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트리플 올림픽 大戰略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2년 뒤엔 2020 동경 夏季 올림픽이 열린다. 그 2년 뒤엔 북경 冬季 올림픽이다. 2년 간격으로 세 개의 올림픽이 韓中日에서 열리는 것이다.
올림픽 有경험자인 세 나라가 서로 노하우(know-how)를 공유하고 무엇보다도 많이 가서 구경해주고, 군사적 갈등이 고조되는 동북아 지역에 평화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韓中日 트리플 올림픽을 매개로 이뤄질 수 있다면 평창 올림픽은 강원도 올림픽이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1988년 서울 올림픽과 같은 역할을 할지 모른다. 평창 올림픽이 그 30년 뒤에 열린다는 점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또 바뀌었다. 잘못하면 강원도 올림픽이 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과잉투자로 인한 시설의 遊休도 우려된다. 하지만 머리를 들어 세계를 보면 평창올림픽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2018년 평창 冬季 올림픽 2년 뒤인 2020년에는 동경 夏季 올림픽이 열린다. 그 2년 뒤인 2022년엔 북경 冬季 올림픽이다.

2년 간격으로 세 개의 올림픽이 韓中日에서 열리는 것이다. '韓中日 트리플 올림픽'이다. 세 나라가 인류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을 매개로 하여 서로 협력할 부분을 찾으면 相生할 수 있다. 
 
평창 올림픽을 중국과 일본이 밀어주고, 동경 올림픽을 한국과 중국이 도와주고, 북경 올림픽에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는 大전략은 없을까? 
 
올림픽 有경험자인 세 나라가 서로 노하우(know-how)를 공유하고 무엇보다도 많이 가서 구경해주고, 군사적 갈등이 고조되는 東北亞 지역에 평화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韓中日 트리플 올림픽을 매개로 이뤄질 수 있다면 평창 올림픽은 강원도 올림픽이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1988년 서울 올림픽과 같은 역할을 할지 모른다. 평창 올림픽이 그 30년 뒤에 열린다는 점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냉전시대에 냉전의 현장이던 한국에서 열린 올림픽이 냉전 붕괴의 단초를 만들었듯이 마지막 냉전 지대를 가운데에 둔 韓中日 세 나라에서 잇따라 열리는 세 개의 올림픽이 地上지옥을 해체하는 훈풍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감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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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도운 사람들


 1. 고르바초프의 도움
  
  金日成은 1986년 가을 모스크바로 가서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와 회담을 가졌다. 그 2년 전 金日成은 소련을 방문했을 때 ‘이것이 나의 마지막 해외여행이다’고 얘기했었는데 왜 또 갔을까? 
  그 수수께끼는 독일통일 후 공개된 동독 공산당 정치국 비밀文書 속에서 풀렸다. 1986년 11월, 즉 金日成의 訪蘇 한 달 뒤 모스크바에서는 사회주의 나라들의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록에 따르면 고르바초프는 金日成이 자신을 찾아와 소련과 공산권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고르바초프는 金日成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수뇌회의에서 서울올림픽 참가 與否가 논의되었다. 쿠바 수상 카스트로만이 보이콧에 찬성했고 다른 나라들은 참가를 결의했다. 남북한이 공동개최를 하는 방향으로 노력해 보고 그것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在獨 徐炳文 박사는 “86년 11월의 150여 페이지짜리 수뇌회의 기록을 읽어 보면 이 회의가 공산권의 급속한 개혁‧개방을 재촉하는 분수령이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이 회의에서 공산주의가 실패했음을 솔직히 밝힙니다. 이제는 이데올로기의 껍질을 벗고 국민이 잘 살게 하는 쪽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퍽 감동적입니다. 공산권 국가들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데는 국내적인 압력도 있었을 것입니다. 공산국가는 모두 체육 강국인데다가 두 차례나 반쪽 올림픽을 치러 또 다시 보이콧을 할 경우 국민들의 불만이 커질 것을 우려했을 겁니다. 북한은 동독에 대해서도 서울올림픽 보이콧을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이것만은 호네커가 듣지 않았습니다. 서울올림픽은 남북한 간의 決戰이었을 뿐 아니라 동구공산권의 붕괴를 앞당긴 촉매제였습니다.”
  
