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아는 김정일]
김정일은 한국인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귀신이 곡할 정도로 교묘하게 악용한다. 이 수법은 '백두산 산신령' 김일성으로부터 고스란히 전수 받은 것인데, 그는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이 수법으로 그는 국가를 통째로 만경대 김씨 가문의 사유재산으로 편입하고 2000만 전 주민(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공식적인 인구통계 2300만에서 최소한 300만은 떼어내야 된다고 함)을 사노비(私奴婢)로 삼는 데 성공했다.
초대 황제는 빨치산 귀족들과 인민군 장군들에게 일정 지분을 용인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국유재산의 10분의 1 정도를 사유재산으로 삼았고 그 노비도 그 정도로 두었는데, 김정일은 효도를 다하는 척 3년간 빈소를 차려놓고 현대판 피라미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함경도 지방을 비롯하여 반역의 여지가 다분한 지역이나 어리석고 순진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식량배급에서 제외시키는 한편, 노동당 귀족과 인민군 장군에겐 식량배급의 은전을 베푸는 것 외에는 일체 그 특권을 박탈함으로써, 압록강 이남 임진강 이북에서 유일무이한 대지주이자 황제이자 대장군으로 등극하고, 살아 있는 신으로 백두산 밀영에 강림할 수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한국 사회의 급소에 리모컨을 설치하여 지하의 아방궁에서 홀로 초대형 화면을 바라보며 황제 등극 10여년 만에 통일왕국을 눈앞에 바라보게 이르렀다. 한국은 이에 기꺼이 화답하여(철저히 농락당하여) 두 손을 흔들며(스스로 손발을 묶고) 몽롱한 눈을 반쯤 감고(취한 눈 크게 뜨고) 지상낙원(호랑이 굴)으로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배울수록 어리석어지는 한국인]
한국인은 일제시대의 굴욕과 6·25동란의 비극, 산업화의 영광과 민주화의 감격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식인을 중심으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조선의 문화적 유전자에 의해 그 영혼이 원격으로 조종당하고 있다.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또는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유교를, 그 중에서도 성리학을 유일사상으로 받아들이고 성리학의 온상이었던 송과 꼭 마찬가지로 철저한 문치사회를 확립했기 때문에, 세종대왕의 유불(儒佛) 양립과 문무(文武) 조화 정책이 그의 사후에 급격히 퇴조되어 성리학과 권력이 일심동체가 됨에 따라, 연산군 무렵부터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다.
성리학의 유일사상으로 무장한 사림파가, 요(遼)와 금(金)에 시달리다가 결국 통째로 원(元)에게 나라를 넘긴 나라에서 중국 역대 왕조 중 가장 한심한 송(宋)에서 흘러나온 주자학을 달달 외운 덕분에 과거를 통해 속속 한양에 입성하면서, 자신들의 존립 근거인 태조의 건국과 태종의 왕자의 난과 세조의 계유정난을 정통성의 관점에서 집요하게 비판하고 조선 초의 빛나는 치적을 전주 이씨와 훈구파의 야합으로 폄훼하고, 성리학의 이상국가(사림파가 권력을 독점하는 국가)를 건설한다며 조선판 개혁과 민주를 입에 달고 살았다. 때마침 연산군의 폭정으로 사림파는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더욱더 이상국가의 정당성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육체는 죽여도 그 영혼은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사림파의 득세]
중종반정 이후 사림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되었다. 중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대대적인 개혁에 나선 조광조는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혀의 칼과 붓의 활을 마음껏 휘두르고 쏘았다. 급기야 중종에게도 그 칼과 활을 겨누었다. 임금도 주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자의 의발 제자인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라고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피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사림파는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언젠가는 삼천리금수강산에 주자의 이상국가를 세우리라!
