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육성 증언」⑦

대통령의 6·29선언 배경 설명

1987년 6월28일 오후 3시 40분 全斗煥 대통령은 직선제 선언을 대통령 명의로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는 필자의 건의를 받고 6·29의 배경 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장남 宰國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金大中을 풀어주면 金泳三과 부딪치게 돼

대통령: (본관 대식당에서 필자의 건의를 듣고 나서) 직선제 이외에는 국민 대중과 중산층에 뭘 갖다대도 속임수 인상을 주어서 바람직하지 않다. 힘으로 해서 盧 대표가 대통령 된다고 해도 1년도 못 가.
저 사람들이 지금 올림픽을 담보로 잡고 있는데 다음 정권을 힘으로 만들면 올림픽도 못 치른다. 그러면 역사의 큰 호기를 놓친다.
내손으로 우리 대통령을 뽑겠다는 직선제 민의를 우리가 받아준다고 해서 야당한테 지지 않는다.
朴 대통령이 3선개헌을 해서 선거를 했을 때 무리는 있었지만 근소한 차이로 이겼지 않나. 그 때 재야 세력이 별짓을 다하고 국민들이 잘산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지만 여당이 이겼다.
지난 12대 총선 때 우리가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는다고 국민이 생각했기 때문에 야당 의석이 좀 늘어났어. 그 때 정치규제를 선거하기 6개월 전에 풀었어도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공천을 놓고 파벌끼리 싸우는 게 야당 생리 아니냐. 金大中을 풀어주면 金泳三과 부딪치게 돼. 외부적으로는 역할분담론이 나와 있지만…. 직선제를 받는 것은 야당과 언론의 급소를 찌르자는 거야. 朴 대통령은 혁명을 하고 나서도 尹 전 대통령과 직선으로 싸워서 이겼지 않나.
민주주의를 해보자는 게 내 소신이고 내 철학이야. 자유당과 공화당 정권을 거치면서 역사적으로 겪어온 악순환을 내 시대에 끊고 반체제니 반정부니 하는 세력을 직선제를 가지고 일단 정리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얼키고 설킨 것, 원한 많은 사람들한테, 누가 권력을 잡든, 어떤 정권이 잡든지 간에 맺힌 원한을 모두 풀어주겠다, 그래서 모두가 깨끗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라의 백년대계를 향해서 출발하자는 거지. 내가 그 뚜렷한 명분과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 직선으로 다음 정권을 창출해내야 돼. 대통령후보는 盧泰愚 대표 아니냐. 지금 야당이 여당 대통령후보를 자꾸 깎아내리고 있지 않나. 盧 대표가 부각되도록 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다. 盧 대표 이름으로 해야 돼. 나는 국민으로부터 정치는 무능하구나 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盧 대표가 부각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내가 盧 대표한테 직선제를 받도록 시킨 것이다. 2주일 전에 그랬는데 盧 대표가 펄쩍 뛰었어.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고…. 그래서 내가 生卽死, 死卽生(생즉사 사즉생)이라고 했다. 그 쪽에 팀이 있는 모양인데 극비리에 작업을 해왔다. 더 이상 보안을 하기도 어려운 모양이야. 괜히 질질 끌어서 미루면 담화 발표의 참뜻이 없어진다.

