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親日 조사로 오늘의 反韓 은폐

과거 친일조사로 현재 反韓행위 덮으려는 의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양동안 교수 20일 `친일진상규명법` 자유언론수호국민포럼 발제요약
편집자주 : 지난 20일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자유언론수호국민포럼(대표 이경식) 주최로 친일진상규명법에 대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2004년 3월22일 공포된 ‘일제강점기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친일진상규명법)’은 2005년 1월27일 다시 개정안이 공포됐다. 개정안은 ‘동행명령제도’를 도입, “동행명령에 불구하고 3회 이상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1천 만 원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조사범위를 일본군 중좌 이상에서 소위 이상으로 하고, 일제의 민족문화 파괴*말살과 문화유산의 훼손*반출에 적극 협력한 행위를 추가했다.
이 법에 따라 지난 5월31일 강민길 고려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친일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했다.

양동안 교수

공산당, 赤化위해 친일청산 주장
대한민국, 親日派 아닌 反日派가 세운 나라

친일파숙청은 해방정국 모든 정치세력의 공통과제였다. 다만 숙청방법에 입장차가 있었는데, 우익은 先독립국가 건설*後친일파숙청을, 좌익진영은 後친일파숙청*先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했다.

좌익진영 중 공산당은 친일파숙청에 가장 목소리를 높였다. 한반도 공산화에 반대하는 세력 중에는 크고 작은 친일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친일경력이 약간이라도 있는 사람들을 모두 숙청하면 한반도 공산화가 쉬워질 것이라는 정략적 계산을 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共産남북통일국가를 저지하고, 反共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을 세운 세력들을 친일파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를 지도자로 하는 대한민국 건국주도세력은 친일파(親日派)가 아니라 반일파(反日派)였다. 대한민국건국을 위한 선거에서 친일파의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까지 박탈했을 정도였다.

친일청산, 6*25로 사회적 쟁점 삭제

대한민국 건국주도세력은 해방직후 천명한 대로 48년 9월7일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특위를 구성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일부 좌익연루 국회의원들(훗날 남로당프락치사건 연루자)의 선동으로 지나친 방향으로 전개됐다. 좌익의 대한민국 파괴공작을 저지하는 일이 시급했던 당시 상황에서 반민특위의 ‘지나친 활동’은 건국세력의 우려를 초래했다. 결국 경찰조직에 참여해있던 일부 친일경력자들은 이러한 건국세력의 우려를 병풍 삼아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반민특위는 이후 조직이 개편돼 활동을 계속한 후 종료됐다. 친일청산이 미흡했다는 비판도 제기됐으나 곧이어 발발한 6*25전쟁으로 친일파문제는 사회적 쟁점에서 사라졌다.

80’ 친북운동, 친일파문제 再점화

북한과 이들의 선전에 감염된 남한 내 일부 세력은 친일파문제를 쟁점화하기 위해 계속 시도해왔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친일파문제는 80년대 중반 이후 남한에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운동이 확산되면서 다시 부각됐다.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남북을 공산통일하려는 이들 세력은 친일파 단죄를 적극 주장했다. 대한민국을 美제국주의 지원 하에 친일파들이 세운 나라로 보면서, 친일파를 단죄하면 대한민국이 허물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80년대 운동권은 90년대 중반 이후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했고, 친일파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마침내 친일진상규명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친일청산, 反韓활동 관심전환

친일파숙청문제는 해방직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로 反대한민국세력에 의해 쟁점화 돼왔다. 이러한 과거역사에 비춰볼 때 ‘현 정권의 친일청산캠페인 배후에 反대한민국세력의 책동이 개입돼 있지 않을까?’‘운동권과 현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타격을 가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실제로 친일파의 개념을 잘 못 정의하면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립에 기여해 온 분들 중 상당수가 친일파로 매도될 수 있다. 그 경우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립의 정당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친일청산 캠페인이 매스컴에 떠들썩하게 소개되면 대중은 일제치하 저명인사들의 친일행정에 관심이 쏠리고 운동권출신의 反대한민국 행적에는 관심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과거 反대한민국 활동을 했거나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은 큰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친일청산 캠페인은 먼 과거에 있었던 타인의 비행을 조사해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자신들의 비행을 덮어버리는 정략이 작용했을 수 있다.

김성수, 친일파로 볼 수 없어

그래도 친일청산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역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긍정적 측면을 가져야 한다. 그 경우 다음과 같은 점에 주력해야 한다.

우선 공개된 문서자료 뿐 아니라 총독부 비밀문서 등 비공개 자료를 적극 발굴해 조사해야 한다. 보다 악질적 친일파들은 비밀리에 부일활동을 전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사대상 인사(人士)의 일제하 사회활동을 총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민족활동을 하면 한편으로 그 활동을 지속키 위해 식민당국에 협조할 수 있다. 총체적 조사가 없다면 민족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한 인사가 친일파로 간주될 수 있다. 선인이 악인으로 왜곡되는 것이다.

인촌 김성수 선생은 일제말기 학병지원을 장려하는 글과 연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기록만 보면 그는 친일파이지만, 보성전문학교 학생들에게는 은근히 학병지원을 말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해 민족의식을 고취했고, 동아일보를 설립해 민족계몽언론활동을 했으며, 해외의 독립운동세력에게 독립운동자금을 비밀리에 제공하기도 했다. 김성수 선생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면 그가 비록 친일활동을 한 사실이 신문잡지에 기록됐다 해도 도저히 친일파로 규정될 수 없는 것이다.

친일 글*연설*그림 과대평가 말아야

지식인들의 친일적 글이나 연설도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일제 하 모든 동포들은 일제를 위해 강제 동원됐다. 우리사회는 노동자가 일제에 육체노동으로 봉사한 것을 ‘희생’이라고 평가하는 데 반해,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이 일제에 봉사하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연설을 한 것은 ‘타기(唾棄)할 친일행위’로 격렬히 비판한다. 육체노동으로 봉사했건 글이나 그림 또는 연설로 봉사했건 그것이 강제동원된 것인 한 모두 희생이다. 자발적으로 그런 행위를 한 사람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강제 동원돼서 그렇게 한 것이라 나는 보고 싶다.

‘진정한 친일파’‘억지친일파’ 구분 필요

끝으로 진정한 친일파와 억지 친일파를 확연히 구별해야 한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에 대한 봉사인 친일은 일제에 봉사면서 동포를 직접 괴롭힌 인사들, 일제에 봉사하면서 동포를 직접 괴롭히는 일을 삼간 인사들, 일제에 봉사하면서 다른 한편 동포를 위한 활동을 한 인사들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3부류의 일제 봉사자들 중 진정한 친일파는 첫째 부류이다. 나머지는 ‘억지친일파’이다. 억지친일파는 민족의 정신적 물질적 역량강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했고, 민족 지사들과 어울리려 했고, 개인적 및 사회적 활동을 함에 있어 일제와 거리를 두려 했던 이들이다.

진정한 친일파에 대해 비판을 아낄 것이 없고, 후손들에게도 일정한 도덕적 부담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억지 친일파를 진정한 친일파로 모는 것은 그들이 일제치하 전개한 민족활동을 무시한 불공평한 행위이다. 현 정권이 이런 사항들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친일문제를 둘러싼 국민적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리 김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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