마침내 이 사림파가 완전히 국정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 때가 바로 조선 역사상 방계 출신으로 처음 왕으로 옹립된 선조 연간이다. 선조는 16살에 자식 없는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궁색한 이유로 방계의 방계(중종의 후궁에게서 난 7명 아들 중 막내가 덕흥군이고 이 덕흥군의 세 아들 중 막내가 후일 선조가 되는 하성군) 출신으로 왕에 오른 것이다. 외척과 사림파의 타협으로 제일 다루기 쉬운 왕자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위 이듬해인 선조 나이 17살에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는 편전에 드리웠던 발을 걷었다. 상(上)이 영명하여 정사 처리에 능숙하다는 이유였다.
아마 명종 때의 윤임과 윤원형의 외척 세력을 일망타진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림파가 관념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도 속아 넘어간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세운다는 충성심에 불타서 말랑말랑 어린 왕을 자기들 마음대로 훈계하고 부려먹기 위해 '우는 암탉'을 독수공방으로 내쫓았을 가능성이 크다. 연산군 이래 왕마저 제치고 국정을 농단하려던 사림파의 대망을 마침내 실현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후 조선은 극심한 사색당쟁에 시달리게 된다. 왕은 이따금 성깔을 부리거나(선조, 인조, 효종 등) 짐짓 호통을 치거나(숙종, 영조, 정조) 고분고분 '윤허'의 옥새나 부지런히 찍어댔다(순조, 헌종, 철종, 고종 등).
[율곡의 시무론: 경제 국방 혁신안]
이를 일찌감치 알아차린 사람이 있으니,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다. 그러나 이들은 방법이 전혀 달랐다. 이황은 주희(주자)와 비슷했고, 이이는 공구(공자)와 비슷했다. 이황은 혼탁한 세상에 몸을 담그는 걸 저어하여 벼슬은 하되, 물러나기를 거듭하면서 적극적인 정치개입을 거부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을 양성하다가 70세까지 살았다. 반면에 이이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나라를 중흥할 수 있는 개혁안을 내놓고 고군분투하다가 불과 49세에 눈을 감았다. 그는 건국 초기(창업과 수성의 시기)와 달리 국가 기강이 해이해져서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국가의 중기 또는 말기(更張의 시기)는 개혁의 내용과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특히 국방과 경제를 중시하는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국방은 종묘사직을 보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경제는 백성을 배불리 먹여 염치를 알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그는 현대인 못지않게 잘 알았다. 그러나 무려 130여회에 이르는 그의 개혁안은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 주자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서 기(氣) 즉 실천 또는 행위를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이이 계통이든, 이(理) 곧 마음 또는 이론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이황 계통이든, 중립적인 서경덕과 조식 계통이든, 주자학 자체가 정치의 핵심인 부국강병에는 전문성이 턱없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이이의 시무론(時務論)은 도무지 감도 안 잡혔거니와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국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주자학 맹신도는 토지와 명예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다.
이이의 시무6조 중 무려 3항목이 국방개혁안이고(養軍民, 固藩屛, 備戰馬), 제2 항목이 경제개혁안이다(足財用). 여기에 나머지 2항목 중 제5 항목이 교육이고(明敎化) 제6 항목이 인재발탁이다(任賢能). 