盧 대표는 말을 못 하나 얼굴이 못 생겼나…

대통령: (2층의 거실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계속) 나는 역사에 盧 대표의 이름이 남아도 좋다. 내 다음 대통령이 우리 나라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키고 올림픽도 잘 치르고 국력 신장을 시켜야하는데 그러자면 우리 나라 상황으로 보아서 盧 대표 같은 인물이 일관성 있게 밀고가도록 내가 확 키워주어야 된다. 나는 그런 건의에 반대하다가 할 수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되어도 그걸로 나라 잘 되는 일이 있으면 아무 상관이 없다.
이번에는 민정당이 중지를 모으고 재야의 의견도 수렴하고 최종 의견을 도출해서 대통령께 건의하는 모양을 보이는 게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민정당이 설 땅이 없다. 29일 중집위에서 盧 대표가 자기는 사심이 없다, 모든 공직을 걸고 건의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하고 내일 신문에 터뜨린다. 30일 오전에 나한테 와서 보고하고 나도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는 게 효과 면에서도 좋겠다.
지난번 민정당 의원총회에서도 각 시·도별로 한두 사람씩 직선제 얘기를 했었다. 민정당 의원들이라도 의견 일치를 보고 결의한 다음에 나한테 건의하는 형식을 취해야지 그렇지 않고 이것마저 내가 내려주는 것으로 하면 부작용이 난다. 손을 들어도 민정당이 들어야지.
4·13을 철회한 지가 엊그제인데 대통령 각하가 백기 드는 결과가 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盧 대표가 얘기했다. 盧 대표가 건의하더라도 내가 결단을 내리는 것은 별개 문제다(이상의 얘기를 하는 도중에 全 대통령은 내실로 잠시 들어갔다가 나와서 얘기를 계속했는데 이 때 盧 대표와 통화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2주일 전에 盧 대표와 저녁을 함께 할 때 내가 직선제를 검토해보라고 했더니 盧 대표가 펄쩍 뛰었다. 그래서 내가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했어. 그리고 인간사회의 모든 원리가 백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에 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朴 대통령도 처음에 이름 없는 육군 소장이었지만 尹潽善씨와 직선으로 싸워서 100만 표를 이겼다.
거기에 비하면 민정당은 창당된 지 6, 7년이나 되었고 당 조직이나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에서도 朴 대통령 때보다는 낫다. 朴 대통령이 얼굴이 잘 생겼나, 말을 잘했나, 유머도 없고 눈매가 무서워 표를 끄는 그 무엇이 뭐 있었나.
盧 대표는 말을 못 하나, 얼굴이 못 생겼나. 金泳三, 金大中 누가 나와도 자신 있다.
그렇게 얘기를 해주었는데 어제 盧대표를 만났더니 극비리에 연구해서 나온 것을 가져왔는데 그것이다.
30일 盧 대표가 나한테 와서 건의하면 이틀 지난 후 7월2일에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담화를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7월2일에 하는 게 너무 늦다면 1일에 해도 좋겠지. 준비를 철저히 해서 결단의 내용을 심도 있게 쓰고 역사성이 있는 내용으로 작성하는 게 필요하다. 盧 대표 개인이 단안을 내린 것으로 내일 쇼크 요법을 쓰자.

이번 담화엔 4·13 미안하다 내 오판 시인해야

대통령: 대통령이란 통치권자로서 초연한 맛도 있어야 돼. 내가 그 동안 경제긴축정책을 썼는데 내 생각으로는 물가가 안정되어야 나라가 잘 된다. 안 그러면 도둑질하는 사람들만 생긴다. 어느 천년을 가도 나라가 발전될 게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처음에 물가안정정책을 썼을 때 반발이 아주 컸었다.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안정론과 성장론이 팽팽하게 맞섰었다. 공무원도 그렇고 정당도 그렇고 모두 성장제일주의였다. 그래서 내가 결심을 할 때 흔들렸었다.
그 때 최종 결심을 하고 나서 내가 그 사람들한테 이야기해 주었다. 정부가 인기정책을 쓰면 기업이 뻗을 수 없다고. 기업이 문을 닫으면…, 경제가 잘못되면 정치가 안 된다고 그랬다.
나는 안정이냐 성장이냐,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안정이다,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지침을 주었다.
대통령으로 권력을 가지고 밀어붙였는데 만약 그 때 실패했다면 성장도 안 되고 물가도 못 잡고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가지고는 정부가 설 땅이 없어진다.(중략)
이번 담화에서는 4·13도 미안하다,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고 시인해야 돼.
통치권자는 국민이 원해도 무지무지한 고집이 있어야 돼. 나름대로의 철학을 바탕으로 밀고 가야 돼. 내가 이런 상황에서 힘으로라도 끌고 갈까도 했는데 정치를 전망할 때 내가 정권을 놓고 가면 우리 민정당과 여당권에서 누가 나와도 어렵게 되어있다.
국민 모두가 유신 때 질려서 내손으로 대통령 뽑자는 갈증을 내고 있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도 공직자들이 나 하나를 믿고 있다. 민정당도 그렇고 국민도 나를 믿는다.
새 사람이 들어와서 지도자로서의 신뢰와 믿음을 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나를 상대로 정권을 쓰러뜨리려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4·13, 박종철 사건, 범영 사건,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나서 경찰의 부도덕성이 드러나고 국민이 호응할 기회를 주었다. 여기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
무리하게 만들어주어도 그 정권으로는 88올림픽을 치를 수가 없다. 힘이 없어서. 새 정부가 국민의 신뢰도 받고 우방 외국의 신뢰도 받아야 힘이 있는 건데…