   동독 올림픽 선수단은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보고서를 정치국에 제출했다. 徐 박사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한국의 경기운영과 사회의 발전상에 대해서 매우 높은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한국이 올림픽에 정치나 이념을 개재시키지 않은 데 대해서 특히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이다.
   朴正熙대통령이 10·26직전에 서울올림픽 유치를 결심할 때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한 것이 ‘국제사회에서의 남북한 대결에 종지부를 찍고 東歐공산권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金日成은 서울올림픽에 맞불을 놓기 위해 평양세계청년 축전(1989년)을 유치했다. 이 준비를 위해 약 50억 달러의 낭비성 투자를 하는 바람에 경제파탄은 더욱 심해져 대기근 사태를 자초했다. 서울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KAL858편 여객기를 폭파해 115명을 죽게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金賢姬는 ‘살아 있는 物證’으로 남아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는 데 일조했다.
  
   盧泰愚 정부는 서울올림픽이란 對공산권 비밀통로를 북방정책이란 고속도로로 확장시켜 북한의 우방들과 수교함으로써 金日成을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동독만은 붕괴 때까지 한국과 국교를 트지 않았는데 이는 호네커와 김일성의 우정에 기인한다.
   1988년 호네커는 아내를 金日成에게 보내 남한과 수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1991년 12월 안기부는 러시아 정부측으로부터 모스크바에 망명중인 호네커가 평양으로 갈 것이란 정보를 입수, 이를 독일정보기관(BND)에 알려주었다. 독일정부는 즉시 러시아 정부에 항의, 출국을 중지시키고 독일로 데려가 재판에 회부했다. 重病으로 풀려난 호네커는 칠레로 가서 거기서 1994년 초에 사망했다.
  
   2. 레이건의 도움
  
   미국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소련을 통하여 북한정권에 압력을 넣은 일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슐츠 국무장관, 칼루치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소련을 움직였다. 이런 사실은 1988년 6월8일 청와대로 盧泰愚 대통령을 예방한 프랭크 칼루치 美 국방장관의 보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칼루치 장관은 크라우 합참의장 등을 대동했다. 그는 그 직전에 있었던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에 대해서 보고하면서 서울올림픽의 안전문제를 거론했음을 밝혔다.
  
   <북한문제와 올림픽 안전에 관해서는 수차 소련 측에 의견을 개진하였는 바, 셰바르드나제 외상은 오찬시 레이건 대통령께 북한은 도발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대하여 미 측에서는 그렇다면 다행한 일이나, 분명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슐츠 장관은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소련 측에 북한이 최근 SA-5 미사일을 전방배치 한 것을 지적한 바 있고, 본인도 만찬석상에서 옆에 앉은 그로미코 의장(과거 25년간 외상을 지냄)에게 촉구하였던 바, “그는 북한에 알아본 바, 올림픽을 방해할 하등의 의사가 없다고 하더라” 고 하였으며, 본인이 한국 측에 그렇게 전달해도 되겠냐고 문의한 데 대해서 좋다고 확답을 하였습니다. 후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소련 외무부는 북한에 올림픽 방해책동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 件에 관한 소련의 언질은 단호한 것이 아니고, 항상 약간의 회피성을 보였는바, 예컨대 “북한은 독립주권국가이다” “우리의 영향력엔 한계가 있다” “우리도 참가하므로 똑같이 안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는 등, 단서가 붙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 전해인 1987년 11월에 김현희와 김승일은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에 時限폭탄을 두고 중간 기착지 아부다비에서 내렸다. 김현희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 승객들을 둘러보고는 “이 사람들이 몇 시간 뒤에 죽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으나 “조선혁명을 위해선 이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가르침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김현희의 신분을 조사하여 범행 목적이 서울올림픽 방해임을 확인하는 한편, 그가 북한 공작원이란 결론을 내리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레이건 日記' 567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1988년 1월14일 목요일에 쓴 것이다.
   <백악관 안보회의를 열었다. 한국의 스파이 이야기가 보고되었다. 바레인에서 잡힌 24세의 여성은 대한항공 폭파용의자인데 자신이 북한공작원이며 올해 열리는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는 자백을 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석 달 전인 1988년 6월28일 화요일에 쓴 일기에서도 올림픽을 언급했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한국의 휴전선엔 북한군이 10개 사단을 더 배치했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위협하는 도박을 벌이려 할지 모른다. 소련은 그런 도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했다.>
  