과거시험에 관계없이,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면 코드에 관계없이 군사와 경제에 유능한 인물을 대대적으로 새로 뽑으라고 촉구하는 것이니까, 기존의 입만 살아 있는 문신과 문자 꽤나 안다고 거들먹거리는 향촌의 양반들은 유능한 군인이 가만히 허리에 찬 칼에 손을 얹거나 억울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도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개돼지 취급을 받으면서도 가만히 있어야만 했던 백성이 똑 소리 나게 일제히 입을 열기 시작하면, 혼백이 날아가고 흩어져 두꺼운 비계 때문에 독이 전혀 스며들지 못하는 돼지 앞의 독사 신세가 된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둔하게만 보이는 돼지가 항우장사도 순식간에 쓰러뜨리는 독사를 보는 순간 얼마나 잽싸게 달려가 그 머리를 한 입에 물어 아작내는 걸 구경해 본 사람은 이이가 낸 시무론을 훑어 본 양반관료 중 눈치 빠른 자들의 은은한 공포를 쉬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선조는 시기심과 의심, 위선과 독선, 교활함과 비겁함으로 뒤범벅되어 권력의 달콤함을 즐기고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뭐가 뭔지 몰랐다. 때로는 알고도 모른 척했다. 오로지 부귀영화만 누리면 되었던 것이다. 이를 틈타서 양반관료들은 이이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그가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의고 한때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에 심취했던 적이 있는데, 이것이 조선의 유일사상 주자학에는 결정적 흠이었던 것이다. 그는 끝내 이황과 마찬가지로 3정승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이이의 개혁안이 공허해지면서, MBC의 알몸 라이브 쇼에서 갓 쓴 청학동 노인이 장죽을 길게 빼어 물고 흰 수염을 날리면서 '남녀칠세부동석!'을 설파하는 것처럼 공허해지면서, 조선은 국방에 치명적 약점을 드러내어 그의 사후(1584) 이내 남북 오랑캐에게 각각 한 번씩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전혀 뉘우침이 없었던 조선은 그 유일사상 체계가 더욱 공고화하여, 양반관료들이 국법에 정해진 것보다 서너 배 이상 조세를 더 걷어 90% 이상 착복함으로써 국고가 텅텅 비었다. 어린 양 화랑 관창처럼 붉은 심장을 국가를 위해 기꺼이 바치는 거룩한 충(忠)은 자취를 감추고, 이리떼 안동김씨처럼 대를 이어 검은 뱃속을 채워 주는 저 '가문의 영광'을 위해 갖은 수작을 다 부리는 괴상망측한 효(孝)만이 살아남아 삼천리강산을 사막처럼 피폐하게 만들었다.
국가 예산 부족으로 군대는 민란을 제압하는 것 이상으로 양성할 수 없었고, 백성들은 전쟁이 일어난 것보다 더 비참한 생활을 영위했다. 왕실과 양반관료만이 여왕벌과 수펄처럼 무위도식했을 뿐, 백성들은 일벌처럼 죽자고 일만 했던 것이다. 마침내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물결이 극동을 덮치는 순간, 조선은 꽥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호의호식하던 그 왕족만이 아니라 양반관료 전체가 일거에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림파와 양반관료는 정치권력 집단]
사림파는 결국 유교적 윤리도덕을 정치 도구화한 정치권력집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권력과 유교경전 암기 능력 자랑과 토지뿐이었다. 조광조는 심지어 여진족에게 침략 당한 후 기습공격하려고 하는 일선 장수의 계획을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하여 거부하기까지 했다. 국방과 경제, 외교 이런 국가의 근간을 우습게 여기고 오로지 유교경전과 그에 대한 주자의 해석에 비추어 정적을 헐뜯어 그 권력과 토지와 명예를 빼앗아 끼리끼리 호의호식하다가 족보에 높은 관직명을 한 줄 남기는 것이 양반관료의 꿈이었다.
그들은 지극한 이기심을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명분으로 감쪽같이 포장하여, 자기 자신도 속을 정도로 교묘하게 위장하여, 국가를 사유화하고 국방을 종이호랑이로 만드는 한편 주자학은커녕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지방(紙榜) 한 줄도 쓸 줄 모르는 백성을 야만족이나 가축 비슷하게 취급하면서 그들이 생산한 것을 몽땅 차지했던 것이다. 문화인이 야만족의 재산을 빼앗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인간이 소나 말이나 당나귀의 생산물을 가져가면서 양심의 가책을 안 받듯이 그들은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북한은 조선의 복제판]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럼 현재는 이게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이것이 거의 그대로 재현된 땅이 북한이다. 단, 거기에는 국방을 무력화하는 대신 오로지 국방에만 전력을 기울여 이를 국민에 대한 폭력의 원천으로 삼은 것이 다르다. 조선은 국방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백성이 반역할 소지를 원천 봉쇄한 반면에, 김씨 조선은 경제는 내팽개치고 권력의 총구로써 오로지 군대만 강화하여 절대왕정을 구축했다. 이제나저제나 민초를 죽기보다 더한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민주화 이래 한국의 집권자는 조선시대 양반관료의 후계자]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럼 현재는 이게 어느 나라인가?