盧 대표가 2주 이상 연구해서 그 결과를 가져왔다

대통령: 정상외교란 진정으로 인간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우방에서는 저 사람이 나쁘다해도 한국을 위해서는 있어야한다는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그렇다. 국가원수의 정상외교를 통해 정상 간에 개인적 유대가 강화되어야 한다.
국민적 저항에 반대되는 의견으로 어거지로 만들면 힘이 너무 빈약하게 되고 그러면 차고 나가기가 힘들다.
군부도 그렇다. 나는 계급이 낮을 때부터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나를 진심으로 받들어주려고 한다. 군부도 약간만 방심하면 적든 크든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군부란 최후 보루인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직선제로 밀어제끼면 절대 되게 되어있다. 나는 확신을 갖고 있다. 내가 그동안 직선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명분이 없어서 못 하고 있었다.
盧 대표는 ‘쉽게 갈 수 있는데 꼭 해야 되느냐’라는 것이었지만, 나는 ‘국민 감정을 상하면 다만 몇 달도 못 참는 게 국민이다. 근본적으로 올림픽을 방해하는 용공 세력이 있지 않느냐, 이들 세력이 집요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이 헌법으로 대통령이 되어도 끌고 갈 수가 없을 거다’라고 얘기했다.
이 헌법으로 혼자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해서 대통령이 되면 세계적으로 빈축을 사고 권위도 없어져서 안 된다, 내가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주었다, 지금은 없지 않느냐고 내가 盧 대표한테 얘기했다.
朴 대통령은 평생 할 각오로 혼자 나가서 혼자 됐으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려고 하면서 막연히 정권적 차원에서 대통령을 맡는 것으로 되면 천하 없는 사람이라도 국민들의 감정을 순화시킬 수 없다고. 그래서 내가 盧 대표 보고 우리가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盧 대표가 깜짝 놀라. 내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어려울 것 없다, 당에서 어떤 명분을 찾을지 연구해보라, 민정당이 죽고 사는 문제라고 했다. 盧 대표가 2주 이상을 연구해서 어제 그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민정당이 절대 내각제를 해야 한다고 보지만 민의를 수렴한 결과 직선제를 해야 되겠다고 건의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밝히면 모양이 좋다.
내가 이것 저것 다 항복하는 모양이 되면 치적이 무산된다. 내 명의로 직선제 결단을 내리면 쇼크 효과는 있겠지만 2, 3일뿐이다. 역시 당 중심으로 하는 것이 가장 무리가 없고 국민 여론을 흡수 소화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내가 느닷없이 직선제 받자면 당이 우습게 돼

대통령: 민정당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느닷없이 직선제를 받자고 하면 당이 우습게 된다. 그러면 안 된다. 민정당에서도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고 고민하는 과정을 겪어서 盧 대표가 유명하게 부각되어야 해. 당이 내가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부각시켜주어야 민정당도 산다.
나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니 정치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은 누가 했다고 하겠느냐. 나는 여론도 모르고 4·13을 하고 철회도 하는데 민정당은 그래도 올바로 한다 하는 각도로 보이도록 해야 한다. 정당이라는 게 너무 일사불란하게 보여도 안 좋아.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고 토의도 하고 의견이 많이 나와야 돼.
내가 그 동안 당에서 異見(이견)이 나오면 혼을 내주고 하면서 7년을 끌고 왔는데 이번에는 당에 얘기할 기회는 주어야 된다.
시국을 풀어가는 최종적인 책임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민정당이 소외되지 않고 직접 논의하는 과정을 비추어주도록 하고 내 담화가 효과가 감퇴되더라도 심사숙고해서 고민한 다음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역사의 시나리오를 짜는 사람

全斗煥 대통령이 4·13호헌 선언에 따른 정치 일정에서 직선제 개헌을 통해 차기 정권을 창출하기로 방향을 선회한 배경과 6·29의 시나리오 등을 스스로 상세하게 나에게 털어놓은 것은 6월28일 일요일 오후 이 날 두 번째로 나를 만나 6·29 발표 계획에 관한 나의 건의를 받고나서였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全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6·29선언을 자신의 명의로 하는 문제에 대해서 盧 대표가 부각되어야하기 때문에 盧 대표 이름으로 해야 된다면서 처음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홍보 효과를 고려해서 발표 날짜를 하루 연기하고 오전에 盧 대표 건의, 오후에 全 대통령 결단 발표가 보도되도록 하자는 건의에 대해서는 가벼운 기분으로 생각해보는 듯 하였으나 盧 대표와 통화를 한 것으로 보이는 잠시 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당초의 계획대로 하겠다는 결론을 간단하게 내렸다.
그리고나서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를 나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6·29의 뒷 얘기를 들려준 것이다. 결국 원래의 예정에서 바꾼 것은 자신의 결단을 밝히는 담화 발표일자를 7월2일에서 1일로 하루 앞당긴 것이 전부였다. 이 자리에서 全 대통령은 평소와 다름없는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으며 직선제에서 승리를 확신하는 자신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역사의 시나리오를 짜는 사람으로서 대통령의 큰 힘과 역할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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