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서울시는 2015년 4월 광복70주년을 맞아 ‘일본식 한자어’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23개 순화어를 발표했다. ‘回覽’은 ‘돌려보기’, ‘節水’는 ‘물절약’으로 ‘見出紙’는 ‘찾음표’로, ‘截取線’는 ‘자르는 선’으로 ‘殘飯’은 ‘음식 찌꺼기’로 ‘食費’와 ‘食代’는 ‘밥값’으로, 행정 서류에 자주 쓰이는 표현인 ‘引受하다’는 ‘넘겨받다’로 ‘호출하다’는 ‘부르다’ 등으로 바꾸었다. ‘국어사용조례’에 따라 행정용어 순화 사항은 서울특별시보(제3286호, 2015.4.9.)에 告示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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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日本人이 번역해 韓國人이 사용하는 漢字語 현재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상당수의 주요 漢字 단어는 일본인들이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사회(社會)'란 단어는 일본인이 외국어를 漢字로 번역(飜譯)하는 과정에서 만든 飜譯語이다.
신문기자 후쿠지 겐이치로(福地源一郞)가 1875년 '마이니치신문'에 사용하면서 서양 개념인 'society'에 해당하는 동양 한자권의 언어로 정착됐다. '철학(哲學)'도 마찬가지다. 계몽가 니시 아마네(西周)가 메이지시대(1868~1912년) '百一新論'에서 서양 개념인 'philosophy'를 '철학'으로 번역한 것이다. 西周는 해외 유학파였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면서 유럽 지식인들의 결사(結社)인 '프리메이슨'(freemason)에도 가입했다.
그는 “일본어를 로마자(字)로 표기하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초대 문부장관인 삼유례(森有禮, 모리 아리노리)와 함께 급진적 영어 사용론자로 꼽힌다. 미국 유학파인 森有禮는 '일본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어를 영어로 해야 한다'며 1885년 초등학교 영어 의무교육을 관철했다.
이처럼 일본의 학자들이 일생을 걸고 주력한 것은 서양의 근대적 개념을 국어로 대체하는 일이었다. 西周와 森有禮는 福澤諭吉(후쿠자와 유키치) 등 당대의 석학들과 함께 1873년 明六社란 학술 결사를 결성,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근대 의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언어들을 만들어냈다.
현대적 의미의 ‘자유’(自由)라는 단어도 明治維新 이후 일본인들이 서양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든 飜譯語이다. 영어의 liberty, freedom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던 ‘自由’를 근대적 의미로 전용한 것이다.
명치 시대 이전 일본에서는 ‘제멋대로’라는 의미로 사용된 '自由'가 많은데, 이로 인해 일본 사람들은 ‘自由’라는 단어에 대해 처음에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850년대 일본에서는 영어의 freedom, liberty, 네덜란드어의 vrij, 프랑스어의 libeal이 自由, 자유로운, ‘걸리는 것 없는 것’ 등으로 번역되면서 이전의 自由와 근대적 번역어로서의 自由가 혼재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幕府 말기까지 계속됐으나 명치 시대가 진행되면서 서구의 번역어로서 사용되던 自由가 적절치 않은 번역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메이지 초기의 번역가들은 이 개념을 어떤 말로 번역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매우 고심하게 된다.
번역가들의 고민은 1870년대까지 이어져 freedom, liberty의 번역어로 自由 외에 자주(自主), 자재(自在), 불기(不羈) 등 여러 형태의 번역어가 나타나게 됐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872년 나카무라 마사나오(中村正直)의 '自由之理'가 출판되면서 liberty와 freedom의 번역어로 自由라는 단어가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













박시장이 잘 한 일 아닌가요? 그 분이 매우 신비스러운 분이라, 그 분을 칭찬하려고 하니, 내가 잘 못 하는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이 멀쩡한 사람들을 친일파로 몬 것을 기억하는데, 그 분이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언어를 인위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이 잘못 아닐까요? 한문을 못 쓰게 법을 만들었다는 것을 저는 그 동안 몰랐습니다.
다른 말은 몰라도 와쿠는 안쓰는게 맞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