   미국은 올림픽 기간 중 對테러요원들을 한국으로 보내 안전조치를 도왔다. 항공모함 미드웨이 戰團을 한국근해에 배치하여 북한의 도발을 경계했다. 서울 올림픽 경기 중 한국인들은 미국과 소련팀이 붙으면 소련팀을 응원했다. 이에 미국인들이 분개했으나 표현은 하지 않았다. 올림픽이 끝난 뒤 미국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 등 要人들에게 해명 겸 사과를 했다.
  
   미국과 소련이 서울올림픽을 함께 도운 것은 국제관계에서도 善意가 힘을 쓸 때가 있음을 증명한다. 사도바울은 '惡을 惡으로 갚지 말고 萬人 앞에서 善을 행하라'고 했는데 한국이 이를 실천한 셈이다. 한국은 아웅산 테러나 KAL기 폭파 사건 같은 惡行을 당하고도 對北 보복을 자제하곤 서울올림픽이란 善行을 萬人 앞에서 실천했다. 그 결과 악당은 망해가고 善行者 한국은 자유통일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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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수상: '서울 올림픽 성공이 나의 일처럼 기뻐'

盧泰愚 대통령은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뒤인 1988년 11월3일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이튿날 수상 집무실에서 당시 정력적으로 국가발전에 몰두하고 있던 마하티르 수상을 만났다. 두 사람의 회담록을 읽어보면 동남아에서 가장 잘 나가던 말레이시아가 서울올림픽과 평화적 정부 이양을 성공시킨 한국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 모델을 배워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은 소란속에서 발전하는 나라 같다'라고 말했다.
  
  盧昌熹 의전수석(儀典首席/通譯)만 배석한 2인 정상회담에서 마하티르 수상은 '전임 대통령께서는 안녕하신지요?'라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안부부터 물었다.
  
  노태우 대통령 : 출국 전에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요즈음 잘 지내고 있는 듯합니다. 7년간 잘했는데, 우리 나라 정치문화가 과거의 잘한 것은 접어두고, 잘못된 것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금년 연말이전까지는 모든 일이 합리적, 적법 적으로 잘 처리될 것입니다.
  
  수 상 : 모든 것이 잘 처리되기를 바랍니다. 귀국하시면 안부 부탁드립니다.
  
  대통령 : 한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작년이후 큰 진전이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사회적 욕구가 일시에 분출되어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와 갈등 속에서 발전이 촉진되는 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용, 조화함으로써 사회발전을 이룩코자 노력중이며, 그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수 상 : 그간 사태를 현명히 처리해 오신 것 축하드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TV 등에서 여러 騷擾(소요)장면 등 어두운 면을 보고 올림픽을 제대로 할까 걱정되었는데, 그렇게 성공적으로 치루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갈등 속에서도 그 정도 발전속도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민의 저력인 동시에 한국 정부의 능력으로 보고 축하드립니다.아직 선진국이 아님에도 한국이 그렇게 훌륭한 대회를 치루는 것을 보고 대단히 감명 받았으며, 마치 우리가 치룬 것처럼 기쁨을 느꼈습니다.
  
  한국은 전에 은둔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고립되어 있었는데, 이제 완전히 세계적 개방국가가 되었고, 최근 10여 년간 괄목할 성장을 이룩하였으므로 우리는 한국의 발전모형을 본받고자 합니다. 또한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원활하게 이룩되었고, 데모 등 소요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잘 수습하고 계신 것 축하합니다. 우리도 민주정치를 하려는데 현 정부보다 자기들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항상 문제가 있습니다.(웃음) 
  
  대통령 : 어떻게 보면 한국은 소란을 통해서 발전하는 듯합니다. 올림픽만하더라도 불과 몇주 전까지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지만,“세계가 모두 서울로 오고 있다. 이래서 되겠는가?' 호소한 결과 국민의 99.9%가 하나가 되어 협조하였습니다. 교통질서, 친절, 위생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는 결집력을 보였으며, 국민 모두에서 고마운 마음 금할 수 없었습니다.
  
