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유신선포 이후 여당은 정권을 만들어내는 産母가 아니라 대통령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朴대통령은 政局운영에서도 공화당과 유정회보다는 정보부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정치참모는 공화당 의장이나 유정회 회장이 아니라 정보부장, 나중엔 경호실장이 되어버렸다. 정치의 본질이 국회 토론 선거가 아니라 밀실 야합 정보정치로 변질되었다.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은 朴대통령의 통치철학을 겉으로는 선전하고 다녔으나 그의 자주적 결단에 공감하여 '한국적 민주주의'를 자신의 신념체계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적었다. 여당의원들 대부분이 체육관에서 뽑는 대통령 선출방식에 대해서 '이건 민주주의가 아닌데'하는 회의를 느꼈다. 그러니 줏대 있게 언론과 야당을 설득하거나 맞설 수 없었다. 유신헌법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겼다는 데 대한 原罪의식이 그들의 자생력을 약화시켰고 그들을 어용화시켰다.
최근 許和平 미래한국재단 소장은 '한국의 우파는 과거 보안법, 정권, 反共구호로써 체제를 지키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풍토가 정착된 것이 유신기간 때였다. 朴대통령이 정보부라는 채찍으로써 나라를 끌고 가고 있으니 여당은 정권의 주인의식을 잃고서 체제유지의 구경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권력자에 빌붙어서 안주하면서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겉으로만 공세를 펴고 안으로는 투항해버린, 일종의 권력기생적 정치세력이 유신기간에 만들어졌다. 그 맥을 잇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나라당이다.
朴대통령은 고독하게 자주적 관점에서 '한국적 민주주의'의 당위성을 설파했으나 여당은 이를 이념화도 신념화도 하지 못했다. 유신체제는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국가운영체제를 탄생시켰으나 그 대가로 투쟁성이 강한 야당과 자생력이 없는 寄生체질의 '살찐 돼지' 같은 우파정당을 파생시켰다. 두 정치세력간의 승부는 그로부터 20년 뒤에 난다. 유정회 같은 寄生체질의 민자당은 투쟁성이 강한 김영삼에게, 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은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이것이 유신통치의 대가였다.
朴대통령을 그래도 가장 충직하게 뒷받침했던 것은 全斗煥이 리드하던 정규육사출신 장교단이었다. 이 그룹은 朴대통령의 총애를 받았고 대통령이 추진하던 자주국방 건설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정규육사출신 장교들은 육사 때 '문민통치하의 군대'를 배운 이들이었다. 민주주의 체제하의 장교의 역할을 배운 이들이 朴대통령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무조건 지지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이들은 朴대통령의 富國强兵을 위한 순수한 열정을 믿었으므로 逆心을 품을 입장은 아니었다. 이들이 10.26 뒤 김재규를 단죄했다고 해서 유신통치를 지지했다고 보는 것은 속단이다. 정규육사장교단 출신들이 5공 탄생 때 대통령 7년 단임을 선언하고 나섰고 이를 실천한 것도 평소 소신의 반영이었다.
유신이 만든 권력기생 체질의 보수당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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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03, 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