기기 작전은 언제든지 성공시킬 수가 있다.
박주영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남미 축구를 한다. 브라질에 유학 다녀오면서 축구에 눈을 떴다. 거기에다 그는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공을 차는 유럽 축구도 할 줄 알고 몸싸움에서도 별로 밀리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투지를 앞세워 몸싸움을 일삼다가 용케 골문 앞에만 가면 골 넣을 욕심에 스스로 먼저 흥분하여 헛발질을 일삼는 한국 축구의 고질에서 벗어나, 박주영은 골문 앞에 갈수록 생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처럼 한층 침착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최적의 상황, 또는 최고의 확률을 재빨리 판단하여 반 박자 빨리 몸을 움직이는 축구를 한다.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축구를 한다. 또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고 필요한 때에 힘을 집중시키는 축구를 한다. 버릴 것 하나 없는 경제적인 축구를 한다.
거기다가 그는 환호하는 팬들에게 산골 소년처럼 수줍어 할 줄 알고 축구에 대해서 늘 겸손하고 동료에게 뽀뽀를 해 주는 등 친화력이 좋아 질시와 왕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는 축구를 사랑한다. ‘굼벵이’ 애인 못지 않게 사랑한다. 10여년간 세계바둑대회 우승을 약 3분의 1이나 차지한 이창호 9단이, 바둑의 불가사의 이창호 9단이 바둑을 사랑하듯이 박주영은 축구를 무지무지 사랑한다. 늘 생각하고 늘 배우고 늘 익힌다.
일본은 남미에 축구 유학 보낸 청소년만 1만여 명이다. 체격조건이 백인과 흑인에 뒤지는 우리나라 선수는 발은 남미를 배워야 하고 머리는 유럽을 배워야 한다. 아직은 미완의 대기이지만, 박주영이 이 조건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 우리도 남미로 축구 유학을 많이 보내야 한다. 최소한 1천여 명은 보내야 한다. 유럽으로도 500여 명은 보내야 한다. 그래서 제2의 차범근, 제2의 박지성을, 제2의 박주영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한국인의 집요함과 부지런함, 신바람, 영리함 등이 어울려 세계 축구의 한 페이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스타가 한 명 빠져도 예비 스타들이 그 자리를 그런 대로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감독도 체계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유럽과 남미에 될 성 부른 사람을 중심으로 2년 이상 장기 연수를 보내야 한다. 그러면 능히 한국 감독 중에도 제2의 히딩크가 나온다. 편견과 똥고집만 버리면, 한국인은 스펀지처럼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고 물 찬 제비처럼 날아가는 국민이니까.
박주영은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에 몸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크게 발전할 것이다. 장차 빅 리그에서 차범근 이상으로 크게 활약할 것이다. 문제는 그를 뒷받침할 선수들이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길러야 한다. 베켄바우어의 말처럼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는 저 불멸의 펠레도 자일징요, 지토, 바바, 가린샤, 자갈로 등의 동료 스타들이 없었으면, 월드컵 3회 우승은커녕 단 한 번의 우승도 브라질에 안기지 못했을 것이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라 11명이 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2005.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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