  수 상 : 사회발전에는 강력한 자극이 필요하지요. 이미 말씀드린 바 있지만, 한국의 노동윤리와 사회기강을 배워야 되겠다고 생각해 왔고, 특히 올림픽을 계기로 그런 생각이 이곳에 만연되었습니다. 전부터 사람을 보내서 새마을운동 등을 연수시켰지만, 각기 국민성이 달라 그대로 실천이 안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간 유학생, 연수생 등을 위하여 여러 가지 편의와 협조를 제공해 주신데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근면성과 문화를 더 배워야 합니다.
  
  대통령 : 우리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학교공부부터 경쟁을 하므로 무한한 경쟁심이 있는 것은 장점이나, 반면에 인내심이 부족하고, 모든 것을 하면 된다는 정신은 좋지만, 현실에 만족, 안주할 줄 모르는 습성이 있어, 항상 충돌과 불신의 씨가 되고 있습니다. 각자 분수를 지키는 미덕을 貴國으로부터 배워야 되겠습니다.
  
  수 상 : 잠시 후 전체회의에서 거론코자 합니다만, 천연가스의 공급문제입니다. 현재 주로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데, 앞으로 생산 수출증대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한국은 주로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경제성장, 국민생활 향상으로 가스수요가 증대될 것이므로 말레이시아에서도 구입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 이곳에 우리 동자부장관도 와 있으므로 전체회의에서 논의 바랍니다.
  
  수 상 : 양국간 교역에서 말레이시아측이 出超입니다. 전에는 페낭대교 건설사업에 현대와 계약하는 등 한국건설업체 참여가 많았으나, 근년 들어 건설사업도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한국상품의 수입을 늘려 나가겠습니다. 한국제품의 수준이 일본 것과 유사한 정도이므로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출자, 생산하여 내수뿐 아니라, 제3국 수출도 모색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임금이 싸고, 사회 간접시설이 잘 되어 있고, 환율도 아직 저 수준이므로 투자시장으로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 해외투자는 정부에서 장려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기업도 관심이 많습니다. 양국간 교역은 우리의 원자재 수입으로 불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앞으로 균형발전 되기를 원합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으며, 우리는 일본과 가장 가까운 처지이므로 일본을 잘 알고 있고, 일본의 예를 많이 따르고 있지만, 일본과의 관계에서 특히 어려운 것이 기술이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많은 훈련생과 유학생을 일본보다는 미국, 서독 등에 보냈습니다. 일본은 기술이전에 대하여 대단히 인색하나,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투자, 합작사업을 통하여 우리의 경험과 기술을 충분히 나누고자 합니다.

  마하티르 수상은 韓馬(한마) 관계에서 對韓수출이 한국으로부터의 수입보다 더 많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 뒤 오히려 천연가스를 수입해줄 것과 한국측이 말레이시아에 투자를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수상이 앞장서서 商談을 리드하는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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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권 민주화와 서울올림픽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동구권의 민주화에 서울올림픽이 큰 기여를 했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나는 올림픽 책임자로서의 자화자찬이겠지 하고 넘겨버렸었다. 며칠 전에 소련과 동구권을 여행하고 온 교수와 기업체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 갔더니 그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지난 해 말에 來韓공연을 한 보컬그룹 코리아나 단장 김영일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부른 88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가 동구권 민주화 운동 현장의 데모송이 돼있더라는 것이다. 코리아나는 1989년 12월에 동독 국영텔레비전 방송국의 초청으로 동베를린에 가서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손에 손잡고'를 불렀다. '손에 손잡고'의 가사는 동구권 민주화의 현장 분위기에 걸맞는 것이었다.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는 동구권 민주화의 에너지원인 민중의 힘을, '벽을 넘어서(Breaking down the Wall)'는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의 벽을 허무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왜 동구권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을까?
  
   첫째, 소련.중국.동구권 공산국가들의 서울올림픽 참가 결정은 남한과 북한 중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행위였다. 그들은 서울을 선택함으로써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남한의 판정승을 인정하였다. 참가 결정을 통해서 그들은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평가해준 셈이었다.
  
