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극도의 혼란기에, 李承晩 前 대통령이 주도하여 이룩한 대한민국 건설, 곧 ‘가능한 지역에서나마’ 자유민주정부를 세워, 자유체제의 토대를 만들고, 後日 통일의 기초를 닦고자 한 결단은 불가피한 역사적 선택이었다.
당시 金日成 공산세력은 이미 북한을 점령하여 기지화(基地化)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통일 협상은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 숱한 左右합작 시도가 실패한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 이유는 공산세력의 철저한 헤게모니 장악 전략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폐쇄성, 상호간 윈-윈(win-win) 협상을 거부하는 독점·음모 전략 때문이다. 남북한 민주總선거에 의한 UN통일결의안을 남한은 수용하였으되, 북한은 거부한 사실이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므로, 당시로서는 김일성 공산세력 치하(治下)로 굴복하여 들어가느냐, 아니면 자유민주정부를 세워 이에 대항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후일 통일의 기초를 닦느냐 이외의 선택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단독정부 수립의 결단과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었고, 국내외적 난관 속에서 자유민주 대한민국의 건국 위업을 달성한 그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다. 훗날 장기집권과 부정부패 논란은 또 다른 토픽에 해당한다.
金九 선생은 그의 평생 애국 열정과 독립에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建國 과정에서 도덕적 판단이 결여되고 非현실적인 '남북협상론'을 고집하여, 스스로 38度선을 넘어가 결과적으로 김일성 일당의 들러리가 됨으로써, 결정적 과오(過誤)를 범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南韓자유민주정부 수립은 불가피한 선택
- 洪官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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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7-02, 1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