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선진국 영국에서도 1754년에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당시 인구 약800만 명의 3.5%인 28만 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물론 귀족들이었다. 차츰 선거권이 확대되어 갔다. 1884년에 가면 세금을 내는 모든 家口主가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1918년엔 세금을 내는가
의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성인 남자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고, 여자들에 대한 보통 선거권은 1928년에야 허용되었다.
프랑스에서도 1790년 일정규모의 재산을 가진 납세자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1815년엔 30세 이상의 年300프랑 이상 납세자가 투표권을 가졌다. 1820년엔 일정 재산 이상을 가진 유권자는 1인 두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1830년엔 25세 이상의 200프랑 이상 납세
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 인구는 전체 성인의 170분의 1이었다. 1848년 모든 남자성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가 2년 뒤 3년 이상 거주 납세자로 제한되었다. 1851년에 다시 남자보통선거권으로 돌아갔다. 1945년에 모든 여성 성인이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이상의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거권 확대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폭이 확대되는 과정이란 사실이다. 동시에 선거권 확대는 점진적이었고 신분중심(봉건체제)-납세중심(부르조아 체제)-남여 모두(대중 민주주의 시대)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수백년에 걸친 점진적인 과정을 생략하고 1948년 헌법 제정과 동시에 보통선거를 하게 되었다. 재벌 총수도 한 표, 직원도 한 표이다. 무직자도 한 표, 교수도 한 표이다. 세금을 수백억원 내는 사람도 한 표, 안내는 사람도 한 표이다. 선거권의 점진적
확대 과정은 투쟁의 과정이고 민주주의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었다. 우리가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그 결과물로서의 男女 불문한 1인1표제를 도입한 것은 어떻게 보면 서양사람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민주주의 제도에 무임승차한 셈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유럽 민주주의 국가 사람들의 苦鬪를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진 셈이다.
1948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서양에서 수백년 걸려(영국의 경우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제정부터 시작하면 보통선거 쟁취까지 약700년이 걸렸다) 발전시킨 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다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과정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연극, 민주주의란 연습을 해온 셈이다. 연극과 연습을 많이 하면 實演이 되긴 하지만 외래 제도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선 엄청난 代價를 치러야 한다. 西歐의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하여 李承晩과 朴正熙를 독재자라고만 단정하는 것은, 메이저 리그의 통계를 기준으로 삼아 동네 야구 선수들을 혹평하는 것과 같다. 세종대왕에게 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욕설을 퍼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한국사람들 가운데는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담은 헌법만 있으면 자동적으로 이뤄진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의 경우 민주주의는 먼저 법치를 확립하는 과정이었다.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열망이 강했기 때문인지 '선거=민주주의'라고 속단한다.
아무리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선택해도 그렇게 뽑힌 정권이 현재의 盧武鉉 정부처럼 법치를 무시한다면 이는 민주정부가 아닌 것이다.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잡았지만 집권 후 독재로 가버렸기 때문에 민주인사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선거로 뽑힌 정권은 반역질을 해도 이는 '민주적 반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한다면 좌파정권이 북한의 반역정권과 손잡고 헌법과 국가에 대한 반역인 연방제 통일을 선언해도 '우리가 뽑은 민주정부가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면서 적화통일에 순응할지도 모른다. 법치를 파괴하는 민주는 민주가 아니라 반역이고 독재이므로 그런 정권을 타도하는 것은 합헌적일 뿐 아니라 국민의 권리요 의무라는 사실을 알아야 '民主를 위장한 반역'에 속지 않을 수 있다.
'민주를 위장한 반역'에 속지 않으려면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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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03, 23: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