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틀려도 무관심한 대통령
1974년9월30일은 추석이자 朴대통령의 57세 생일로 알려진 날이었다. 朴대통령은 1917년 음력 9월30일에 태어났는데 양력 9월30일로 잘못 알려져 이 날이 생일로 치러져왔었다. 자신과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는 결벽증을 보일 정도로 무심했던 朴대통령은 1976년에 들어와서 생일을 11월14일로 고쳐 지냈다. 그 전에 한 장관이 '각하의 9월30일 日辰과 사주가 매우 좋습니다'라면서 장황하게 풀이를 해도 그냥 들어주는 것이었다. 이즘 朴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은 골프를 즐기는 것만 빼고는 거의 서민생활 수준이었다.
그는 유행에 둔감했다기보다는 아예 무시했다. 양복을 새로 지어 입기를 싫어해 바지의 허리를 늘리는 수선을 자주 했다. 넥타이도 헌 것을 좋아했다. 20여년 전 결혼 선물로 받았던 시계를 그냥 차고 다니는가 하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성냥은 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성냥알이 없어지면 큰 통에서 새로 담아 계속 쓴 결과였다. 수영복도 몇년째 바꾸지 않았다. 복장과 예의범절에 있어서의 보수성은 서민성의 한 표현이었다. 민족사상 가장 큰 근대화 개혁을 한 사람이 복장과 예절에선 보수적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朴대통령이 어린 시절 존경했던 나폴레옹도 그랬었다고 한다.
朴대통령은 담백한 한식을 좋아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칼국수나 물김치 냉면, 갈비탕, 곰탕을 즐겼다. 갈비탕이 나오면 고기는 물론이고 갈비뼈까지 손으로 쥐고 뼛속 진액까지 빨아먹었다.
朴槿惠의 퍼스트 레디 代役 시작
陸여사가 곁에서 사라진 뒤 朴대통령은 피아노 대신 단소를 자주 불었다. 1층 집무실에서 2층 내실로 퇴근한 朴대통령은 일부러 전등을 끈 뒤에 哀調(애조) 띤 가락을 단소로 뱉어내었다. 당직근무자들이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슬픈 가락이었다고 한다.
1974년10월1일 朴대통령은 제26회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딸 槿惠씨를 데리고 갔다. 아내가 앉던 자리에 딸이 앉게 되었다. 이는 대통령을 둘러싼 권력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일이 된다.
다음날은 陸英修 여사 사망 49齊 날이었다. 12시30분부터 1시간8분간 朴대통령은 22명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이 자리에도 槿惠씨가 참석했다. 朴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오는 위로편지의 대부분이 서민층이고 그 가운데 7할이 부녀자들의 편지이다. 편지를 읽노라면 생전에 이 사람이 이런 일도 했나 하고 느낄 때도 있다'고 말했다. 10월9일 朴대통령은 申稙秀 정보부장과 車智澈 경호실장을 데리고 뉴코리아 골프장에 나갔다. 아내를 잃은 뒤 처음 치는 골프였다.
유행을 무시한 朴대통령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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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7-06, 2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