   둘째, 12년만의 온전한 올림픽인 서울올림픽은 동서 화합과 세계 평화 무드를 극적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이념 대립과 냉전체제의 종언을 분위기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셋째, 공산국가 국민들은 자신들이 참여한 서울올림픽에 대해서 전례 없는 관심을 쏟았다. 위성중계를 통한 서울올림픽의 텔레비전 중계시간은 총 9천 시간으로서, 이는 로스앤젤레스대회 때의 세배였다. 세계의 이목이 서울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넷째, 그러면 동구권 사람들은 서울올림픽에서 무엇을 보았던가. 한국은 분단과 戰亂, 화염병과 최루탄, 그리고 독재와 식민지의 나라로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북한의 악선전에 의해 남한은 AIDS 환자들이 득실거리고 미군들이 멋대로 남한 여자들을 겁탈하는 나라쯤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비친 한국은 생기발랄한 현대 사회였다. 민주화의 길을 착실히 걸어가고 있는 자유분방한 나라였다.
  
   특히 현대 한국의 이미지 메이킹을 이룩한 서울올림픽의 개. 폐회식은 한국 전통문화의 깊이와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동구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가장 악질적인 독재국가라던 한국이 저 정도인데 우리는 무엇인가. 분단과 전란과 독재를 믿고 저 정도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장점은 무엇인가. 50년 전만 해도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우리'는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 서울올림픽은 그들에게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1980년대에 한국은 두가지 면에서 세계사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첫째는 평화적 민주화이다. 분단과 전란의 나라, 그리고 민주주의 실천의 경험이 짧은 나라에서 군사정권과 민중들이 한판 승부를 벌였다가 6.29선언이란 타협점을 찾아 점진적 개혁과 평화적 민주화의 모델을 확립한 것은 개발도상국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외국에서는 서울올림픽을 '미국인의 상업정신과 일본인의 친절과 독일인의 정밀성으로 치러진 사상 최고의 평화축제'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서울올림픽이 실패하였다면 개발 도상국에서는 올림픽이 영원히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올림픽이 성공하기 가장 어렵다는 서울에서 사상 최대.최고의 올림픽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인의 끈기와 집념이 가져온 세기적인 역전 드라마였다.
  
   이 올림픽이 동구권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면 한국인은 정말 위대한 인류의 유산을 남긴 셈이다.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는 세 번의 전쟁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반도와 그 주변을 무대로 했던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전쟁 때 세계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에 의하여 한국은 주로 부정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세계 언론사상 최대의 보도진(1만5천여 명)이 붐볐던 서울올림픽은 한번의 평화축제로써 세 번의 전쟁 이미지를 덮어 버렸다.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 세일즈맨들은 이제한국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한다. 헝가리 사람들은 한국인이란 걸 확인하면 '올림픽 코리언, 굿 코리언!'이라고 추켜준다는 것이다.
  
   서울 올림픽의 동구권 민주화에 대한 기여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검증과 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국제적인 여론조사나 현지 취재를 통해서 인과관계를 설득력있게 규명하여 한국인들에게 가슴 뿌듯한 자랑거리를 만들어주는 작업 말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경멸을 들어야 했던 우리가 철의 장막을 걷어내는 데 한 몫을 했다면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은 모두가 영웅이며 우리 시대는 영웅 시대인 것이다. 요즈음 한국 현대사를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사조가 유행인데 긍정적으로 보면 얼마나 감격적인 역사인가.
  
   북한이 소련의 대리전을 청부맡아 일으킨 6.25전쟁은 남한과 미국이 손에 손잡고 버팀으로써 공산세력의 남하를 2차대전 후 최초로 저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무승부 상태에서 남북한은 경제 개발과 정치 발전이란 두 종목을 두고 공개 경쟁에 들어갔다. 그것은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리전 시합이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 그 승부는 세계인들 앞에서 확실하게 되었고 그것을 재확인시켜준 것이 서울올림픽이었다. '손에 손잡고'가 동양인이 부른 노래로는 세계 음반 사상 최고의 판매량(카세트, 레코드로 9백만 장)을 기록한 것은 서울올림픽에 대한 세계인의 평가를 반영하고 있다. '손에 손잡고'가 세계에서 가장 적게 팔린 나라가 한국이라서 탈이지만.
  
   <1990년 3월 아시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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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신 2016-05-10 오전 1:12

    얼어죽을!
    세상이 망해가는데 먼 올림픽 타령?
    조기자님!
    이제 쉬실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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