'외교와 경제를 잘하라고 나를 뽑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 북한과 화해협력 잘하라고 뽑아준 것 아닌가?'
누가 이런 말을 했던가? 설령 그 말이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한들, 경제가 피폐하게 되면 무슨 돈으로 북한을 도와 주며, 북한이 거짓과 폭력을 앞세우고 4800만을 김씨 절대왕조의 사노비로 만들기 위해 뚜벅뚜벅 한국을 접수하러 오면 무슨 논리와 물리력으로 그들을 막을까?
한국의 자칭 민주화 공신과 언필칭 민족공조 파당은 국방과 경제의 중요성을 전혀 모른다. 설령 집권 후에 잘하려고 해도 능력이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 무능한 지도자의 부지런함이 무능한 지도자의 게으름보다 못한 것처럼, 그들이 잘하려고 설치면 설칠수록 국가와 국민에 그만큼 해를 더 많이 끼친다. 조선시대 이기이원론과 너무나 흡사한 이 시대의 공리공담인 민주와 통일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목숨을 걸고 염불할 뿐, 집권 전에는 날마다 그 당시의 정부와 여당이 불철주야 노심초사 키우던 국방과 경제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집권 후에는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스스로 만든 도덕의 침대에 맞추어 세계 6위의 국방 다리와 세계 11위의 경제 팔을 자르거나 늘여서 부지불식간에 국가의 성벽을 허물고 국민의 배를 탄수화물과 지방과 단백질과 비타민 대신 불안과 공포와 원한과 분노로 가득 채운다.
친구는 적 삼고 적은 친구 삼아 바리바리 새 친구에게 선물을 실어 보낸다. 스스로 만든 도덕률을 크게 써서 머리에 동여매고 가슴에 비껴 매고, 어딜 가든 만장의 박수갈채를 강요한다. 앵무새 같은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어금니까지 다 드러내 활짝 웃으며 두 손을 신들린 무당처럼 흔든다. 그 사이 뒤로는 권력과 이권을 갈라먹기에 정신이 없다. 줄줄이 쇠고랑을 찬다. 그러나 그 맛이 꿀맛만 같아, 남은 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 권력을 오래오래 유지할까, 밤낮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다.
'금자씨 싸랑해요, 삼순씨 결혼해요. 대장금씨, 자기 미워잉∼.'
쇠고랑을 찬 동지들은 적당한 기회에 대사면의 대상에 슬쩍 끼워 넣는다.
'친구야, 잠시만 기다려! 나, 의리 빼면 시체란 거 알지?'
[명분에 사족을 못 쓰고 전쟁 위협에 오금을 못 펴는 한국인]
한국인은 거창한 명분에는 정신적으로 스스로 무장해제되어 맥을 추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신의 속셈과는 정반대이자 전혀 지킬 의사가 없는 것을 새로 만든 국어사전에 따라 그 정의를 정반대로 비틀어 이를 아무도 모르는 지하동굴에 깊이 감추고, 국력을 총동원하여 거짓말을 대량생산하여 언제 어디서든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한다. 스스로도 긴가민가할 정도로 되풀이한다.
한국인은 권력에 유난히 약하다는 것을 알고, 그 권력을 담보하는 것은 첫째가 군대임을 알고 군대를 키우고 또 키운다. 단, 그 어떤 자도 군대는 사유하지 못하게 만든다. 조선이 사병을 혁파함으로써 물리력을 오로지 왕실 또는 문신만이 갖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절대 반역을 꾀하지 못하게 하고 설령 반역을 꾀하더라도 중앙의 군대 몇 천 명만 보내면, 그 역적 무리를 일망타진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거짓말을 알아차리고 몰래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하는 자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런 자는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한다. 그래서 방대한 비밀경찰 조직을 가동한다. 전국에 밤의 쥐와 낮의 새를 풀어 친구와 이웃은 물론 부부와 부모자식 사이에도 무심결에 양심과 진심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순간 즉시 이를 도청하여 당 중앙으로 보고한 다음, 쥐도 새도 모르게 그 '반동분자와 간첩'을 잡아간다.
