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적반하장과 한국의 배은망덕


해방 이후 60년 동안 변함없는 북한의 특기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고, 최근 10여년 한국의 장기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1945년 11월 3일에 민족주의자 조만식이 창당한 조선민주당의 당원은 무려 50만 명이었지만,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의 당원은 1945년 12월 당시 겨우 6천여 명밖에 안 되었다. 소련 주둔군과 김일성 일당이 북한 주민으로부터 전혀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1946년 3월 5일 소련의 지시에 따라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위원장 김일성이 토지개혁령을 발표한 후 지주 4만4천여 명으로부터 토지를 무상몰수함으로써 조선민주당의 물적 기반을 완전히 허물어뜨려 버리자, 그 해 8월에 공산당원은 13만 4천 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토지개혁 후에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추진한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를 보고 북조선에서는 공산주의가 실시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망하기를 바라는 미제국주의의 앞잡이들이거나 친일 민족 반역자들입니다. 우리가 추진한 것은 모든 인민의 토지 소유, 모든 인민의 산업 소유이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김학준, 북한50년사)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이 제정되면서 인공기가 공식적으로 쓰이기 전까지 김일성은 군중집회에서 태극기를 우러러보며 애국가를 봉창했었다.

김일성은 이와 같이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정체를 일체 드러내지 않았지만, 일단 권좌에 오른 후에는 표변하여 오로지 공산주의만이 국가와 민족을 살리는 유일한 사상이라고 늘 이야기해 오던 것을 말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지껄였다. 이어서 아니꼬운 표정을 짓는 듯한 자들은 미제의 앞잡이로, 친일파로, 반동으로, 반역자로 몰아세워 하나하나 제거했다. 그리고는 그 때마다 역사를 고쳐 써서 김일성 신화를 창조했다. 덮어씌우기와 오리발 내밀기와 아랫것들을 시켜 신화를 지어내기가 그의 주특기였다. 영광은 오로지 자신만이 차지하고 치욕은 온통 정적들에게 덮어씌웠다.

일이 잘못되면, 국내의 정적 또는 미국과 일본에게 덮어씌웠다. 뼈 빠지게 일하는 것도, 배고픈 것도,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전쟁 준비하는 것도, 미국과 일본 때문이라고 둘러대며, 불쌍한 남조선 인민을 해방하기 위한 거룩한 희생이라며 2천만 인민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협동농장의 비효율성과 공장의 생산성 저하 등이 중앙통제의 경직성 때문이란 걸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혁명정신이 부족하고 사상이 해이해진 탓이라고 하여, 대대적인 사상투쟁의 장을 마련하여 만인이 만인을 증오하게 만들었다.

대신에 일제가 남겨 두고 간 산업시설과 발전소, 어마어마한 지하자원, 소련군의 전폭적인 지원, 소련과 중공의 에너지 무상제공 등에 힘입어, 큰 건물이 올라가고 죽이라도 끓여 먹게 되면, 그것은 오로지 김일성 자신의 공덕으로 돌렸다.

하물며 나라 밖을 향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중 제일 큰 건이 6·25동란이다. 자신이 앞장서서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애걸복걸하여 무방비 상태의 동족을 급습하여 무차별로 학살하고도 미제와 그 앞잡이가 일으킨 것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하여 북한주민 전체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은 침략에 맞서 그것을 물리침으로써 도리어 남조선을 해방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마련했으나, 맥아더를 급파한 미제 때문에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었다고 땅을 쳤다. 그 한을 풀기 위해 한 날 한 시도 쉬지 않고 전쟁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죽을 때까지 전쟁 준비에 광분했다.

김일성의 유훈정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효자' 김정일이 국가 정책 제1호인 적반하장의 가풍을 이어받지 않을 리 없다. 핵무기를 개발하고도 핵발전소라며 오리발 내밀어 중유든 식량이든 달러든 실컷 받아 챙기는 한편, 보란 듯이 미사일을 개발하고는 인공위성이라고 잡아떼고 은밀히 또 다른 핵무기를 개발하고는 이를 지나가는 말처럼 복도에서 어벙하게 보이는 양키에게 자랑했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에 부시가 중유를 딱 끊고 경수로 건설을 중단하자, 계약을 위반했다고 발끈하면서, 예고방송까지 해 가며 핵폐기물을 재처리했다. 이윽고 핵보유를 선언했다.

