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12월11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비서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박정희 대통령은 대뜸 金壽煥 추기경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피력했다.
“김 추기경 못 쓰겠더군. 젊은 사람이 추기경이 되니까 자세가 많이 달라진 모양이야.
김 추기경은 내가 보기에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사사건건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것같더군.”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선우련 공보비서관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 봄에 진해에 갔을 때도 각하 내외분께 인사도 안 드리고 가는 등 냉정한 사람이더군요.”
“집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술도 보내고 대접을 나름대로 잘해 줬는데….”
대통령이 金추기경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된 배경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1974년 4월경, 당시 대통령과 추기경의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陸英修여사는 일부러 중재역을 맡고 나섰다. 陸여사는 대통령이 모르게 金 추기경과 대주교들을 초청한 후, 그날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대통령에게 알렸다.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은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陸 여사의 재치로 의외의 좋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그 후 金 추기경 일행과 대통령 내외는 벚꽃놀이를 가기로 약속했으며, 며칠 뒤 실제로 동행하여 진해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 진해에서 일행은 함께 재미있게 즐겼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金 추기경이 혼자서 먼저 상경해버린 것이다.
선우련 비서관은 아침 식사를 차려 놓고 김 추기경을 모시러 갔는데, 盧基南 대주교가 하는 말이 “벌써 떠났다”는 것이었다.
추기경은‘이러다가는 신도들에게 면목이 없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 떠났다는 것이다.
다시 朴대통령이 교회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교회에서 정치에 간섭하면 우리도 교회에 간섭할까?”
다시 화제는 가족 이야기로 돌아갔다.
“각하 선친께서 무과(武科)에 급제하셔서 영변 군수 첩지까지 받았으나 현지에 부임하지 못하셨는데, 아마도 교제하실 줄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선우련의 이 말에 좌중에선 폭소가 터졌다.
“매관 매직 때니까 선친께서 첩지를 산 것 같아.”
“그렇지 않습니다. 정당하게 받았는데 매관한 군수가 이미 가 있어서 못 가셨답니다.
샀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그런 시대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 거지.”
朴 대통령과 金壽煥 추기경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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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01, 1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