당과 경찰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이다.
조선의 유일사상이었던 주자학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북한의 유일사상인 주체사상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언행은 당과 경찰이 언제든지 현장에서 박살낸다.
주민이 생산한 것은 미제국주의를 물리치기 위한 총칼을 만드는 데 쓴다며 90% 이상 착취한다. 뿐만 아니라 관광사업이든 투자유치사업이든 50달러면 50달러 100달러면 100달러 원천징수해 버리고 평등의 이름으로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을 북한 돈으로 다른 회사 노동자의 그것과 똑같이 지불한다. 그게 북한 돈 2000원에서 3000원이다. 달러 환산 1달러다! 순진한 어린 학생도 착취당하지 않을 리 없다. 파지나 파고철을 줍거나 훔치고 토끼를 키우거나 돼지를 키워 바쳐야 한다. 뿐이랴, 1년에 한 달 이상 수업을 전폐하고 노동현장에 투입되어 미성년자의 노동이 가혹하게 착취당하고, 두 달 이상 수업을 전폐하고 '원쑤'를 때려잡기 위한 군사훈련에 동원되어 강시( 屍)처럼 뼈와 살로 만들어진 총폭탄으로 개조된다.
한국인은 명분과 전쟁위협에 너무도 약하다는 것을 알고, 김씨 절대왕조는 이를 집요하게! 치밀하게! 대담하게! 60년 동안 이용했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력과 군사력을 비약적으로 키운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는 이 명분과 전쟁위협이 씨알도 안 먹혔다. 그것은 김씨 절대왕조의 최대무기란 걸 국가 지도자와 국민이 빤히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거짓과 폭력에 지나지 않음을!
겉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이겠지만, 민주화 시대부터 실은 그 영혼이 조선시대와 북한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신정일치(神政一致) 왕조의 거짓과 폭력은 비온 뒤의 독버섯처럼 한국에서 급격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80년대부터 대학가와 노조는 거의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애당초 국방과 경제는 구름 잡는 소리이고 실은 조선의 양반관료처럼 권력과 명예와 부(富)밖에 모르면서, 도덕의 하얀 목련이자 애국애족의 붉은 진달래를 자처하는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거짓과 폭력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박정희의 흉상 1개와 김일성의 동상 3만5천 개]
각각 하나밖에 없는 박정희의 흉상과 맥아더의 동상이 끌어내려지고 끌어내려지기 직전인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3만5천 개의 김일성 동상과 8만 개의 김일성 석고상을 끌어내리고 때려 부수러 '가자, 북으로!'를 외치는 자가 이들 무리 중에 한 명도 없다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거짓과 폭력은 각각 아름다운 명분과 거룩한 힘으로 그들에게 가슴 가득 긍지를 심어 줄 테니까! 속으로는 이러지 않을까.
'아, 고구려의 정통성에 독립운동에 일제청산에 만인평등에 자주자립에 기초한 나라를 세운 불세출의 영웅과 그를 그대로 계승한 천출장군! 세계 최강 미국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핵무기! 아, 자랑스럽도다!'
잠깐, 마르크스와 레닌과 차우세스코와 사담의 동상을 생각해 보시라.
70년 거짓도 하루아침에 안개처럼 사라지고, 10번 이상 지구를 파괴할 핵무기도 눈 깜짝할 사이에 고철로 변한다. 그것이 바로 한없이 약한 듯 한없이 강한 진실의 힘이고, 그것이 바로 한 번도 팔을 내뻗지 않아 아무리 봐도 허깨비같이 보이는 초절정 고수의 힘이다.
(2005.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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