그리고는 미국이 먼저 적대정책을 버리라고 호통친다. 스스로 지하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스스로 국경을 폐쇄하여 300만을 굶겨 죽이고도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 때문이라고 입에 비수를 빼어 문다. 거대한 중국도 죽창을 국경에 세워놓은 상태에서는 자급자족하지 못했는데, 60대가 제일 크고 40대가 그 다음으로 크고 20대가 제일 작은 나라를 만들어 놓고는, 전세계 유일의 이상한 나라를 만들어 놓고는, 획기적인 경제지원을 않는다고 수시로 벼랑 끝의 소나무에 올라가 전세계를 향하여 신문고를 두드린다.

이미 들킨 것만 해도 몇 개인데, 그 기술은 비행기를 지하에서 뜨고 내리게 할 수 있는데, 땅굴을 거미줄처럼 안 뚫었을 리가 없다. 결정적 시기에 핵무기보다 더한 위력을 발휘할 땅굴을 휴전선 아래로 계속 파내려 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시치미 뚝 떼고 휴전선 위로 철도와 도로를 연결한다며 세계만방에 남북교류를 자랑한다. 일제시대 것을 거의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새로 건설하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철도와 도로를 유라시아로 통하는 21세기의 실크로드라고 휴전선 이남에서 더 흥분한다.

한국은 원래 은혜를 백골난망(白骨難忘)하는 나라였다. 해방시켜 준 미국에 감사하고 옥수수 가루 보내 준 샘 아저씨에게 감사하고 3천 궁녀가 낙화암에서 몸을 날렸듯이 3천만이 부산의 태종대 아래로 몸을 던질 찰나에, 외세를 빌어 동족을 죽이고 살아남은 동족을 모조리 노예로 삼으려던 북괴를 물리쳐 준 맥아더에 감사했다. 일제시대를 잊을 수는 없었지만, 박정희와 전두환 정부 때 각각 8억 달러와 40억 달러를 원조해 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 그리고는 그것을 종자돈 삼아 머리를 싸매고 배우고 이를 악물고 일하여 그 중에서 빌린 돈은 다 갚고 일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우리보다 10배, 100배 잘 살던 일본과 미국을 바짝 따라가서 이제 겨우 두세 배 차이밖에 안 날 정도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자전거도 드문드문 하던 나라가 집집마다 자가용을 굴리게 되었다. 달동네에서도 주차 문제로 걸핏하면 싸울 정도가 되었다.

한국인은 원래 신세지면 못 참는 국민이다. 그래서 공산 세력을 막아 준 미국에 보답하기 위해 따이한은 기꺼이 머나먼 정글의 나라로 가서 용맹하게 싸워 귀신도 놀라게 하는 한편 민간인들을 살갑게 대하여 민심도 크게 얻었다. 덕분에 은혜도 일부 갚아 마음의 짐도 벗고 안보도 튼튼히 하고 경제도 크게 발전시켰다.

그러던 한국이 언제부터 은혜를 원수로 갚기 시작했다. 인질범에게는 게이샤보다 더 간드러진 미소를 머금고 돈을 달라면 돈을 주고 식량을 달라면 식량을 주고 비료를 달라면 비료를 주고 전기를 달라면 전기를 주겠다고 하면서, 그건 절대 인질범에게 주는 게 아니라 불쌍한 인질에게 준다고 강변하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구원만 기다리는 인질은 실은 못 본 척한다. 그 속셈을 숨길 수 없는 것이 혹 그 인질 중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는 자가 있으면, 노골적으로 문전박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세상 눈이 무서워 몇 명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그들의 입에 아무도 모르게 투명 재갈을 물린다.

세계가 한 목소리로 그 인질을 구하자고 하면, 펄쩍 뛰면서 그러다가 2000만 인질을 다 죽이려고 하느냐고 이를 뽀드득 간다. '인질 구하기 법'을 만드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까지 찾아가서 그 나라를 세계의 경찰 국가가 아니라 세계 유일의 깡패 국가라고 삿대질을 해댄다.

어떤 무골호인(無骨好人)이 적반하장의 막대기에 계속 맞겠으며, 어떤 선풍도골(仙風道骨)이 배은망덕의 입에 계속 귀를 더럽힐까. 풍선은 무한히 커지지 않고, 베짱이는 언제까지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법. 가장 기고만장할 때가 가장 위험한 법. 아직도 전혀 눈치를 못 채고 한참 신혼여행 떠날 꿈에 부풀어 있겠지만, 어쩌면 결혼식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좋으리라.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면 함께 축복 받을지도 모르겠다만.

(2005.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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