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의 향수, "두 다리 뻗고"

1974년 12월 11일, 한국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李元洪 駐日 공보관장이 朴대통령에게 일본 언론계의 동향에 대해 보고했다. 공보비서실 직원들이 배석했다. 그는 특히 일본 마이니치(每日) 신문의 요시오카 다카오(吉岡忠雄) 논설위원이 자진해서 한국에 유리한 논설을 많이 쓰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내가 고맙다고 하더라고 대신 인사를 전해 주게.”
朴 대통령은 李 공보관장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 마이니치 하고 산케이(産經) 인사들 중에서 괜찮은 사람 명단을 장관께 제출하여 訪韓 초청토록 하시오.”
잠시 후 일본 政局으로 화제가 바뀌자, 대통령은 일본의 전 외상이었던 기무라 도시오(木村後夫)에 대해서 혹평을 했다.
“그 사람 아주 못된 놈이야.”
좀처럼 심한 말을 하지 않는 대통령이 화를 낸 것은 陸英修 여사 피살 이후 일본이 文世光 배후 수사에 비협조적일 때 기무라 외상이 “한국만을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로 볼 수 없다”는 등 문제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화제는 대통령 生家가 있는 구미로 옮아갔다. 선우련 비서관이 생가에서 일본 기자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각하의 심부름으로 생가에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곳에서 아사히 신문기자를 만났습니다. 각하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그나저나 형수도 안 계셔서 쓸쓸했을 텐데.”
“계셨습니다. 서울로 왔다갔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경관(생가 관리 경찰)은 지금도 있던가?”
“네, 장 경위가 아직 그대로 있었습니다.”
“일본 기자에게 각하가 쓰시던 방을 보여 주었더니, 방에 있는 책들을 보고는 ‘대통령이 보았던 책들이냐’ 하고 물어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6·25 전까지는 책이며 노트, 그림 등이 많았었는데 동란 때 다 없어져버렸지.”
대통령은 옛 추억이 떠오르는지 미소를 머금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고향집은 역시 좋은 거야. 비록 나지막한 집이지만, 방학 때 내려가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 그런데 형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고향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구먼. 아마 형님(朴東熙 옹)은 나 때문에 빨리 돌아가신 것 같아.”
한탄스런 어투로 자신을 질책하듯 대통령은 이런 얘기를 했다.
“대통령의 형이라고 해서 주위 사람들이 막걸리며 돼지고기 등을 많이 사드려서, 그 탓인지 중풍에 걸려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 그러지 않았으면 훨씬 오래 사실 분이었는데…. 선우 비서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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