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4월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술회한 내용을 공보비서관 金聲翊씨가 기록한 것이다.
전두환: 내가 옛날에 朴正熙 대통령이 최고회의 의장 할 때 나 보고 국회의원 나가라고 하는 걸 안 나갔어요. 張都暎 사건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사무실에 오라고 해서 갔었어요.
나보고 全 대위, 국회의원 출마 안 하겠냐고 그래. 내가 깜짝 놀라 제가 어떻게 국회의원을 합니까 하니, 하면 하는 거지 왜 못 해라고 해. 아닙니다. 저는 군대에 있는 게 좋습니다라고 했어. 군인하려고 사관학교에 갔지, 국회의원 하려고 간 게 아닙니다라고 했어. 朴 대통령이, 자네가 필요하다고 해.
시간을 달라고, 의논도 해 봐야겠다고 했더니 남자가 하는 일에 상의는 무슨… 하더니 이틀 후에 오라고 해. 내가 尹必鏞 비서실장과 의논했어요. 잘 말씀드려달라고 했는데 朴 의장이 또 불러. 생각해 봤냐고. 돈도 없고 군대에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는데 그 때부터 朴 대통령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는 거야. 내가 어디 가 있어도 골치아픈 일이 있으면 나를 불렀어요. 군대 얘기도 물어 보고 그랬어. 나는 항상 그 양반한테 희망적인 얘기를 많이 했어요. 1년에 한 두 번씩은 부르셨어요. 이 식당, 여기에서 陸 여사도 함께, 분식 권장할 때인데 분식으로 식사도 했어. 陸 여사가 만든 거라고 했는데 별로 맛은 없지만 나는 식성이 좋으니 두 그릇 정도 먹었어요.
내가 끝까지 국회의원 출마를 거절한 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고 참신한 육사 출신으로 본 것 같아.
퇴직 직전 車智澈 위해 영어로 열변
대통령: 경호실 작전 차장보로 있을 때 내가 계속 나가겠다고 했어요. 車智澈과 내가 사이가 나빴어. 車智澈이 원래 내 밑에 있었어. 그 사람이 육사12기 시험에 떨어지고 그 다음에 포병 학교를 가서 포관이 된 사람이지. 자존심이 강해. 나와 함께 미국에 갔는데 그 사람이 미국 사람과 싸움을 해서 퇴교를 당하게 돼 있었어. 한국 학생장인 나한테 그 사람을 위해서 변호할 시간이 주어졌어요. 내가 대위 때였는데 못 하는 영어지만 열변을 토했어요.
이 사람이 훈련을 하다가 미국 장교는 10분만에 교대를 시키고 외국 장교는 40분씩이나 교대를 안 시키는 데에 화가 나서 미국 군인을 때린 거야. 폭행을 하면 그 사람들은 큰 잘못으로 쳐요. 그 때 일행이 張基梧 차관, 崔世昌 장군 등이었는데 내가 제일 선임자였어.
그 때 외국 장교에 대한 차별 대우가 있었어요. 언어 장벽 때문에 모두 고생했어. 車 대위가 외국인의 불만을 대표해서 때린 것이라고 내가 변호를 해서 결국 용서를 받았어. 그 사람이 육사 12기 시험에 떨어진 것을 스스로 비밀에 붙였는데 육사 출신을 매우 싫어했어. 그런 관계였는데 그 사람이 경호실장이 되고 내가 그 밑에 왔어. 내가 사단장 나가야 할 때인데 朴 대통령이 직접 사인을 해서 경호실에 오게 된 거야.
보안사 가서 보니 朴 대통령 주변 엉망
대통령: 내가 화가 나서 예편해버리려 했어. 朴世直 이가 국방 장관 보좌관이었는데 徐鐘喆 장관한테 면담 신청을 해서 저를 예편시키는 겁니까 물으니 대통령이 사인한 메모지를 보라고 해.
車智澈이가 여러 가지 일을 삐뚤어지게 해. 중령으로 예편하고 국회의원을 한 사람인데 경호실장하면서 꼭 국회의원을 상대하고 높은 장군을 경호실에다 데려다 놓아. 車智澈이가 나한테 경호실장 뺏길까봐 굉장히 신경쓰는 것 같았어. 내가 내보내 달라고 했어. 내가 소장이 되고 나서였어. 朴 대통령과 金載圭, 車智澈, 나 이렇게 골프장에서 저녁을 먹는데 朴 대통령이 사단장 꼭 해보고 싶은가라고 물어서 군의 희망이 사단장 아닙니까 하니 그래, 사단장 해 봐야 될 거야라고 해. 그래서 사단장으로 나갔어요. 사단장으로 나갔으니 보안사령관으로 갈 수 있었던 거지.
朴 대통령도 내가 군대를 좋아하고 순수하게 나가니 마음에 드는가 봐.
사실은 10월26일 돌아가셨지만 10월27일에 내가 보안사령관으로서 보고를 하도록 돼 있었어. 金載圭, 車智澈, 정당 관계 암투가 있어, 朴 대통령이 상당히 위험할 것 같았어. 두툼한 보고서를 만들었어. 朴 대통령은 보고서를 올리면 상대방한테 주어버리는 성격이 있어요. 직접 그 사람을 불러서 보여 줄 용기가 없는 거야. 정치 자금도 車智澈을 통해서 하고 신세를 너무 많이 지니 정면으로는 말 못 하고 보고서를 주어버리는 거지.
보고서 낸 사람만 죽게 돼.
보안사에서도 陳鍾埰 사령관이 가면서 나한테 보고서를 내지 말라고 했어요. 내면 죽는다고 하면서. 그러면 누가 朴 대통령을 깨우쳐 주느냐, 내가 盧載鉉 국방장관에게도 얘기했어.
비서실 내부도 엉망이고 友軍(우군) 싸움이 金日成이와의 싸움보다 더 심했어. 망하려니 그런가 봐.
그래서 내가 10월27일쯤 보고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어.
몇 번이나 읽어 보고 연습도 하고 보고 준비를 다 했었는데 朴 대통령이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결국은 이렇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했어.
지금은 우리가 강경하게 밀고 나가야돼요. 그게 더 먹혀들고 국민들한테 안도감을 줄 수 있어요. 모두 역사의식을 가지고 나가야돼요.
진솔한 회고담
4·13 담화를 녹화한 후 全 대통령은 배석했던 수석비서관 전원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들면서 이임의 감회에 젖었다. 4·13은 곧 자신의 이임 절차라는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 때까지의 어떤 모임도 이 때만큼 이임 분위기를 실감나게 한 적은 없었다. 全 대통령 자신도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옛 일과 청와대 식당에서 朴 대통령과 식사하던 일까지 회상했다.
대통령으로서뿐 아니라 그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청와대에서의 일을 회상한 것은 청와대에서 떠난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듣던 수석비서관들 역시 대통령의 퇴임이 자신들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을 확연히 느끼는 표정들이었다. 대통령의 어조는 담담했고 진솔했으므로 분위기는 매우 엄숙했다.
전두환 술회 : "나와 朴대통령"
- 김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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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03, 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